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강원도
춘천 여행 2일째. 방꾸쟁이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여행 2일 차 목표는 60대 이상의 어른 4명, 10대 이하의 청소년 4명의 꿈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춘천의 공지천과 약사천 주변 산책로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해가 쨍쨍한 시간이라 그런지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하천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다리 밑 그늘에서 간혹 어르신 한두 분이 쉬고 계셨다.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인터뷰를 요청하며 네다섯 시간쯤 돌아다닌 끝에 60대 이상 인터뷰 목표를 겨우 달성했다. 어떻게든 성인 인터뷰는 마쳤지만, 청소년은 어떻게 만나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7월의 무더위 속에서 피부는 익어가고 머리카락 속에 숨은 두피는 비라도 맞은 듯 흥건하게 땀에 젖었다. 지쳐버린 방꾸쟁이들은 일단 더위를 피하고자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긴 곳은 춘천시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장경주 대표의 상점 ‘적파우’였다. 적파우는 손 기록 물품과 지역 특색을 살린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는 상점이다. 장경주 대표는 방꾸남의 친누나로, 춘천 생활 11년 차에 접어든 지역민이다. 적파우 상점 안에는 매주 다양한 모임이 진행되는 모임 공간이 있기 때문에 잠시 쉬면서 문서를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다짜고짜 찾아간 감이 없지 않았지만, 방꾸남의 누나는 동생이 오든지 말든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방꾸남과 방꾸녀도 편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인터뷰했던 내용들을 정리했다.
30분 정도 지났던가, 적파우 장경주 대표의 휴대전화에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웬 초등학생의 악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가 끊기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장경주 대표는 ‘OO초등학교 똥강아지 2인방’이자 자신의 친구들이 놀러 올 거라고 말했다. 동생인 방꾸남이 청소년 인터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알고 미리 초등학생 2명을 섭외해두었다고 한다. 방꾸남은 ‘어릴 때는 보기만 해도 쥐어박고 싶었던 누나인데, 나이가 드니까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쌀국수를 배달시켜 점심으로 먹었다. 절반쯤 먹자, 아이들이 “다율·규린이 등장!”이라고 자기 이름을 외치며 적파우로 들어왔다.
장경주 대표는 다율이와 규린이, 방꾸남과 방꾸녀를 서로에게 소개해주었다. 두 친구는 상점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하교 후 적파우에 들러 그림도 그리고 간식도 먹으며 놀다 가곤 한단다. 규린이는 말이 많지 않지만 목소리가 매력적인 친구였고, 다율이는 굉장히 날렵한 목소리의 거침없고 솔직한 아이였다. 한 번은 다율이가 진지한 표정을 한 채 방꾸남에게 “아니 저 언니가 아저씨 여자친구라고요? 여자친구 없을 것 같이 생겼는데...?”라고 이야기했다. 방꾸남은 그 솔직함이 너무 귀엽고 웃겨서 “다율이도 남자친구 없을 것 같아요.”라는 말로 응수했다. 그러자 다율이는 “맞아요 저 남자친구 없어요.”라고 인정하며 약간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다율이는 웃음이 예쁜 아이였고, 방꾸남은 장난쳤던 게 마음에 걸렸는지 나중에 다율이에게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장경주 대표와 다율이, 규린이는 ‘반모’라는 걸 한다고 했다. 요즘 메타버스나 게임에서 ‘서로 반말을 사용하는 것’을 반말 모드, ‘반모’라고 칭한다고. 장 대표와 반말을 사용하기로 한 아이들이 물었다. “경주, 우리 마라탕은 언제 와?”, 그때까진 몰랐다. 방꾸남의 누나가 아이들에게 인터뷰의 대가로 마라탕을 제공하기로 했는지 말이다. 어쨌거나, 약속은 약속이니 마라탕을 시켜주었고, 그건 방꾸남의 사비로 계산했다. 방꾸남은 비록 경제생활을 하지 않는 백수였지만, 과거 청소년 지도사였던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약간의 경제 교육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일종의 직업병인 듯했다. 누나인 장 대표가 비용을 낸다는 것을 굳이 자신이 계산했다.
방꾸남은 아이들의 마라탕 포장을 뜯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아저씨가 계산한 거예요. 아저씨는 지금 돈을 내고 규린이랑 다율이 시간을 산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30분 동안은 아저씨가 질문하는 것에 열심히 대답해주세요. 알겠죠?”
