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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축복 Oct 22. 2023

엄마, 아빠만나러 하늘나라 가자

봄이 아빠가 떠나던 해, 봄이는 3살이었다. 아직 죽음을 이해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 처음 1년 동안은 아이에게 무수히 거짓말을 해가며 아빠가 돌아올 거라고 다독였다.  4개월 동안은 우리가 살던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았다. 친정으로 시댁으로 사촌언니네 집으로 봄이를 데리고 돌아다녔다. 남편의 흔적이 다 남아 있는 우리가 살던 그 추억 속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 후에 그 집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자식을 잃은 시어머니께는 봄이랑 나까지 그곳을 떠나가는 것은 너무 죄송한 일이지만, 그게 내가 봄이를 데리고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지역으로 집을 알아보고, 직장을 찾아 떠나왔다. 새로운 집에 이사 와서도 봄이는 한동안 아빠를 많이 찾았다.


”아빠한테도 우리 집 알려줬지? 아빠가 여기 찾아올 수 있는 거지? “


처음 1년은 아빠를 찾으며 보고 싶다고 많이 울기도 했다.  

몇 번은 달래주고 어떤 때는 참지 못하고 봄이를 함께 부둥켜안고 운 적도 있다.


“엄마도 아빠 보고 싶어,,,,“


아빠가 보고 싶다고 해서 아빠와 함께 놀았던 마지막 영상을 틀어주자, 엉엉 울어서 그 뒤로는 되도록 안 보여주었다. 이사 오면서는 아빠 사진은 다 치워서 눈에서 안 보이게 했다.


요즘은 가족끼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스마트폰 하나면 영상통화도 채팅도 , 그리고 매일같이 수많은 사진으로 일상을 공유하는 세상이다. 사실 4살이면 그 정도는 가능하다는 걸 아는 나이이다.


아빠가 아무리 멀리 일하러 갔다 해도 어떤 곳이길래 인터넷이 안돼서 연락이 닿지 않는지,,,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 하늘나라에 대해 아직 이해를 시켜줄 수 없는 나이. 4살.


1년이 다 되어 갈 무렵 ,,, 계속 이렇게는 안 되겠다 생각한 그 시기에 마침 블로그 협찬으로 유아심리상담을 할 수 있게 됐다. 놀이상담정도 받고 글을 써주는 정도로 생각했지만, 막상 가보니 상담신청서에 모든 상황을 기재하게 돼있었다. 사별인지 이혼인지, 누가 양육하는지 등등.. 그래서 솔직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돼서 펑펑 울며 선생님께 상담을 했다.


아빠의 죽음에 대해 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역할극을 추천해 주셨다. 아이와 인형놀이를 하며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해 주고, 사실 우리 아빠도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해 주라고 했다.


어느 정도 죽음을 이해하는 나이부터는 사람의 죽음을 한 번에 받아들이고 그때부터 이별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3살이었던 봄이는 성장하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아빠와의 이별을 새롭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죽었다는 것을 정확히 알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죽음이라는 단어보다는 아빠는 하늘나라에 가셨다고 먼저 설명을 해줬다.


나의 생각으로는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것을 이해했기에 죽음도 이해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 만나러 하늘나라에 가자는 말에 가슴이 너무 메어온 적도 있다. 어떤 날은 유치원 체험 학습으로 국군아저씨의 무덤을 보고 오더니, 아빠도 무덤이 있느냐고 물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을 화장하는 것 그리고 뼈만 남아 가루가 되어 보관하는 사물함이 있다는 것도 설명을 해줬다.


일곱 살이 된 지금까지 봄이는 아직 아빠의 유골이 있는 납골당에는 가보지 못했다.

아빠가 보고 싶지만, 그곳은 무서워서 가지 못하겠다고 해서 아직은 데려간 적이 없다


이렇게 봄이가 받아들이는 일도 걱정이었지만, 어린이집 생활을 하며 엄마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조차 봄이가 겪을 상황은 훨씬 더 많을 것이었다. 어른들이야 내가 피하고 살면 그만이지만, 봄이는 원하지 않아도 어린이집이나 미술학원 같은 곳에서 가족 그림을 그리거나 소개를 해야 하는 상황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날은 유치원에서 나만 아빠가 없다고 하원해서 속상해 울기도 했다.


00이모도 어릴때 엄마가 돌아가셨대 하며,  안좋은 상황들만 예로 들어가면 위로를 해야만 하는 것이 서글프기도 했다.  


특히 아직은 미숙한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 행여 봄이의 상황을 아는 아이들이 놀리거나 하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었다. 아직 그 나이또래 아이들은 우리 엄마아빠가 최고이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나이다.


유치원 밖에서 우연히 만난 유치원 같은 반 아이는 뻔히 봄이 상황을 알면서도 나는 조금 있으면 아빠가 오셔서 호텔에 놀러 간다고 하면서

“근데 봄이는 왜 아빠가 없어? ” 여러 번 물어보기도 하는 상황을 목격하기도 했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목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당당한 봄이지만, 어떤 때는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기가 죽어 있는 봄이 모습에 마음이 아픈 날도 많았다.


지금도 처음 만나는 엄마의 지인이나 친구한테

“저는 아빠가 없어요. 엄마랑 둘이 살아요. ”라고 말할 때면 아이의 아이덴티티가 “아빠 없는 아이”라고 중요하게 자리 잡아서 그런 건 아닌지 안쓰러울 때가 있다.


며칠 전에는 봄이의 모습을 예쁘게 남길 프로필 사진을 찍을 기회가 생겨서 갔다. 그곳에서 엄마 아빠와 온 가족이 출동해서 온 모습을 보고 봄이가 무슨 생각을 할지 ,,,,엄마랑 단둘이 온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지는 않을지,,, 늘 마음 한편에는 미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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