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안돼”
우리 집엔 포도 킬러가 살고 있었다. 엄마를 똑 닮은 딸이었다. 그 해 여름은 나에게 혹독하고 차가웠다. 휘몰아치는 감정들에 파묻히기도 했고 저만치 벗어나 있기도 했다. 오르락내리락하던 날들이었다.
낡은 방충망을 뚫고 귀뚜라미가 높이뛰기를 하여 거실로 날아들었다. 12층 고층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들이 가득했다. 24시간 돌아가고 있던 에어컨으로도 내 안의 화와 답답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날도 일상이 반복되었다. 육아 24시간 동안 나 혼자만을 위한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바삐 움직이다 지쳐 쉬기를 반복하니 몸은 더 무겁기만 했다.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뭐 때문에 그 귀여운 아이에게 버럭 화를 냈었는지.
부엌에서 세탁실로 이어지는 통로에 앉아 엄마에게 짜증을 받아낸 아이가 포도가 먹고 싶다고 했다. 작은 그릇에 포도를 담아 주었더니 앉아서 먹기 시작한다. 엄마의 화가 무거웠던 아이는 이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까만 여름 포도를 입에 넣고 아주 천천히 입을 오물거린다. 눈은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 모습에 너무나도 마음이 미어졌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밸런스에 맞추지 못하고 엄마의 화를 받은 후 긴장이 풀리며 무력해지고 졸음이 쏟아진다.
“이렇게 자버리면 안 돼.” 나 너에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사과해야 한다 말이야. 아가야. 이렇게 잠들어버리면 어떡하니. 그날 그렇게 꾸벅꾸벅 졸면서 여름 포도를 먹다가 끝내 앉은 채로 잠들어버린 아가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아주 강렬하게 남았다. 아이가 잠들어버리면 이제 나는 정신을 차린다.
나 또 뭐한 거니? 너 계속 이런 식으로 살 거야? 잠든 아이를 이불로 옮겨 눕혔다.
잠든 아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엄마가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반성한다. 꿈속에서라도 엄마의 짜증, 화 받지 않고 평온하길 좋은 꿈만 꾸고 일어나길 푹 자고 엄마의 바보 같은 짓은 잊어주길 하고 바랄 뿐이다.
지랄 맞은 더위처럼 내 성장의 변화도 비슷했다. 2년간 살았던 12층의 아파트에서 여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곤충들의 가정방문에서도. 나는 그동안 아이랑 참 많이 웃고 또 미친 듯이 울고 소리 지르고 반성했다. 그럼에도 변화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계속 소리쳤다. 넌 할 수 있잖아. 달라질 수 있잖아. 너 이만큼 왔잖아. 뒤돌아봐.
중1이 된 딸은 이제는 과일을 좋아하지도 않고 포도 킬러가 아니다. 그 해 여름 슬픈 포도를 먹었던 이유였는지 포도를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 돌아서면 잘 잊어버리는 내가 포도를 먹고 졸던 딸의 모습은 왜 그렇게 선명하게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내 안의 문제로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작고 귀여운 아이에게 쏟아냈다.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힘들었지만 내 안에서 해결하기 위해 몹시도 몸부림쳤다. 엄연히 아이가 아닌 나 스스로의 문제임으로. 아이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닌 걸 알고 있으니까. 아이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 까마득해 보이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분명히 작은 걸음으로라도 가고 있다는 걸 스스로 믿고 있는 게 중요하다. 하루하루의 작은 노력들이 쌓여 나도 아이도 편해지는 순간들은 분명히 올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한 번은 내 문제 내 감정으로 요동치며 힘들 때 아이에게 화살이 돌아가 화가 난 일이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닌 과자. 요즘에도 가끔 슈퍼를 가면 집어오곤 하는 내가 좋아하는 꿀 꽈배기. 이것 또한 어떤 게 시발점이 되어 아이를 잡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란 인간이 이렇다. 당장 며칠만 지나면 기억도 나지 않는 일. 그때의 감정 때문에 아이를 잡은 일이 떠오르면 당장이라도 아이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고 싶어지게 쪽팔린다. 사과할 일이 계속 떠오른다. 못난 어미를 용서해다오 딸아.
딸은 그때 꿀 꽈배를 먹고 있는 아이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며 잡았던 엄마를 생생히 기억한다. 똑똑한 아이들은 부모가 내게 줬던 충격적인 화를 또렷이 기억한다. 아마 평생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내게 줬던 사랑, 물질적인 풍요는 쉬이 잊는다. 부모가 했던 잘못, 실수들은 또롯이 기억한다. 바뀌면 참 좋으련만. 그때의 그 느낌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딸이 나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웃으며 꺼내면 난 또 죄인이 되어 아이에게 미안하다 사과하고 또 사과한다.
내 마지막 만행은 2층 빌라에서 잠시 살 때였다. 거실에 친 방한텐트에서 아이가 자고 있는데 자고 일어났던 내가 아이의 등짝을 몇 대 때린 일이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편이 깜짝 놀라 나를 야단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내가 순간 깨어있지 못하고 저질렀던 만행은 그날이 끝이었다.
나의 슬픈 만행들은 그날이 끝이었다. 어쩌면 내가 내 감정 때문에 아이에게 저질렀던 만행들은 두고두고 아이에게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어쩌면 원인을 알 수 없게 아이 마음속을 괴롭힐 수도 있고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가슴이 아프다. 나는 평생 아이에게 빚을 갚고 살아가야 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