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란 거저 받는 것.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받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은 자격이 없어야만 그것을 은혜라 부를 수 있다.
때문에 은혜는 겸허와 겸손의 표현이며, 신앙의 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은혜는 기독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매우 아름다운 단어이다.
은혜란 기다림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바랄 수 있는 마음마저도 사치인 그것은 한 없이 때를 기다린다. 은혜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구분하며, 하나님의 때를 믿는 마음이다. 때문에 은혜는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의 영광 보기를 구한다.
때문에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지며 완성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계신다 하신 그 한마디가 은혜가 되었으며, 그 말로 은혜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은혜는 신에 대한 한없는 신뢰의 표현이자 신자의 표징이다.
그러나 은혜는 오용되고 남용되기 쉬운 단어다. 너무나 쉽게 쓰이는 말이며, 너무나 자격 없이 받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나 은혜가 될 수 있으나, 아무것에나 은혜라는 말을 붙인다. 심지어 사람들은 '은혜받았다'는 말 조차 무슨 뜻인지 크게 고민해보지 않고 전승되는 어절처럼 사용한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내가 거저 받은 것이 너무나 아름답고 존귀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때문에 은혜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한 찬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은혜를 받았다 함은 은혜를 묵상한 뒤에서나 쓰기 적법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은혜는 개인적인 감동을 넘어선 세계관의 변화를 줄 크나큰 사건임을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만났다는 말에 이 문장을 붙이고 싶다면 그만한 삶의 변화가 이끌어져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때문에 은혜를 받았다 함은 내가 받은 것이 정말 은혜로 받은 것임을 알고 그것에 응답하는 책임감이라 말할 수 있다.
은혜에는 응당한 책임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적 윤리관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받은 것이 은혜이기 때문에 그 기대에 부흥한다는 결심이 서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은혜받았다' 말하는 언어의 무게라 할 수 있다.
은혜는 값이 없는 것이나 결코 값싼 것이 아니다. 은혜는 그 값을 구하지 않은 것이나 무슨 값도 치를 필요다 없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은혜를 받음은 응답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아래 보이는 행동의 촉구이며 곧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의로운 삶의 고백이라 볼 수 있다.
때문에 은혜야말로 신자의 고백이다. 은혜가 내림은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과정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시며 동행하신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다.
그러니 그대. 은혜를 받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