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강원도
김남선 대표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복귀하기 전, 장경주 대표의 상점 적파우에 들렀다. 점심 때쯤 맡겨둔 짐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때마침 저녁 먹을 시간이기도 해서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
배달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았다. 식사 시간대에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잠시 끊기는 듯했다. 방꾸쟁이들은 ‘이 기회에 식사하면서 인터뷰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인터뷰지와 녹음기를 꺼냈다. 그러고서는 장 대표에게 꿈 인터뷰를 요청했다. 후식으로 막걸리를 사주는 조건으로 말이다.
장 대표는 “저는 청소년도 아니고 60세 이상 어른도 아닌데, 제가 해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방꾸쟁이들이 찾고 있는 인터뷰 대상자가 10대와 60대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꾸쟁이들은 흥미로운 꿈을 가졌을 것 같은 장경주 대표를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즉석에서 대상자를 확대했다. “네, 오늘부터 20대도 하고 30대도 하고 그냥 다 하려고요. 나이가 중요하겠어요? 꿈이 중요한 거지!”라고 말하면서.
식사와 함께 인터뷰가 진행됐다. 장 대표에게는 불행이었겠으나 방꾸쟁이들에게는 다행히도, 인터뷰하는 86분 동안 손님이 두세 무리밖에 오지 않았다. 그 덕분에 세 사람 모두 인터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적파우 브랜드 소개로 시작됐다. 적파우 브랜드의 이름은 ‘고요할 적(寂)’, ‘물결 파(波)’, ‘집 우(宇)’라는 한자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직역하면 ‘고요하게 파도치는 집’이다. 장 대표는 적파우의 브랜드 스토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파도처럼 거대한 존재는 천천히, 소리도 없이 움직이잖아요. 삶이라는 존재도 그런 것 같아요. 너무 거대해서 소리조차 나지 않는, 소리가 먹혀버린 존재요. 마치 사방에서 몰아치는 파도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삶이 파도라면, 우리(인간)는 바람에 나부끼는 작은 돛단배이고요. 저는 ‘작은 돛단배로서 인생을 어떻게 항해해야 할까?’, ‘돛단배가 다른 돛단배의 항해를 도울 방법은 뭘까?’라는 고민을 자주 해왔어요. 지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있고요. 그게 바로 적파우라는 브랜드가 된 거예요.”
적파우는 ‘손 기록 용품과 사무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굿즈 상점’이다. 굿즈 디자인의 콘셉트는 ‘파도’, ‘물결’, ‘항해’이다. 굿즈에 새겨진 다양한 그림이나 글씨, 문양 등을 통해 ‘삶은 파도, 우리는 돛단배라면 어떻게 항해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사람들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 기록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적파우가 현재 가지고 있는 단기 미션(Mission)이라고 한다. 적파우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 들으면 충분한 것 같았다. 그래서 방꾸쟁이들은 하던 얘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 방꾸녀: 그런데요. 사장님은 왜 많고 많은 사업 아이템 중에서 손 기록을 고르셨어요? 그게 꿈이랑 관련이 있나요?
■ 장경주 대표: 아...그게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아시다시피 많은 사람이 사업을 하는 가장 큰 목표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첫째, 돈을 많이 버는 것. 월급으로는 부족하다면 사업을 해야 하는 거죠. 둘째,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 내가 내 힘으로 돈을 벌어서 마음대로 내 꿈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이 사업을 하는 거죠. 그리고 저는, 사업이라는 건 꿈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적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결국 꿈으로 가는 단계 중 하나인 거죠. 아니면 꿈을 완성하기 위한 퍼즐 조각 중 하나이거나. 그래서 저도 사업을 시작했어요. 돈도 많이 벌고 내 꿈도 이루려고요.
