지극히 작은 한 사람의 기도
"너도 쉬어도 괜찮아. 그래도 돼." 저만 보면 그 눈에 연민이 가득차올라 이내 흘러내리시던 선배님을 만나서 들었던 말입니다. 쉼이라는 말에 처음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쁘게 사노라면 무릇 사람의 몸과 마음은 지치는 법입니다. 하지만 당사자는 모릅니다. 본인이 약해져있다는 그 상태를 쉽게 자각하지 못합니다.
쉽게 울고, 감동 받음이 평소보다 심해진 사람을 보면 자신이 지쳐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주저앉으면 실패자요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나온 절규는 바싹 메마른 목청에 닿지 못했습니다.
어른스러움은 아무리 요구해도 끝이 없더랬습니다. 우리는 모든 관계를 앞에 두어도 솔찍하게 힘듦을 털어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기억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으니까요. 든든한 동역자, 믿음직한 친구, 좋은 스승, 자상한 부모, 기댈 수 있는 연인. 되어주려고 할수록 돌려받고 싶은 인상입니다. 대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가을이 이윽고 지나갔습니다. 많이 사랑했습니다.
허다한 핑계를 혀에 두르며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저를 탓하지 않겠지만 누구도 그 책임을 대신 짊어질 수 없습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인격이 타고난 존재론적 결핍 곧 인간 모든 실존의 외로움이 있습니다. 이는 바꿀 수 없는 과거와 앎을 허락받지 못할 미래를 두고서 끊임 없이 책임만을 전가 받은 인자의 기구한 인생을 들춰냅니다.
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곳으로 도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결실은 장담할 수 없고 이상을 품은 비루한 심장은 지팡이 하나 없는 광야의 외침과 같겠습니다. 사실 그만하고 싶은게 아니라 피부에 느껴지는 결실들을 맛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을 바라고 왔던 길이 아니라 행복을 구하면 쌓이온 모든 것이 한낮의 아지랑이 처럼 흩어져 따라가지 못할 신기루가 되어버릴까봐 저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함에 망설임이 있고 두렵습니다.
여전이 저는 아무런 자격 없이 사랑합니다. 당신의 시간에 당신의 방법으로 저를 움직이게했던 약속들을 이루시겠지만 당신을 볼 수 없는데도 영원하지 않을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저는 여전히 허망한 것에 마음을 두고 있다고 하시렵니까?
눈에 보이는 그 자리에 당신이 사랑한다는 그 아이들이 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더이상 이것들을 사랑한 이들을 비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단지 좀더 편하고 행복하고 싶어할뿐입니다. 오히려 할 수 있다면 이뤄주고 싶은 소박한 욕심이 사랑스러울뿐입니다.
행복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삶을 얻으라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입술로 생기를 받은 이 딸과 아들들에게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쉼을 얻고, 웃을 날을 누리며, 솔직하게 내 앞에서 울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마도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나봅니다. 배우자도 자녀도 없이 살아야겠다 다짐했었는데 그들을 붙잡을 손아귀에 힘이 부족해 놓칠까봐 두려워했었나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해왔나봅니다.
처음의 사랑을 잃어버린건지 두렵고 허무할때가 많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켜주신다는 그 말에 저는 왜 울고 왜 위로를 받았나이까.
이들을 지켜주세요. 저들을 더욱 위로해주옵소서. 그리고 저는. 다시한번 십자가 앞에서 죽겠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한게 아닙니다. 제가 받을 면류관은 당신께 있으니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을 배우겠습니다. 많이 쉬었습니다. 조급함에 망가지지 않고, 고생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마음 고생에 육신이 상하지 않으며, 마음이 어려워 정신이 상하지 않게해주세요. 눈물있지만 평안하게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