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이야기
“내가 하나라도 선한 선택을 했다면 너의 영향이 있었을 거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언젠가 힘든 시기를 보냈던 한 지인의 말이 내게도 큰 힘이 되었듯 말이다. 해준 게 없었지만 나에 대한 기억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다는 게 참 감사하고 또 죄송했다. 상처를 삼켜야 했던 그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며, 어느새 내 가치로 물들어가는 이 관계에 나만 겪었을 아픔을 전이했을까 염려해서 그렇다.
내가 무슨 선택을 하더라도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나를 만나는 이야기. 그중에서 내 안의 선한 모습을 찾을 수 있던 자존감 메이커와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자존감 메이커’ 한때는 내 별명이기도 했던 이 말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 말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친구가 됐다. 어디에 있더라도 ‘내편’이 있다는 감각은 언제나 하루를 새롭게 한다. 훈련소에 있을 때 한 조교가 이런 말을 했다. “어디에 있더라도 내가 잘하건 못하건 간에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을 딱 하나만 만들어라.” 삶의 정수가 담긴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외롭다. 존재론적 단절에 의한 것일지는 몰라도 모든 사람은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인턴쉽 때 외국에서 만난 한 선교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모든 사람은 외로워 그걸 숨기려고 많이 만나는 거지.” 한국인이라곤 몇 가정 찾아볼 수 없는 먼 이국의 도시에서 극심한 외로움과 싸워온 이의 말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외로움은 선의를 선의로 받아주는 법을 아는 이들을 통해 잠시나마 해소될 수 있다.
사무치는 외로움을 통해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외로움은 인격이 인격을 만나길 끊임없이 갈망하며, 혼자 그 모든 아픔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나의 인격”이 외로움과 함께 멍든 가슴속에서부터 차올라와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아프지 않은 방법으로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방도 역시 존재한다. 바로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로부터 내가 누군지 듣는 것이다. 내가 평생 꿈꿔온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 모습에 맞는 이야기를 들으면 비로소 마음에서 빛이 난다.
내가 한평생 추구해온 모습은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었다. 하루를 살아도, 한마디 말을 해도 예쁜 것으로 나누고 싶은 게 내 마음이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지표가 없다. 주변에 사람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말이다. 누가 들으면 우습기도 하고, 오글거리기도 하는 게 내가 표지로 삼은 인생길의 모토였다.
언뜻 보면 참 싱그러운 사람이 다 있겠다 싶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원한 건 언제나 깊은 사람이었으니까. 맨 첫 문장을 기억하는가. 이 말을 해주신 형과 나는 그리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인격 간의 신뢰가 언제나 있었다. 내가 정말 믿고 아끼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나를 만나는 이야기에 갑자기 타인이 나와서 아직 갑작스러운가? 그곳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라는 하난의 인격은 결코 타인의 개입 없이 온전히 스스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자기 인식은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관계 속에 살아간다. 나라는 인격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숨 쉬며, 그들의 언어가 나의 언어를 만든다. 그렇다 우리는 소통하는 사람이며, 나를 구성하고 정의하는 언어조차 관계적인 것이다.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그 배움 안에 당신이 찾는 ‘내가’ 있다.
우리는 서로를 평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서로에게 악의를 품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신약성경 로마서 12장 17절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항상 지키려고 하는 성경의 가르침 중 하나이다. 휴대전화 배경화면이나 카카오톡 프로필에도 까지 해놓기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은 이 말을 한번 이상은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형에게서 연락이 온다. 무척 자기를 힘들게 하고 싫었던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그리고 내가 항상 하던 말들과 저 글귀를 보고 스스로를 다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형의 인격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나와의 말이나 경험을 통해 이미 만들어져 있던 훌륭한 생각이 극한 상황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 자리 잡은 깊은 자아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날 수 있다.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 내가 몰랐던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막힌 난제가 풀리듯 내 안에서 나오는 명쾌한 해답들의 출처가 바로 그 안에 있다. 자아가 담지하고 있는 자기만의 신념은 언제나 해답을 찾길 바라는 것이다.
사람은 내가 하고자 하는바, 되고자 하는 그 이상적인 자아상에 스스로를 투영하고자 한다. 한 단계, 한 발짝 내딛다 보면 어느새 성장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건 아픈 순간에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있다. 인격의 도야는 어두운 중에 손을 잡고 이끌어줌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성숙해지고, 그렇게 성장을 하는 게 아닐까
결국 평생 나를 알아가고 나를 만나는 게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삶이 이어지는 동안 계속해서 누군가와 만나며 우리는 사랑을 할 테니까. 나와 만나는 것도 타인을 만남 같이 사랑으로 존귀하게 대할 때라야 건강할 수 있겠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내가 나를 만날 때도 좋은 사람으로서 다가갈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을 통해서 나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은 그를 통해 내게 질문을 던질 기회가 생긴다는 말이다. 나를 만나는 이야기에 남의 이야기를 쓰는 것. 그건 어쩌면 우린 수많은 이야기가 쌓이고 쌓인 산물이 아닐까 싶었다. 생각이 모이고 마음이 모여서 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 자신을 만나는 이야기는 결코 혼자서 오롯이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에게도 자신을 만나게 해 줄 선한 타인이 있길 바란다. 자신처럼 소중한 그런 사랑스러운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