그런데 왜 하필 많고 많은 아이템 중에 손 기록을 골랐는지가 궁금하다고 하셨죠? 아마 사업하는 사람들이 사업을 고르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일 것 같아요. 첫째, 시장성이 좋아서 돈이 잘 되거나, 둘째, 내가 그 일을 정말 잘하거나, 셋째, 내가 그걸 광적으로 좋아하거나. 물론 한 가지 이유만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는 없을 거예요. 셋 다 충족이 되어야 사업이 돌아갈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중에서도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커요. 제가 어릴 때부터 손 기록을 거의 광적으로 했어요. 제 마음을 그림으로도 그리고 글로도 써왔죠.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요. 그리고 단순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삶이 힘들 때마다 손 기록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죠.
■ 방꾸남: 그렇다고 대학원 석사까지 졸업한 사람이 다 내려놓고 갑자기 사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도대체 사람들에게 뭘 알려주고 싶다는 건가요?
■ 장경주 대표: 음...일단, 손 기록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R=VD’라고 들어보셨죠?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줄인 표현이죠. 손 기록이 그런 역할이에요. 특별한 날에만 쓰는 게 아니라 매일 일기를 쓰다 보면, 알게 모르게 내 무의식이 비슷한 내용을 계속 적거든요? 그게 부정적인 내용이든 긍정적인 내용이든지요. 그런데 그 일기랑 같이 매일 똑같이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을 적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 무의식이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 나요. 뭐냐면, 내가 “사업을 하고 싶다.”라고 매일 일기장에 적어 보면, 며칠 뒤부터 내 귀에 ‘사업’이라는 단어가 꽂히기 시작해요. 그리고 몇 주가 지나면, TV랑 SNS를 봐도 그 단어만 보이고, 몇 달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검색하고 있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저처럼 사업을 하고 있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리고 두 번째는요.
장경주 대표는 물을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이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장경주 대표: 손 기록이 재밌는 이야기책 같다는 거예요. 나중에 보면 진짜 재밌어요. 내가 적어놓은 걸 5년 7년 뒤에 다시 보잖아요? 그럼 이미 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과거의 일을 까먹을 때쯤 한 번씩 다시 보면, 분명 똑같은 일기를 여러 번째 읽고 있는데도 읽을 때마다 다른 작품 같아요. 그게 일기의 매력이죠. 또, 어떤 일기는 과거의 기록이 현재의 저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하거든요? 그럴 때면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를 통해 오늘의 내 선택이 바뀜으로써 미래도 바뀌는 거죠. 참 흥미롭지 않나요?
얼핏 보면 이상한 소리 같기도 했지만, 장경주 대표가 얼마나 독특한 사람인지, 손 기록을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대화였다. 방꾸쟁이들은 다음 질문을 또 던졌다. 이번에도 꿈에 대한 질문이었다.
■ 방꾸남: 아까 대표님께서 사업은 결국 꿈과 연관되어 있다고 했잖아요. 그게 퍼즐 조각이든 뭐든지요. 그럼 손 기록 용품점을 운영함으로써 사장님은 어떤 꿈을 이루고 싶으신 건가요?
■ 장경주 대표: 아, 네. 일단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손 기록 가게 사장님이 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세상의 모든 존재의 자유를 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때 말하는 존재에는 인간만 포함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존재를 뜻해요. 동물, 식물 혹은 미생물이라고 여기는 것들까지요. 저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중학생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요. 첫째, 인류가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과 상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둘째,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에게 더 깨끗하고 풍족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것. 셋째, 인간들이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지해주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죠.
저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했어요. 그렇게 첫 번째로 내린 결론은 ‘환경을 보호하자’였죠. 지구가 없으면 우리도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환경에 관심을 많이 갖고 대학교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연구를 통해 환경오염을 줄이는 소재를 개발하거나 환경에 도움이 되는 식물을 늘리고 싶어 연구자로서의 길을 택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연구자의 길은 생각보다 더 어렵더군요. 인기 있는 전공이 아니다 보니 항상 연구비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특히, 연구라는 게 실패를 많이 해 봐야 성공도 하는데, 돈이 없어서 실패도 못 하겠더라고요. 게다가 연구비가 나오는 연구들은 기업과 함께하다 보니 의사결정이나 연구 방향성이 자유롭지 못했어요. 그런 상황을 수년 동안 겪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과연 이 방법으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박사 과정을 접어두고 사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기업이 자본과 자원을 투입해 자신들이 원하는 연구를 계속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니, 저도 제가 원하는 연구를 하려면 연구자가 아닌 기업가가 되어야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사업을 시작했고, 그 아이템이 손 기록 가게인 적파우가 된 겁니다. 적파우는 제 세 번째 사업이고요. 여러 번 망했죠. 아직도 수없이 더 실패해봐야 하겠지만요.