그러자 방꾸남보다도 똑부러지는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근데요, 저희 탕후루도 후식으로 사주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탕후루도 사주셔야 해요.”
10살의 아이들이라고 보기에는 시장의 논리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방꾸남은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 애들은 다 이렇게 똑똑한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장경주 대표가 “너희 근데 마라탕 많이 시켰잖아. 이것도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탕후루도 먹겠다고?”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똑순이 2명은 “그래도 탕후루 사주기로 했잖아! 우리 탕후루 안 사주면 인터뷰 안 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당돌함에 장 대표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을 귀여워하며 지켜보던 방꾸남은 결국 탕후루도 사주기로 했다. 두 가지 약속을 하면서.
첫째, 인터뷰에 끝까지 성실히 임할 것. 인터뷰가 끝나고 결과가 마음에 들어야지만 탕후루를 주문해줄 것.
둘째, 경주에게 반말은 사용하되 조금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장 대표가 항상 두 사람에게 놀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에 감사를 표할 것. 3개월 뒤에 다시 찾아와 확인하겠음.
간단한 자기소개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다율이는 마라탕을 가장 좋아하고, 2단계까지 먹을 수 있으며, 영어 이름은 샤인머스켓이라고 소개했다. 규린이는 치즈 가루가 뿌려진 치킨을 가장 좋아하며, 다율이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요즘 가장 고민되는 것’을 묻자, 여느 학생들처럼 ‘공부’라고 말하면서도 약간은 특이한 답변을 내놓았다.
● 방꾸남: 요즘 가장 고민되는 게 뭐예요?
● 다율: 공부! 공부가 제일 고민이에요. 저는 규린이랑 친구랑 셋이 살 건데, 일단은 오늘 숙제를 어디 숨겨야 할지 고민이에요.
● 규린: 공부요. 저는 근데 공부를 포기했어요. 포기한 지 오래고, 공부를 안 하고 대학교 안 가고도 어떻게 살 수 있을지가 고민이에요. 근데 또 고민 있어요. 여기 가게 사장님이 저희 오기만 하면 자꾸 쫓아내요. 진짜 못됐어요!
● 사장님: (...)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안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엉뚱하지만 특별한 답변이었다. 정형화된 입시 체계 안에서 살기보다는 어려서부터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려고 마음먹은 멋진 친구들이었다. 다음 질문으로, 방꾸남은 아이들에게 ‘꿈’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 다율: 꿈을 잘 때 꾸는 거예요. 근데 저는 도망만 다니고 별로 안 좋은 꿈만 꿔서 안 꾸는 게 좋아요. 그리고 가위에 자주 눌려요.
● 규린: 하고 싶은 일이랑요, 잘 때 꾸는 꿈이요. 저는 좀비 나오는 꿈을 자주 꿔요. 근데 가위는 눌린 적 한 번도 없어요. 그건 피곤해서 눌리는 거랬어요.
● 사장님: 키 크느라 그런 꿈 꾸는 거야. 무럭무럭 자라렴.
● 방꾸남: 그럼 장래 희망이라고 하죠? 그런 건 뭐가 있어요?
● 규린: 아 저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원래 여기 적파우 사장님 되고 싶었는데, 경주가 그러려면 똑똑해야 된다고 해서 안 하려고요. 저는 공부가 재능이 아니거든요.
● 사장님: 아니 규린아, 공부를 잘해야지만 똑똑한 게 아니라니까? 너도 충분히 똑똑하다니까?
10살 규린이의 자기 객관화 능력에 감탄하며 다율이의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 다율: 저는 근데 특히 말을 잘해요. 그래서 변호사를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 앞에 있는 GS25 편의점 사장도 할 거예요. 음료수 냉장고 뒤에 있는 창고에서 음료수도 채워봤고요, 바코드 찍어서 계산도 해봤어요. 그리고 사장님이 저한테 잘한다고 칭찬도 해줬어요!
다율이도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방꾸쟁이들은 안 그래도 다율이가 자기주장뿐만 아니라 논리가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다율이 스스로 그런 말을 하니 한 번 더 놀랐다. 또, 어른들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하나씩 배우곤 하는데, 어린이인 다율이는 자발적으로 편의점에 찾아가 재밌게 일을 체험해봤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빨려들어간 듯한 방꾸남이 하나의 질문을 더 던졌다.
