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이야기
어떤 감정에 사무친다는 표현을 사용하면 그 심각도가 퍽 더해져 보인다. 골수까지 깊게 스미는 아픔에 괴로워 몸을 파들 거리는 그 느낌을 참 잘 살린 단어이다.
외로움은 사람을 말려 죽인다. 단절된 관계들 속에 스스로 무가치해지는 자해를 멈추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모든 감정은 독이 되기도 하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긍정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의 차이다. 긍정적인 사고로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게 아니다. 현실 자체를 긍정하는 마음이 어려운 감정을 대할 때 특히 도움이 된다.
모든 사람은 외롭다.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는 상실에 대한 크나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로움에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이들이 있다.
한 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행님. 진짜로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여자를 멀리하라 그랬습니다.”
폐관수련이란 말이 있다. 실제로 이 친구가 폐관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한 마음 가짐을 했음을 의미한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다른 곳에 마음과 시간을 뺏기지 않고 온전히 성취를 목표로 달리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내게 보였다,
어째서일까 그 친구는 목적을 위해 스스로 고립을 택했다. 성취가 주는 기쁨이 어느 정도 관계가 주는 행복을 초과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자기 내면이 바라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의 목소리는 솔직하다. 그 솔직함은 나를 알아야 닿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좀처럼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욕심이라는 게 있다. 무조건 나쁘다고는 볼 수 없는 선택과 집중의 요체가 있다. ‘내가 원하는 것’ 이기적으로 들릴까 봐 주눅 들어있던 자신의 바람이라는 게 있다. 이루지 못해 못내 한으로 남았을 것들이 가슴에 찌꺼기처럼 쌓여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 글과 함께, 나와 함께 고민을 시작했으면 한다.
고민의 끝이 명쾌한 해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평생 답을 찾아가야 하니까. 물음이 끝나는 시점은 삶 역시 마지막에 닿았을 때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가 글을 남기는 이유는 그 모든 여정이 외롭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있다.
나를 무시하면 안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나 자신이 내 목소리를 무시하면 안 된다. 하다못해 오늘 어떻게 쉬고 무슨 밥을 먹을 건지도 제대로 말 못 하는 이들이 있다. 평생 눈치만 보고 살아서 그런 걸까 나는 이런 안타까운 이들을 보면 마치 나의 아픔을 겪는 듯 가슴이 아렸다. 하지만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여줬으면 한다.
“너는 지금 뭘 원하니?”
나를 대면하기 위해서 고독해질 필요가 있다. 언제나 항상 그러라는 말이 아니다. 때로는 주변의 소음을 차단해야만 들리는 나만의 외침이 그 속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때로는 그 외로움이 나를 만들었다.”
당신이 아는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아는 나는 뭘 원한다는 그런 말을 하기 참 죄송스럽고 어려워하던 존재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앓아왔다. 하지만 늦게나마 응어리가 터졌고 한동안 아파야 했었다. 지난 시간을 원망하고 후회하기까지 했다. 당신에겐 그런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외로움이 사무쳤다면 그 안에 목소리가 골수에 깊이 스며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외길에서 당신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조금 쑥스러울지 몰라도 다가가 어깨를 한번 토닥여줬으면 한다.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긴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 외로움이 당신을 만나게 할 것이다. 나를 만나게 했듯 당신의 몸속에 쓰인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약초는 독초이기도 하다는 말이 있다. 그 성분을 잘 사용해야 약이 되고 때로는 독이 된다는 말이다. 외로움이 사람에게 독이 되고 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 깊음을 잘 우려내서 사용할 줄 안다면 그만큼 깊은 사람이 될 기회가 되리라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쫓던 자질구레한 것들을 때로는 뒤에 두고 그 속에서 소리치던 당신의 목소리를 들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