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희엄마 Oct 29. 2022

남편의 이유 있는 퇴사

아이 어렸을 때 좀처럼 아이에게 큰 소리 한번 내지 않던 남편이 심하게 예민했던 한 시기가 있었다. 


우울증에서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엄마 못지않게 아이에게도 반항기적인 모습이 찾아왔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놀란 아이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안아주며 달래줬던 기억이. 그날따라 아이와 남편은 부딪혔다. 소리 지르며 떼쓰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너무나 무섭게 훈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떼쓰는 아이가 멈추도록 안은 채 제지하던 남편. 처음 본 그 모습을 보며 조마조마했다. 화내고 소리 지르는 건 이 엄마의 특기였는데 남편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낯설고 무서웠다. 힘센 남편이 아이를 꼼짝 못하게 안고 훈육하자 아이가 정말 많이 놀라고 무서워했다. 더 이상 그냥 놔둘 순 없었다.


 남편에게서 아이를 뺏어 안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꼭 안아주고 달래주었다.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지 알기에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그 일이 있은 후 남편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 이사님 한분이 직원들에게 그렇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막말을 불사하는 분이라고 했다. 그 분 때문에 직원들이 너무나도 상처를 받아 그만두기 일쑤였다. 아이가 지르는 소리에 남편은 그 분을 떠올리며 치가 떨렸나보다. 본인이 아이에게 했던 행동으로 남편은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그 회사를 계속 다니다간 사랑하는 딸에게 몹쓸 모습을 계속 보일 것 이라 생각했나보다.


뒤에 남편의 퇴사이유를 알고 너무나도 미안하고 고마웠다. 당시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바라보고 가족을 위한 결단을 내려준 남편의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츤데레 아빠의 결정적인 딸 사랑은 그 뒤로도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 남편 대학동기가족모임에서 회자되던 이야기 거리가 있었다. 우울감에 함몰되어 나도 아이도 망가지지 않고 행복하기 위해 애쓰던 몇 년 동안 남편은 주말에 내 시간을 갖도록 육아를 전담해주었다. 한번은 서울에 강연을 들으러 가야 하는 날이었다. 한참 이유식을 먹고 있을 때라 전날 미리 이유식 준비를 해놓고 떠났다. 당시 우리 부부가 딸을 안을 때 계속 사용한 갈색 맨듀카 아기 띠는 나뿐 아니라 우리 남편도 참 많이 애용했었다. 


축하해주러 간 돌잔치에서 아기 띠로 아이를 앞으로 안고 춤을 춰 경품도 받기도 했고 유난히 나온

배가 딸까지 앞으로 안고 있느라 더 많이 나와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라 한 쌍의 곰돌이 부녀 같았다. 내가 강연을 들으러 간 그날은 남편의 대학동기가족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이유식도 챙겨 딸과 함께 모임장소에 간 것이다. 아기 띠에 아기를 안고 한손에는 이유식이 담긴 도시락과 기저귀가방을 한손에는 좌식식판 부스터를 들고 나간 것. 그 모습은 많은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남겼다. 야무지게 딸을 부스터에 앉히고 챙겨간 이유식을 아주 잘 챙겨 먹인 모습 덕분에 많은 엄마들의 부러움을 받고 왔다.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화다.      


 지금까지 긴 시간동안 성장을 위한 애씀과 노력에 태클을 걸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주고 도와준 남편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주말 엄마의 빈자리를 살갑게 채워준 덕분에 우리 딸이 더 잘 자라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24개월이 딱 되고 더 이상 내 허리가 아이를 앞으로도 뒤로도 안아줄 수 없는 지경이 됐을 때 바라보니 아기 띠는 바래고 바래있었다. 안타까운 건 그때 아기 띠를 버리기 전에 그 빛바랜 아기 띠 모습을 사진으로라도 남겨놓을걸 그러지 못했음이 너무나 아쉽다. 


그렇게 바래져 버린 게 나 혼자만의 수고와 노력인줄로만 알았는데 너무나도 많은 부분 남편의 헌신과 도움이 깊은 영향을 주었음을 이제는 안다. 부모가 하나가 되어 딸을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 것이다. 남편이라는 나무아래 나는 나대로 딸은 딸대로 아주 잘 성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전 05화 포도라는 슬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