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어느 깊은 밤. 별무리가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큼 신비감을 고취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붉게 터치며 고개를 내리는 노을을 바라보는 일이다. 가장 빛나는 것이 가장 겸손한 자리로 떠나며, 가장 당연한 빛이 완전히 몸을 숨기는 순간을 맞이하는 까닭이다.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도 정신을 차린다. 어느새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미 저 산과 도시의 검은 윤곽 아래로 넘어가버린 둥근 광채와 이별한다. 찰나가 지난다. 감상이 깊어질 그 틈바구니에 청색 베일이 천궁의 봉우리로부터 드리내린다. 이제 우리는 밤을 맞이해야 한다.
저문 것처럼 떠오르는 태양은 매일 새벽과 저녁으로 자신의 일을 반복한다. 재생하고 역재생하는 태양의 모양은 완전히 상반된 방향에서 극명히 대조되는 풍경을 비춘다. 글을 쓰는 게 어려운 이유는 이런 데에 있다. 매일 새로운 일이 없더라도 특별하지 않은 것을 특별하지 않다고 하는 것도 글이며, 그것을 새롭게 조명하는 일도 글이다. 새롭게 바라보는 일 혹은 세밀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시선의 문제이며, 마음가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럴 때에 큰 도움이 되는 감정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을 나는 "경외"라고 말한다.
멋들어진 표현이 없어도 좋다. 사고의 틀이 깨어질듯한 어휘의 틀을 제시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바라보는 방식을 전하는 게 나의 문장이다. 무엇이 비문이고, 무엇이 읽기 어려운 문장인지에 대한 공식은 있다. 그러나 문법이 아닌 표현에는 정답을 두지 않는다. 오죽하면 천재는 천진난만하며, 어린아이의 몇 마디에 소름이 끼치는 천재적인 발상이 발견되겠는가. 기술은 정제하지만, 가능성에는 한계를 두지 않는다. 이것은 또 어느 정도 상상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석양을 바라보는 법에는 정답이 없다. 바라보는 일에 충실하면 된다. 그렇다면 석양을 말하는 법에는 정답이 있을까? 석양이란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그것이 떠오르게 할 수 있다. 그 향기와 분위기, 색감과 소음을 환기시킬 수 있다. 언어가 무서운 점은 어렴풋한 어떤 것으로 마음을 사로잡아 묶어버릴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일이란 것은 매혹적인 능력이다. 오글거린다라는 말로 폄훼하기에는 이 영역의 재능은 아직 한계를 맞이한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도, 서사를 부여하는 것도 나의 일이다. 내 마음에서 피어나거나, 어느 날 와닿아야 한다. 중요한 건 주변과 관계를 맺어가려는 나의 태도다. 때때로 열려있는 마음에서 혹여 그것이 무의식적인 중에 일어난 것일지라도 우리는 어느 날 예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연장선을 계속해서 덧붙이려는 노력이 예술가로 가는 길이다.
고상한 얘기처럼 느껴질까? 자못 진지해 보일 수 있지만 사뭇 어려운 일은 아니다. 대단한 문호를 양성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소에 마음을 정돈하고, 마음을 표현하는 일을 말하려는 것일 뿐이다. 내가 가르치는 글쓰기는 이런 일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글에 사로잡혀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면, 누군가 좋은 기회에 출판을 권유하게 된다면 이 역시 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을 기쁘고 벅찬 순간이다. 그러나 보람은 늘 그렇듯 글을 쓰는 일 자체에 있다. 이미 이것으로 우리는 혼자를 넘어서 소통의 길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마음을 기록하는 법이다. 마음이 머무는 법이고, 오늘 나 스스로의 마음에 한 번 더 귀를 기울여주는 일이다. 이기심이 아닌 자기애이며, 자존심이 아닌 자아존중이다. 이것의 지극한 목표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는 남을 존중하는 일을 끊임없이 넓혀가는 데에 있다. 그래서 나는 존중의 글쓰기를 좋아한다. 따뜻하게 전해주고, 그 따뜻함을 되돌려 받는 일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 어딘가가 뭉클하며 포근해지는 일이다. 눈물이 흐르지만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각자의 마음에 솔직해도 되는 그런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상하게 하는 그런 일이 아니다. 나는 글로 마음의 무게를 가르친다. 그 형언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존엄한 가치를 가르친다. 나는 지금 글쓰기로써 인격의 존귀함을 말하려 한다.
석양에 마음을 두는 일은 내가 아무런 공을 들이지 않은 저 풍경에 경외를 표하는 일이다. 그러나 늘 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당연하며 소중한 모든 것에 한번 더 배려와 존중을 전하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은 타자를 내 마음에 깊이 묵상하는 일로써 시작한다. 그리고 그 근원은 언제나 나 스스로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달려있다. 이것은 만물에 대한 경외이다. 어떤 종교적인 가르침을 전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어떤 철학하는 방법은 전하려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글 위에서 전도사가 되는 것이다.
자 이제 나와 함께 석양을 바라보자. 내일은 다시 해가 뜰 테지만, 눈 비비고 일어나기 어려우면 정오의 햇살을 노래해도 괜찮다. 다만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나 일출을 맞이해야겠다. 여전히 내 마음에 가득 채워지는 이 경외감이 멈추지 않고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당신도 이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 경외를 분명히 만물을 향한 경외 곧 이웃을 향한 지극한 사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