저는 제가 단순히 손 기록 용품을 판다고 생각하면서 일하지 않아요. 더 많은 존재의 자유를 위해서 필요한 자원을 모으고 있는 겁니다. 적파우를 통해서요. 사람, 돈, 기술, 감각 그런 것들을 얻고 있어요.
■ 방꾸남: 거대한 꿈이네요. 그럼 적파우의 단기 목표는 손 기록 용품을 팔고 손 기록을 전파하는 걸까요?
■ 장경주 대표: 음, 단기 목표라고 하면, 정확히는 ‘손 기록을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찾는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의 베이스에는 당연히 친환경이 있고요. 지금 상점을 둘러보시면 알겠지만, 모든 제품이 최대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려고 노력한 것들이에요.
장 대표는 매출을 확대해 여러 종류의 친환경 소재 제작 설비를 갖추는 것이 중기 목표라고 했다. 이를 통해 자체적으로 재료 준비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해낼 수 있는 기업으로 발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장 대표의 꿈과 적파우의 목표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 나눈 뒤, 방꾸쟁이들은 그녀에게 버킷리스트를 물었다. 그런데 이때, 다른 인터뷰이들에게 물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질문했다. 본인이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말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답변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꿈이 많고 실행력도 좋은 사람이기에, 이미 이뤄낸 버킷리스트가 다수 있을 것이고, 그중 추천할 만한 게 있으리라 생각했다.
■ 장경주 대표: 아, 네. 추천이라는 건 상대방의 취향을 좀 알아야 쉽긴 한데...! 그냥 제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 2가지만 얘기할게요. 첫 번째로, ‘1년 이상 어떤 일에 완전히 몰두해보기’를 추천드려요. 저는 시간을 들여 밀도 있는 경험을 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이 더 풍요로운 삶을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진 설명: 장 대표는 대학 시절 내내 취미로 ‘동굴탐사’를 즐겨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동굴 사진 전시회’를 여는 등 취미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책에 담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어릴 적 꿈이었던 ‘사진작가 되기’도 이루었다고 한다.
■ 장경주 대표: 두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건 여행이에요. 그런데 여행 중에서도 알려진 관광 동선이 많지 않은 곳을 여행해보는 거예요. 국내에서는 강원도의 삼척, 영월, 정선 같은 곳을 추천해드리고요. 왜냐하면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만나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고요, 남들의 입을 통해서 보고 들은 적 없는 곳에 가봄으로써 나만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처럼’, ‘누구만큼’, ‘누구보다’라는 비교를 하지 않고 나만의 여행과 나만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게 결국 자기의 정체성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장경주 대표는 꿈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꾸었던 꿈, 이미 이뤄버린 꿈에 대해서도 수십 가지를 늘어놨다. 장 대표는 이런 말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살기로 했으면 사는 법을 생각해라.”, “후퇴할 곳 없는 절벽의 출구는 낙하뿐이다.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려 보면, 심연의 가장 아래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주 안전한 장치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안전장치에서 내려와 발을 디디면,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다. 그 길은 내가 상상하던 길은 아니겠지만, 분명히 재미있고 아름다울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방꾸쟁이들과 장 대표는 편육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셨다. 춘천 여행 2일 차의 밤은 적파우에서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 다음 이야기(2025.06.15.일 업로드 예정)
□ Chapter3.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강원도
"저희는 축구부고요, 꿈은 다 똑같아요, 국가대표!"
→ "맨 입으로 인터뷰는 어려운 것 같으니... 파워에이드라도 사서 들고가보자!" 축구부 소년들과 꿈에 관해 인터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