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돌아가자.
교회가 공개적인 비난을 받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참 다행이다.
교회의 치부가 세상에 드러났다. 교회는 다급해졌다. 참 다행이다.
드디어 문제를 고치려는 시도가 생겨났다. 드디어 공동체가 공동체를 염려했고
드디어 교회를 떠난 이들의 귀에 교회의 자생의 목소리를 들려줄 기회가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마음에 사랑이 식어서 그랬냐는 비난 섞인 조롱을 한다면,
그렇다. 내 사랑이 적었기 때문에 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겠다.
몸에서 멀어졌고, 마음이 점점 떠나가는 듯했다. 적어도 내가 직접 겪지를 않아서 그랬을까
어느 순간부터 곤두서있던 경각심은 줄어들고 무관심이 내 마음을 덮기 시작했다.
변하지 않았다. 무엇하나 바꿀 수 있는게 없었다. 나는 젊었고 가난했다.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변할 사람과 공동체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내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작고 연약한 어린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예수께 의지해야했다. 내 부족한 마음을 다시금 돌이켜
나는 그분과의 관계를 먼저 수복해야했다. 그 일은 간단했다.
나만 돌이키면 됐다. 나만 돌아가면 그분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다.
오늘날 무너지는 교회의 상황도 그렇다. 우리만 돌아가면 된다.
여호와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셨다. 우리만 돌이키면 그분은 우리를 맞이해주실터였다.
많은 이들이 눈물로 탄원했다.
우리가 돌아가자.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누가 들었을까. 듣고 있었다면 바뀌었을까? 우리의 외침은 공허했고,
우리의 외침은 우리 스스로 조차도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교회야. 여호와께 돌아가라. 여호와께 돌아가라.
예수의 가르침으로, 성경의 교훈으로 원래 교회가 있어야할 모습과 존재로
교회야 돌아가. 너희 하나님께 돌아가라…
그것이 세상의 지탄이었으며, 세상의 조롱이었고, 우리가 감히 저들이 주님을 대적한다고 말하던
그 모욕의 본질이었다. 세상은 말하고 있다. 너희가 돌아가라.
주님이 세상을 통해 말씀하고 계셨다.
너희 먼저 내게로 돌아오라. 내게로 오라.
항상 주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묻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썩은 교회도 썩은 세상도 마땅치 않다고 생각되는 그 곳에
오히려 가장 주님이 계신다. 그곳에 가장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은 그곳에 계신다.
그리고 지금 교회에 주님이 가장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이 이곳에 계신다.
그러니 교회야. 여호와께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