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특별하게 해줄 기적

본업

by 광규김

설교 <기적>의 일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쓰임이
한편의 드라마 같고 한편의 영화 같을 것이라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짊어진 생명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다. 섬김은 그런게 아니다. 선포하는 일은 다분히 현실적이어야하고, 반드시 현장을 알아야한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무언가 대단한게 있을거라고, 신비하고 감동적인 계기와 원동력이 있으리라고 하지만 그 예수님 조차도
3년의 사역 이전에
30년의 평범한 삶을 사셨다. 우리에겐 보여주지 않은
그분의 시간을 보내시고,
그는 유대 나사렛으로부터 갈릴리 호수로 그리고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으로 떠나셨다. 소설 같은 인생이 아닌 어디에나 있는 별거 아닌 이들이 그를 위해 생계를 버렸다. 성경의 공간적 배경은 작은 땅 이스라엘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알고있다. 세상에서 손꼽히는 세를 자랑하는 종교 조차 그 경전의 배경은 그리 넓지 않음을.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설명하시기에는
드넓은 초장과 광대한 문명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너는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고.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던걸까 누군가 기적을 구하면
그보다 더 크고 화려했으면
과연 너가 이해할 수 있었겠느냐
혼내시지 않으셨을까 그렇다면 예수는 행복하셨을까
우리에겐 알려지지 않은 30년이란
그에게 어떤 가치였을까 고난을 앞두고
죽음을 앞두고 역사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말하는
조명 밖의 인생들을 만난건 독배를 들기전 그에게 필요했던 마지막 선물은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이들과 맞닿아 살았던
지극히 작은 감정과 추억이 아니었을까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있는
아프고 외로울뿐인 사람들이
그에겐 가족이었을까. 지금의 우리 처럼
그들이 예수의 3년을 지탱하게해준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예배와 공동체가
누군가에겐 잠시뿐인 놀이터가 될 수 있듯이
돌아서고 외면하며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교회가 예수를 따른다면 교회 공동체는 도리어 사람들에게 깉은 취급을 받게 되리라. 그들이 믿는 신이 말한 황금률보다 그들은 스스로 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다. 화려할 수 없는
위로가 필요했을뿐인
볼품없는 이들의
구원이었다. 그냥 보고 싶어서
그저 사랑해서
남들보다 특별해지라하지 않고
저들에게 눈길을 기울이는
시간이 지나면 바스라질 생명을 주셨을 뿐이다. 그럴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타자를 인정하는건
예수를 배우는 일이다. 예수는 기적을 행했지만
기적은 배신을 막을 수 없었고,
숱한 이적의 결과는 그의 막을 수 없는 죽음을 초래했다. 그분을 믿기 위해서 필요했던건 표적이 아니라
한번은 찾아올 죽음을 받아들일 고귀한 가치였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부활조차도 그를 등진 이들의 믿음을 돌릴 수 없었다. 우리는 이미 스스로 알고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기적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전능한 표적은 나를 바꿀 수 없다.
결국 인간 기적까지도 자신의 욕심을 따라 이뤄지길 바라는 그 효용 이상의 가치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눈에 변하는게 없는 단조로운 리듬이 모여
하천이 산을 깎듯 조금씩 변하게 하며
언젠가 깊은 계곡을 파고 떠나듯이 그 귓가에 조금씩 흐르던 하나님의 부르심이
내일이 지나고 또 오늘을 보내서
우리의 가슴 속에 흔적을 남긴다. 그분이 지나가셨던 작은 흉터만이 남아
우리는 신을 찾는다.
나를 특별하게해줄 신을.
그 나라는 이미 임했으면 서도 우리는 기다린다. 신은 우리를 찾는다.
거기엔 아무런 이유도 두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