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시체 위에 옥합을 깨다

교회를 위한 장송곡

by 광규김

기존 교회와는 다른 무언가를 찾는 손들의 내면엔

언제나 교회에 대한 강한 사랑이 있는 이들이었다.


사랑이 관심을 만들고 그것이 결국 실력이 되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은 복음에 대한 이해도에서 결정 된다. 관계와 사랑의 중요성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가 크게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결국 찾는 것은 교회의 본래적인 모습이다. 교회의 현상 유지가 아니라 말씀으로의 회귀라 말할 수 있다. 언제나 있어왔던 시도이지만 단 한번도 완성된적 없는 이것은 많은 사역자들과 공동체의 염원이자 풀리지 않는 난제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겐 그만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없다고 볼 수 있겠다.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건 단순히 기존의 것에 대한 모방의 문제를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구조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소수 정예가 이끄는 대형화는 기피할 수 없는 지향점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수 정예가 이끌어가는 모습은 지금 새로운 시도를 하겠답시고 열심을 다하고 있는 많은 사역자와 사역팀들이 그토록 욕하던 기존 대형 교회의 선배 사역자들이 너무나 잘하던 것들이 아니었는가?


개교회주의가 타파되지 않는 현실에서 개교회의 규모가 중요하지 않은 세상은 올리가 없다. 예배시간에 모여 거룩한 공교회를 고백하며 교회의 하나됨과 보편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를 제대로 풀어줄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가끔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교회의 모습은 바로 개신교의 개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하는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태생적인 한계에 봉착했을지도 모른다.


종교개혁을 시작하며 교회는 더이상 성직자가 아닌 자본가와 사업수완이 탁월한 이들이 구성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나 저러나 제사장이 떠나간 곳에서는 세리가 득세한다. 그리고 언제나 개혁의 필요성을 불러왔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뜻하지 않게 암울한 얘기를 한다. 나의 주제넘은 판단일지도 모르고 나의 개탄스러운 사고의 밑천이 드러나는 중일지도 모른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한다. 호랑이 물러간 자리엔 승냥이와 여우가 침을 흘리며 들어온다. 모두의 모두를 향한 개혁이 멈추지 말아야함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믿음의 선배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이고 멈춰서는 순간 썩은내가 진동하는 육신이 우리 교회일지도 모른다. 그걸 숨기려고 갖은 화려한 수식어로 향수와 향유를 뒤집어 쓴다.


시체 위에 옥합을 깨뜨려 악취를 숨겼다.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여전히 부활하지 못한 시체 위에서 놀아나는 중인지도 모른다. 교회가 교회되지 못한다면, 교회가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이 되지 못한다면...




시체 위에 옥합을 깨뜨린다. 썩는 악취를 숨기기 위해서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하는 일은 오랫동안 존재해온 낡은 육신을 장사지내는게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는 제도 종교 밖으로 튕겨나간 이들을 섬기려하고, 누군가는 계속 그 안에서 예배 드리는 이들을 위해 섬기려 남는다. 결국 저들은 측은해하고 저들을 사랑하며 저들을 위해 눈물 흘리기 때문에 사역자는 각자의 눈물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자리엔 언제나 그리스도의 눈물이 가장 먼저 흐르고 있었다. 나도 사랑하는 지체들과 그저 예배드리는게 즐겁고 행복하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겠다.


그러나 내가 꾸준히 교회 밖의 이들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대와 코로나 문제로 꽤 오래 교회를 떠나 있었던 동안 오히려 내 마음에 사랑이 깊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도사가 되면, 목사가 되면... 목회자가 되면 하루종일 사랑하는 지체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렇지 못했다. 무슨 바쁜 일이 그렇게 많고 챙길게 많은지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었다. 더 오래 청년으로 남아있으면서 내가 몸을 담은 교회에서가 아닌 그 밖에서 전도사로서 일을 했다. 그리고 어느곳 하나 내가 사랑하지 않은 곳은 없었다. 나를 자랑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나의 안타까움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럼에도 사랑을 한다. 언제나 그곳엔 그리스도의 눈물이 먼저 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찾아 헤메는 나그네요. 그 눈물자국 어린 바닥을 핥으며 살아가는 목동의 개이자 양들의 사이에서 함께 걸어가는 작은 양일 뿐이다.


교회는 사랑해야한다. 우리가 사랑해야한다. 힘써 사랑해야한다. 그것이 교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성도의 모임이며 성도는 제자이다. 그리고 제자도의 강령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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