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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후평동에서 만난 할머니 5인방

Chapter3.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강원도

by 장병조

7월 중순, 장마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날아다니던 비구름이 조금씩 사라지는 때였다. 춘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침 겸 점심을 간단히 먹고 춘천에 도착하니 오후 3시쯤 됐다. 도착해서 가방을 놔두고 인터뷰지를 손에 쥔 채 무작정 거리로 나갔다. 비가 오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여행 첫날 목표는 60세 이상 어른을 6명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한가해 보이는 공인중개사 사장님, 혼자 티브이를 보고 있는 슈퍼마켓 사장님, 구두를 닦고 계신 구두장이 어르신, 길을 지나가는 어르신께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일해야 한다거나 낯선 사람과 말을 섞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2시간 정도를 돌아다녔던 때인가, 방꾸쟁이들은 생각을 바꿨다. 사람들은 ‘더운 날’,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의 ‘인터뷰’를 꺼리는 듯했고, 그중 한두 가지 요소를 해결한다면 충분히 인터뷰가 가능할 것 같았다. 방꾸쟁이들은 ‘시원한’, ‘노인회관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낯선 사람’이라는 점은 먼 타지에서 온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휴대전화로 ‘경로당’, ‘노인회관’을 검색했다. 그러자 800m, 1,000m 남짓 거리에 있는 회관 2곳이 검색됐고, 방꾸쟁이들은 그곳으로 향했다.


노인회관으로 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요구르트와 비타민 음료, 막걸리 등을 구매했다. 어르신들 간식거리로 하나씩 나눠드릴 셈이었다. 그렇게 한가득 마실 것을 들고서 첫 번째 노인회관에 방문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쉽게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목적지인 인근 경로당에 방문했다. 그런데 그곳에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 2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정자에서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회구나’라고 생각하며 방꾸쟁이들은 그곳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매력 만점 웃음소리를 가진 할머니 다섯 명이 그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절을 너무 많이 당하고 온 터라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방꾸남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방꾸녀가 큰 소리로 할머니들께 먼저 인사를 했다. 할머니들은 마치 원래 아는 사람인 것처럼 인사를 받아주었고, 비도 오는데 잠깐 쉬어가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방꾸쟁이들은 운 좋게 그녀들의 대화에 함께하게 됐다. 이런저런 집안 살림 이야기와 남편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들께서 먼저 방꾸쟁이들에게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다. 방꾸녀가 경기도에서 왔음을 밝히고, 어떤 목적으로 춘천에 방문했는지를 덧붙였다. 그러자 할머니 한 분이 “거, 인터뷰인지 뭔지 한번 해 봐요 그럼. 좋은 일 하는구만.”이라고 말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후평동 미녀 할머니 5인방과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꿈이 있나요?”라는 물음으로 인터뷰를 열었다. 그런데 재밌게도, 다섯 할머니는 모두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꿈을 꾸는 게 잘 안돼요.”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건강 악화와 에너지의 부족’이었다. 걷는 것도 힘들고 차 타는 것도 힘들다 보니 집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고, 활동량이 줄고 소화도 잘 안되다 보니 먹고 싶은 것도 점점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거창한 꿈을 꾸기보다는 ‘편안하게 하루하루 보내기’라는 소망 정도만 가지고 지낸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다치거나 응급실에 가기라도 하면 가족들에게 주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할머니들의 꿈을 방해하는 요소가 건강의 악화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럼 다시 20대처럼 건강해진다면 어떨까요?’라는 조건을 넌지시 제시했다. 그때부터는 갑자기 할머니들의 눈빛과 표정이 밝아지더니, 하고 싶은 일을 술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들었던 답변을 몇 개 모아 보았다.


“저는 몸이 건강하면 해외여행을 관광으로 쫘-악 하고 싶어요.”


“젊었을 때 자주 해 먹던 보쌈김치랑 보쌈, 그걸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 나눠주고 싶어요.”


“젊어서는 아이스 스케이트를 잘 탔어요. 65년 전에 시집올 때 스케이트를 가지고 왔는데 애들 키우면서 다 버렸죠. 그러고선 수십 년을 안 탔네요. 그런데 한 70에 다시 타보려니까 다리가 후들거려서 못 타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스케이트 다시 타보고 싶어요.”


“하모니카를 불고 싶어요. 20대 때는 숨도 안 찼는지 그렇게 잘 불었는데, 이제는 못 하겠더라고요. 버리기도 했고요.”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뜸해지는 시점이 오자 할머니들께선 자연스레 ‘나이가 들어 보니 아쉬운 점’, ‘후회되는 점’ 등을 꺼내놓았다.


“봉사를 많이 하면서 살아야 마음이 풍족한 걸 나이가 들어서야 알아서 아쉽네요. 일찍 알았으면 더 많이 했을 텐데.”


“돈을 너무 아끼지 말고 적당히 쓰면서 살았어야 해요. 늙어서 돈 없어 보니까 생각보다 불안하지도 않아. 아프면 병원비 들고 뭐하고 그러겠지만, 건강만 하면 돈 들어가는 데가 별로 없거든요. 뭐 재밌는 것도 없고. 그러니까 젊을 때 써야 해요. 하고 싶은 게 많을 때.”


“치아 관리를 잘해야 해요. 못 먹으면 에너지가 없어지고, 에너지가 부족하면 하고 싶은 게 없어져요. 그럼 삶이 재미가 없고, 활동량도 줄고 음식도 더 못 먹어요.”


약 1시간에 걸친 후평동 할머니 5인방과의 대화는 ‘손주들이 철없다.’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대화 속에서 인터뷰로써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다는 게 참 어려웠지만, 물 흐르듯 흐르는 할머니들의 대화가 참 재밌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할머니들께선 친절하게 가까운 위치에 있는 경로당을 소개해주었다. “거긴 저녁에 식사도 하면서 가서 밥 먹으면서 얘기해요.”라고 말하면서.

사진_Chapter3_강원도_4_후평동 미녀 5인방과.jpg 후평동에서 만난 미녀 5인방과 셀카

■ 다음 이야기(2025.05.25.일 업로드 예정)

□ Chapter3.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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