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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희엄마 Jul 27. 2022

아기띠 무게는 얼마일까요

“디스크 끼가 있습니다.”

 어느 날 허리가 불편해 정형외과를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뼈 주사를 맞았다. 안 아프게 놔달라고 겁을 내며 선생님께 부탁했다. 디스크 끼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길 듣고 병원을 그만 다녔다.      


 우린 아이가 자라면서 어렸을 적 없어서는 안 될 육아 템들을 정리한다. 나도 어느 정도 아이가 자란 후 더 이상 나에겐 쓸모없는 것들을 버리고 정리했다. 그중에 지금 생각하면 버리지 말 걸 하고 후회되는 물건이 하나 있다. 맨듀카 갈색 아기띠이다. 버렸을 당시 갈색은 거의 잿빛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었다. 육아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려주듯.      


 지나고 보니 우리 딸은 근수저였다. 어머니는 키 작은 내게 항상 이야기하셨다. 무거운 물건 들지 말라고. 키 작아도 할 건 다하고, 들 건 다 들 수 있는데도. 무거운 물건이 있으면 본인이 항상 드신다. 지금도 그렇다. 지금은 내가 엄마보다는 힘이 셀 텐데도. 3.31kg로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아본 엄마들은 안다. 자연분만을 결심하고 결국은 제왕절개를 한 기분을. 나 역시 10시간 넘게 틀다 수술을 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했다.           


 배가 너무 아파 늦은 밤 급히 병원으로 갔다. 그 밤 다들 자는 다인실에 입원을 했다. 조기진통이었다. 27주. 조기진통은 혹시 모를 출산에 대비해 출산을 바로 도울 의료진과 인큐베이터가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내가 사는 곳은 대도시가 아니었다. 아이를 건강하게 나으려면 적어도 37주는 되어야 한다 했다. 그때부터 임신부의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자궁수축으로 매일 상황을 체크하고 별 하는 거 없이 누워서 안정을 취했다. 장장 60일이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자궁수축이 계속되었다. 수축을 잡고 출산을 미루는 주사를 맞고 안정을 취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병원생활을 하고 37주가 되어서야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아이는 예정일 하루 앞날 태어났다. 어쩌면 60일 동안 병원이 아닌 집에서 편히 있었어도 무사히 아이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모두 아이를 품은 어미의 두려움인지 어떻게든 이 아이를 잃지 않고 소중히 지키고 싶었다.     


      

수많은 육아 템들 중에 가장 가격이 고가인 것 중의 하나가 유모차다. 14년 전 나는 유모차를 구입하지 않았다. 참고로 우리 딸은 부족한 젖 탓에 분유로 컸다. 분유를 타서 주면 쉬지 않고 한 번에 다 먹던 아이였다. 2살 터울의 조카가 쓰던 유모차를 물려받아 사용했는데 조카의 동생이 딸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다. 반납 후 유모차를 사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유모차 대신 디스크 끼를 얻었다. 또 다른 필수 육아 템 중에 아기띠. 건강한 딸을 키우려면 튼튼한 아기띠는 필수였다. 맨듀카 갈색 아기띠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템이었다. 딸과 나와 아기띠는 3종 세트였다. 언제나 함께 다녔다.     


 우울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아기띠를 앞으로 맸다. 아이의 얼굴을 보고 눈 맞출 수 있기에. 그러니 허리가 견뎌냈겠냐 말이다. 당시엔 내 허리가 상한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되도록 긴 시간 아기띠로 아이와 밀착되어 사랑을 주고 싶었다. 그거라도 하고 싶었다. 아기띠는 24개월 때 나에게서 떨어졌다. 더 이상은 앞으로도 뒤로도 아이를 안고 업어줄 수 없는 무게가 되었다.    

   

 24개월 동안 풀로 아이를 안고 업고 바라보며 키운 걸 다행이다 여긴다. 그 방법으로라도 아이를 더 사랑해줄 수 있어서. 그 뒤로 아기띠는 추억의 물건이 되었다. 다시 올 수 없는 그 시간을 나의 온기로 채워줄 수 있어서. 육아의 한여름은 에어컨이 풀로 돌아가고 있어도 뜨겁다. 그 당시엔 그것이 애착을 형성에 기여한다는 생각 따윈 하지 못했다. 어차피 없는 유모차에 미련두지 않고 아기띠 육아를 했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내 몸은 점점 둔하고 굳어진다. 운동에 게으르고 시간을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기띠로 아이를 안아주며 키운 그때를 생각하면 당시 너무나도 미숙하고 부족했던 엄마 노릇에 죄책감이 그나마 덜어진다. 따뜻한 너와 나의 눈 맞춤이 고스란히 남는다. 내 몸 상한 줄 모르고 했던 그것이 내방식의 사랑이었음을. 그 사랑이 아기에게도 온전히 닿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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