“버킷리스트도 있어요 혹시?”
● 다율: 저는 일단 부자가 될 거예요. 그리고 저기 편의점 사장이 될 거고, 일본에 가서 푸딩 먹을 거예요. 그리고 매운 불닭볶음면 마음껏 먹고 싶고, 규린이랑 서연이랑 같이 살고 싶어요. 그리고 티익스프레스도 타보고 싶고, 디팡(디스코 팡팡)도 타보고 싶어요.
● 규린: 저도 일단 부자가 될 건데, 돈은 100조 원 정도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적파우 여기 사장님 되고 싶어요. 근데 똑똑한 사람만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공부 싫어서 안 하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강아지 키워보고 싶고, 고양이는 딱히 안 키우고 싶어요. 저도 다율이랑 서연이랑 일본에 가고 싶고, 마라탕은 100만 원어치 한꺼번에 주문해서 먹고 싶어요. 그리고 번지점프도 해보고 싶고요. 아, 참, 저 운전면허증도 딸 거예요. 애들이랑 같이 살면은 운전해서 차 타야 해요.
하고 싶은 게 참 많은 나이, 10살의 아이들은 버킷리스트를 무한정 늘어놓았다. 버킷리스트를 말하면서 규린이는 “똑똑하고 싶지 않아서 적파우 사장을 못한다.”라는 말을 강조했다. 똑똑하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역시 공부가 하기 싫은 듯했다. 그런데 적파우 사장님과 편의점 사장님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잘해주면 두 아이가 모두 가게 사장님이 되고 싶다고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방꾸쟁이들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두 가게의 사장님을 인터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꾸남이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 방꾸남: 버킷리스트 말한 김에, 몇 살까지 살고 싶은지도 알려줄래요?
● 다율: 나는 100살까지만 살고 싶어! 왜냐면요, 음, 모르겠어요. 근데 오토바이는 안 탈 거예요. 쇼츠에서 봤는데 오토바이는 부모님 돌아가시면 그때 타는 거래요.
● 규린: 저는 1,500살까지 살 거예요. 아니면 계속 살 거예요. 왜냐면 부모님은 천국에 갔는데 나만 지옥 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죽는 게 무서워요 저는. 저는 그냥 오래 살고 돈 많은 할머니가 될래요.
● 다율: 나도!! 나는 편의점 사장님 닮은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 방꾸녀: 근데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다 보니 궁금한 게 또 생겼어요. 두 친구는 왜 살아요? 재밌어서? 아니면 맛있는 게 먹고 싶어서?
● 규린: 네??????? 저는 엄마가 낳아줘서 사는데요????!!!
● 다율: 나는!! 규린이 괴롭히는 게 재밌어서 살아. 규린이 반응 보면 너무 웃겨요 맨날!
● 방꾸남: 그럼 다율이는 규린이랑 있는 게 재밌어서 사는 거네요?
● 다율: 맞아요. 저는 사실 규린이랑 명동 갈 때가 제일 재밌어요. 그래서 사는 거 같아요.
● 규린: 저도 그러면 서연이랑 다율이랑 노는 게 재밌어서 사는 걸로 할래요.
이후에도 수십 분 동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터뷰를 마쳤다. 사람의 온기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인 곳에는 꿈이 모인다. 그리고 그 꿈들이 모여 우리 세상을 더욱 다채롭고 활기차게 만든다. 편의점 사장님과 적파우 사장님은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온다면 언제나 문을 열어주는 적파우 사장님과 편의점 사장님. 매일 놀러 와서 맛있는 걸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들과 주머니가 가벼워도 선뜻 사주는 따뜻한 마음의 사장님들. 때로는 정신없이 가게를 돌아다니며 사장님의 일을 방해하지만, 사장님이 자리를 비워야 할 때 가게를 지켜주기도 하는 든든한 아이들. 그런 정겨운 모습이 있는 곳, 춘천시 효자동 어느 거리 위, 적파우에서의 인터뷰였다.
적파우와 편의점, 사장님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춘천의 미래는 얼마나 재밌는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 다음 이야기(2025.06.01.일 업로드 예정)
□ Chapter3.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강원도
"'청소년이 살아야 나라가 살아요', 가구점 김남선 대표"
→ 피부는 끈적, 모기는 윙윙,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딱 한 사람만 더 인터뷰해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운 좋게 만난 가구점 대표님과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