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쟁이"

서울역 쪽방촌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주고 온 이야기

by 광규
"예수쟁이 니가 좋은 일 하고 간다."


추레한 차림의 쪽방촌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소망을 찾는 이들' 이라는 쪽방촌 거주민과 지하철 노숙인들을 돕는 단체였다.

나는 그해 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할 예정이었다.


예수쟁이가 좋은 일하고 간다는 쪽방촌 아저씨의 말이 기분이 좋았다. 원래 그 말은 멸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기에 너무나 좋은 단어였다.



쪽방촌이란 곳 자체가 처음 보는 이들이라면 충격적인 장소일 것이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와 다를바 없는 존귀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한쪽에는 고층 빌딩과 서울 도시한복판의 풍경이 있다. 씁쓸한 대조가 풍경을 채웠다.


쪽방촌 동네의 풍경


그러나 바로 옆, 조명과 빌딩 아래서 이들은 하루 하루의 생계가 힘든 생계를 이어간다. 이곳엔 제대로편히 누워있을 자리조차 없다. 사람답게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도 이들을 거들떠보려하지 않고 이곳을 피해갔다.


"그러니까 내가 이들을 찾아가야한다."


이들이 나를 예수쟁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사역을 마치고 내 마음을 때린 생각이었다.


그들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떠오를 따뜻한 의미를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니 그 이름에 맞는 사랑을 해야한다. 나는 그러기 위해 스스로 멈출 수 없음을 직감했다.


약 2000년전 베들레헴 민가의 1층의 가축이 살던 곳. 사람들은 2층에서 재웠으나 자리가 없어

짐승들의 돌 구유위에 누우셨던 아기가 있었다.


그들은 나를 예수쟁이라 했다.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셨고,

병든자와 가난한자들은 직접 찾아가신 그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쟁이다.


그는 누구도 찾지 않는 이들의 곁에 있었다.

그게 사랑이란 계명이자 철학이 전한 메시지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잊어버린 본분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의 존재함을 멈춘다는 의미와 같았다. 이날은 오히려 내가 중요한 선물을 받았다.

나의 방향성이 이날의 별칭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다.


다음엔 동네 독거 노인분들을 위한 쌀과 방한 용품 전달이 예정되어 있었다. 여전히 추위 속에 던져진 이들이 많았기에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기억에 남는 기도문이다. 이곳에서 식사하는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의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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