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나 회사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억하면 좋을 금언, 다들 하나쯤 마음에 두고 계실 겁니다. 저는 오늘 한 가지 떠오르는 게 “가장 먼저 웃으며 다가와서 호구조사 하는 사람을 주의해라”겠습니다.
사람은 대체로 먼저 다가오는 이에게 마음을 기댑니다. 그러나 낯선 공간에서 먼저 찾아온 이들이 선한지 알 겨를이 없지요.
이 경우를 두고 청나라 문인 조익이 노자의 말을 살짝 변형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자불선 선자불래(來者不善 善者不來).”
곧 ‘찾아오는 자는 선하지 않고 선한 자는 찾아오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앞서 말한 먼저 밥 먹자는 사람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는 말이겠습니다.
착잡한 말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사회에서 크게 데어봤기 때문에 이 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류의 생각을 몹시 싫어하는 편입니다.
선의에 계산을 들이밀면 어쩐지 사람이 몹쓸 놈으로 보이게 합니다. 그런 이유로 싫어합니다.
진실로 우리네 세상은 제법 살벌합니다. 그리고 삭막합니다. 빗물이 먼저 지면을 두드리지 않으면 굳은 흙은 풀리지 않습니다.
부드럽게 갈라지는 땅이 아니고서야 어찌 고운 새순이 자라날까요? 사람 사이에도 틈바구니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게 찾아오는 낮선이는 내 영혼을 깨우는 단비가 되기도 합니다. 적당한 긴장이 곡조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듯이, 낯선 것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부담감이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21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핰 인터뷰에서 환대야 말로 강퍅한 세상 속 인류가 지켜야 할 의무라 말했습니다.
“인류는 전쟁, 폭력, 궁핍으로 삶의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환영하고 환대할 의무가 있다.”
탄자니아에서 태어나 영국의 문학가로서 살아야 했던 그의 삶이 소설을 통로 삼아 세상과 만났습니다. 이 디아스포라의 목소리가 세상에 울림을 준 이유는 무엇이던가요? 우리 모두가 내자이면서도, 선자가 내게 내자가 되어주길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세상이지만, 선한 이는 분명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선한 이들이 더욱 풍성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먼저 길을 나서서 찾아가지 못한 이유는, 필경 바른 방향감각을 상실한 까닭이겠지요. 두려움과 이기심 같은 혼란스러운 소리들 말입니다.
부디 선한 사람으로서 찾아가십시오. 환대를 주고받음이 낯선 세상에서, 진짜 환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탁월하게 환대하는 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진심이 받아들여지는 따듯한 세상이 곧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