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부 쿠데타의 배경
2020년 11월 8일. 부패한 정부와 지속된 군부 독재 하에 있던 미얀마 국민들은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아웅 산 수 치의 국민민주연맹의 손을 들어주며, 국민민주연맹은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민주주의민족동맹 NLD은 선출직 의원 83.2%를 석권한다. 군부는 이후로 이에 대하여 꾸준히 부정선거 의혹을 제시하며 민주정부와 마찰을 빚는다.
2021년 1월 5일. 미얀마 국가 고문(아웅산 수 치)은 평화적 민주적 연방 체제를 만들기 위하여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창했다. 그는 2008년 군부에 의해 제정된 헌법을 포함하여 비민주적 제도와 관행으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이 국가를 만들어나갈 것을 총선에 승리한 당시 정권의 최우선과제라 주장하였다.
2008년 제정된 헌법은 3개의 치안 관련 부처의 수장을 전부 군부가 차지하도록 하여 민주적 절차를 통하여 정부가 정권을 잡았더라도 언제든 군부의 견제하에 둘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우상 수 치는 과밀된 군부의 권력행사로 인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군부의 실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소수민족 반군의 위협 앞에 불안정한 국가 정세에 따라 군부는 여전히 권력읠 가져야하며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전했다.
미얀마 헌법의 개헌은 의석의 75%가 필요하지만 군부에게 25%의 의석을 할당해야하는 헌법이 있었기 때문에 군부의 동의가 없다면 사실상의 개헌 작업은 불가능했다.
이에 문민정부는 4할가량의 의회 의석을 할당해줄 헌법 개정을 요구하였으나 자신들의 정권에 직접적인 위협이될 이러한 요구를 군부는 단호히 거부한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1월 17일. 중국의 국가주석 시진핑은 미얀마를 방문한다. 미중무역 협상이 1단계 합의를 마친 직후의 일이었다. 이는 장기화될 미국과의 무역전쟁 속에서 중국의 육/해상의 실크로드인 일대일로의 확대와 남중국해의 영유권 갈등에서의 우위 확보를 위하여 나섰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때 시진핑은 미얀마 정부의 실세였던 아웅 산 추 치와 미얀마 군부의 통수권자인 민 아웅 훌라잉을 각각 만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얀마 군부가 기대고 있는 러시아를 비롯한 중국 정부에게 미얀마의 민주화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방글라데시에서 중국, 인도를 거쳐 미얀마에 이르는 BICM 경제 회랑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으며, 미얀마를 지나는 송유관 등은 중국의 인도양 진출의 확대의 의지를 보여줬다.
2021년 1월 28일.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에서 있었던 아웅산 수치 고문과 흘라잉 사령관 사이의 담판이 결렬된다. 군부는 29일 오후 5시까지 2월 1일의 문민정부 2기 의회 개원의 연기, 선거관리위원회 해산, 군 감독하의 선거부정 재조사 등의 요구조건을 수용하라는 통첩을 남긴다.
2021년 1월 29일 불안정한 미얀마의 정황을 지켜보던 한국을 비롯한 미, EU, 영국 등 미얀마에 주재하는 17개의 대사관에서 군부 쿠데타를 우려하는 공동 성명문을 발표하였다. 군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법적으로 확립된 절차와 정치적 대화를 통한 방식의 문제 해결 등을 강조하며 군부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2021년 2월 1일. 새벽 4시 55분. 경찰에 의해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대통령인 윈 민이 체포되었고, 새벽 5시경 군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군부는 동시다발적인 정부 고위 인사와 사회 주요 인사들을 확보한 후 구금 및 억류를 하였고 그 직후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후 새벽 5시부터 6시간 동안 미얀마 전역의 전화, 통신망이 차단되었고, 빠르게 국가 주요 도시를 향한 도로가 차단되었다. 은행은 업무를 정지하였으며, 1년간의 국가 비상사태 선포 이후 미얀마의 권력은 훌 라잉 사령관에게 이양된다.
군부는 1년 뒤 '공정한 총선'을 재실시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