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이야기 ; 설교 <빈자리> 중
빈자리가 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자신이 남기고 간 것이 많은 사람일 거다. 정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사람일 거다. 많은 일을 하고 주고 간 것도 참 많은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빈자리가 크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좋은 걸까?
아쉬움이 많다는 건 그 사람이 진정 주고 갈 수 있는 전부를 준 게 아니라는 걸지도 모른다.
빈자리가 크다는 건 그 사람에게 받아야 하는 것을 더 이상 받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랑도 사역도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빈자리를 최대한 채워주고 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역이지 않을까?
공백이 느껴짐은 주고 간 것이 아니다. 공백이 느껴짐은 채움을 주고 떠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결실을 나눴으나 결국 그것을 가지고 떠나버렸음을 의미한다. 계속될 수 없는 사랑을 두고 떠난 것을 빈자리가 느껴지는 사람이라 부른다.
빈자리가 느껴짐은 완전히 내려놓고 갔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씨를 뿌리가 싹이 트며 열매를 맺었지만
끝내 그 나무를 뽑아 떠나간 터. 그곳을 바로 빈자리라 부를 수 있다.
나무가 뽑힌 파인 공터를 보며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참 아쉽다고. 이제 우린 어쩌냐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그 나무를 남기고 떠나야 한다. 결실을 그 자리에서 맺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려놓고 가야 한다.
열매 맺는 나무를 두고 떠나 계절이 바뀌어도 그 나무를 보면 떠올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결실을 나누며 사람들은 당신을 떠올릴 것이다.
참 고마운 사람이라고, 그 감사가 과거형이 아니도록, 그 사랑이 현재에도 살아 숨 쉬도록 생명을 불어넣고 떠나는 사람이라야 진정 사랑을 했다 말할 수 있다. 그런 자생을 만들어야만 진정 사역을 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나무를 여운이라 부른다. 여운. 연주가 끝난 뒤에도 남아있는 잔향이며, 다시 시작할 앙코르의 교두보다. 다음을 이야기하고 다음을 예비해야 한다.
여운이 남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