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해야 한다던
"왜 여리고 좋은 사람들이 더 아프게 살까?"
나의 우울증 소식을 들은 한 형님의 대답이었다.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가 있고, 돌봐주지 못한 아픔과 상처가 쌓여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를 위로했다. 때로는 세상이라는 게 그렇고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고 느껴진다. 사람의 삶이라는 게 이토록 불합리한 것일까 하는 고민이 들곤 했다.
사람을 아끼고 사람 대하기를 귀하게 할수록 마음에 쌓이는 피로감은 커진다. 사람의 마음을 귀중하게 여기며, 사람 대하기를 지극하게 할수록 그러나 그 마음은 너무나 편해진다.
"출이반이"(出爾反爾) 곧 '네게서 나온 것은 네게로 돌아간다' 하였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하였으므로 내가 뿌린 존중과 사랑의 태도는 언젠가 좋은 마음 밭들에 심겨 내게 돌아오리라. 사람의 관계에서 특히 이러한 옛 선인의 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데는 그만큼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공감을 하는 데 있겠다.
그렇다 하여 아픔이 없다는 건 아니다. 좋게만 대하려고 해도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좋지 않게 되돌아오는 일도 왕왕 존재한다.
사람들은 순해 보이면 업신여겨진다 말한다. 어떻게든 경쟁하며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의 논리에서 나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우월한 존재가 되지 못하면 자신을 설명하고 유지할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옳고 그름 곧 도덕과 윤리로 자신을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방향성이 뚜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괴롭다. 남을 깎아내리지 못해 괴로운 일이 아니라 남을 더 잘 사랑하지 못해 괴롭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설명하는 길이 더욱 아름답고 찬란하다.
언젠가 병이 내 주변 이들을 괴롭게 하고 있을 때 나는 그들을 무작적 걱정하며, 염려하기만 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게 공감인 줄 알았지만 생각해보면 내게도 무조건적인 공감이 항상 필요한 건 아니었다. 공감 뒤에 응원이 필요했다. 내가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내 등을 밀어줄 등떠밈이 필요했다.
"걱정으로 나을 병이 아닌 거 알잖아. 넌 할 수 있어"
바뀐 지 얼마 안 된 병원으로 가길 망설이던 한 친구에게 내가 해줬던 말이다.
내게 필요한 것들을 내어준다. 사랑을 강조한 성인의 모든 윤리가 말하는 것은 그런 황금률이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이 살아가길 원했다. 사랑이란 그런 것 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정말 필요했던 것을 아무런 대가 내어줄 수 있는 마음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어주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일찍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3
사랑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다시 생명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며 그 불꽃을 더욱 거세게 키운다. 사랑이란 끊어지지 않는 냇물과 같아서 굽이쳐 흐르며 바위를 깎고 변치 않을 것만 같던 산천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위대한 것이란 그렇게 한 순간에서 한순간으로 임하는 잠깐의 것이 아니라 일상 위에 내리는 단비 같은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기적"을 얘기할 때 '사랑을 일상적이다.'라는 말을 했었다.
사랑은 그렇게 자신이 싫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좋았던 것을 기꺼이 줄 수 있는 마음이다. 사랑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 사랑은 단지 선하고 옳은 것으로 기뻐한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린도전서 13:6)
사랑에서 사랑으로 그리고 다시 사랑에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을 아름다운 마음 곳 "선함"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선한 마음이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무엇보다 아끼며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려워 여러 처세술을 익히고 인간관계에 대한 글을 찾아 읽어도 정작 그 마음에 이미 사랑이 있는 사람들을 결코 이길 수 없는 이유는 결국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여리고 좋은 이들이 더 아프게 사는지도 모른다. 견디고 견디며 다시 바라기 때문이다. 나쁜 것으로 돌려주려 하지 않고, 남들은 가시나무를 좋은 터에 뿌려도 자신은 가장 좋은 씨앗으로 외면받는 모든 땅에 까지 뿌리려고 하는 가엾고 예쁜 마음이 있어서 그렇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주려 한다. 누구에게도 악한 씨앗을 뿌리지 않으며 오직 선한 일로 내어주려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내게 진정 그런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서 12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