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어른이 될수록]
힘든 얘기를 할 곳이 점점 없어진다는 건 어른이 될수록 겪는 씁쓸한 수순이라고들 한다. 살아온 시간이 늘어난 만큼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도 그만큼 많아졌다는 말이 무색하다. 그래서 외로운 어른의 첫인상은 무척 모순적이었다.
힘든 얘기를 할 곳이 없다. 마음을 터놓을 곳이 없다. 어느덧 나를 비롯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남을 판단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쉽게 믿지도 않거니와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도 않는다. 이 푸념으로 내가 너무나 쉽게 판단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염려는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타인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내게 돌아온 생각의 편린은 꽤나 아플 것이다.
위로를 받는 건 좋지만 얕보일 수는 없다. 부정적인 사람이 되는 순간 조금씩 엮이기 싫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건 좋지 않다. 그런 건 싫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곪는다. 숨구멍이 막힌 환부는 점차 썩어가며 악취를 풍긴다. 낮아진 자존감에서는 숨길 수 없는 냄새가 난다.
[내 앞가림 조차]
어느덧 내 앞가림하기도 힘들다는 말이 피부로 와 닿는다. 정감 있는 오지랖을 부리기 불편해진다. 내 한 몸 어떻게 하기도 버거운 사람이 되어간다. 지금의 청년들처럼 자리잡지 못하고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야 하는 이들의 정서는 그런 너그러움을 허용해줄 만한 여유조차 없다. 누군가에게 내어줄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전에 이미 나 자신에게조차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런 호소를 하는 청년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내가 이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같은 시대의 정신과 아픔을 공유한다. 우리는 함께 병 들렸고 짓눌려왔다.
청년은 강하지 않다. 청년은 외로웠다. 청년이라고 건강한 게 아니었다.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속단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과 육신은 비명을 지를 곳이 없었다. 낙인은 너무나 쉽게 내리 찍히는 것이었고, 실패가 이끌어주는 성공이란 말은 그들과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을 터다. 도전할 자격과 기회마저 재능처럼 천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란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두가 힘들었다. 남들도 악착 같이 살고 있는데 내 이야기를 하려는 게 민폐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많은 청년들이 입을 닫았다. 어른이 되면 과묵해진다 했던가. 그들의 입은 무너진 마음의 잔해에 깔려 막혀있었다. 목구멍이 막혀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그들은 소리 없이 고난 속에 주저앉았다.
그런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세대의 아픔이란]
세대의 아픔이란 거창한 주제는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지 않을까. 점멸하듯 반짝이는 작은 마음 하나하나에게 나는 무슨 말을 전할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대화를 한다면 세상은 꼭 힘을 더 내지 않더라도 결국 흐르듯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될까.
그대는 하소연을 풀어놓을 곳이 없단 푸념을 했었고, 나는 무력하게 듣고 있을 뿐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간 우울증 상담을 받으며 깨달은 게 있다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어딘가에 털어놓을 곳이 있다는 건 상한 마음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상담가를 찾아가야만 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 오늘 말을 하고 싶다.
[힘들 얘기를 할 곳이 점점]
"힘든 얘기를 할 곳이 점점 없어진다는 건 지금 네가 내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무너진 자신의 마음이 거기까지 옮아간 거지. 자신을 상처주다못해 이제는 주변까지 밀어내기 시작한 거야. 어쩌면 그들을 미주 하지 못할 만큼 지쳐서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마음에 그랬을 수도 있어.
어쩌면 너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애써 피해 가면서까지 말이야. 네가 약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약할 수 있다는 배려를 하는 거야. 하지만 잠깐 그 선을 넘어 네가 무례를 주기를 오히려 바라고 있을 사람도 있다는 거야. 그 미안함을 무릅쓰고 내게 짐을 나눠지길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다가와 봐. 너는 여전히 누군가에겐 기다려지는 사람이고, 그 짐을 나눠지려는 마음을 우린 언제나 사랑이라 불렀어."
-봄이 저물어가는 어느 날. 청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