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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축구부고요, 꿈은 다 똑같아요, 국가대표!

Chapter3.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강원도

by 장병조

춘천 여행 3일 차에는 청소년을 중심으로 인터뷰하기로 했다. 지난 2일 동안 만난 10대~20대보다 70대~80대 인터뷰이 숫자가 3배 이상 많았기 때문이다. 방꾸쟁이들은 청소년 중에서도 중·고등학생을 인터뷰하고 싶었다.


아침을 먹고 인터뷰지와 볼펜 그리고 야외에서 오래 돌아다니기 위한 도구를 몇 가지 챙겼다. 만발의 준비를 하고 무작정 청소년을 찾아 길가로 나섰다. 숙소 주변의 학교에도 가보고, 아파트 단지와 학원가, 대학가에도 가보았다. 그러나 방학이라 다들 학원에 있는 걸까,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 몇 명만이 씽씽카(아동용 킥보드)를 타고 지나다닐 뿐이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던 중, 개방되어있는 학교에서 축구하고 있는 남학생 무리를 발견했다. 학교 안에는 풋살용 코트가 2개 있었다. 왼쪽 코트에는 키가 170은 훌쩍 넘고 중학생처럼 보이는 남학생들이, 오른쪽에는 초등학생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방꾸쟁이들은 ‘드디어 찾았다!’라고 생각했다. 그러고선 인근 편의점에 가 아이들에게 줄 음료수 몇 병을 구매했다. 친구들과 놀 시간도 부족한 아이들에게 맨입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가는 거절당할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방꾸쟁이들이 음료수를 양손 가득 들고 풋살장에 들어가자 때마침 오른쪽 코트의 아이들이 쉬는 시간을 가질 참이었는지 잔디 위에 하나둘씩 털썩 주저앉았다. 방꾸남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초등학생인가요? 아저씨 나쁜 사람은 아니고요, 혹시 쉬는 시간 동안에만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어요? 버킷리스트를 인터뷰하려고요. 인터뷰하는 사람 음료수 줄게요!”


역시 음료수 작전은 아주 잘 들어맞았다. 오른쪽 코트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가 인터뷰를 하겠다며 모였다. 그중 3명의 청소년과 먼저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초등학생이 맞았다. 세 청소년은 모두 5학년이고, 학교에서 축구부로 활동하는 친한 친구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축구하고 있는 곳은 초등학교이고, 왼쪽 코트에 있는 장신의 남학생들도 초등학생이라고 이야기했다. 단, 6학년 선배들이라고.


어쨌거나 충분한 시간 동안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인터뷰 참여자들이었기 때문에 자기소개부터 시작해 인터뷰를 이어갔다. 이름은 각자의 성을 따서 김씨, 황씨, 신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방꾸녀와 방꾸남 중 누구와 인터뷰하고 싶냐는 말을 듣고 방꾸남을 선택했다.


■ 방꾸남: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해요. 좋아하는 음식하고 취미, 요즘 하는 고민 같은 거요.

■ 김씨: 저는 축구를 좋아하는 김씨예요. 엄마가 해주는 집밥 먹는 거, 그중에서도 돼지고기 구운 거 좋아하고요. 음, 또 뭐 물어보셨더라? 아, 공부에 대한 고민은 딱히 없어요. 그냥 축구를 잘하고 싶어요.

■ 황씨: 축구하는 게 제일 좋아요. 5학년이고, 신라면이랑 마라탕 좋아해요. 공부는 여기서 제가 제일 잘하고요. 어, 요즘 주로 하는 고민은 딱히 없어요.

■ 신씨: 제 이름은 신현준(가명)이에요. 저는 자전거 타는 걸 가장 좋아하고요,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재밌는데 특히 축구하는 게 좋아요. 자전거는 손 놓고도 탈 수 있고, 빠르게 타는 게 좋아요.


자기소개를 마치고 방꾸남은 아이들에게 바로 꿈에 대해서 물었다. 초등학생들과의 인터뷰의 경우 속도가 핵심이다. 질문이 많으면 지루함을 느끼고 집중력이 금방 깨지기 때문이다.


■ 김씨: 축구선수요. 국가대표가 돼서 월드컵에도 나가보고 싶고, 어차피 나갈 거면 우승하면 좋겠어요. 지금은 제가 조금 작은데, 계속 운동해서 실력도 키우고 몸도 키울 거예요. 월급은 100만 원 정도만 받아도 될 것 같아요. 하루에 한 12시간 정도씩 힘들게 축구를 해야 해도 저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다음으로 황씨가 이야기했다. 황씨는 다른 친구들보다 마음에 여유가 있었고, 꽤 성숙하게 느껴지는 한마디를 던졌다.


■ 황씨: 저는 꿈이란 게 딱히 없어요. 요즘 유튜브랑 그런 거 보면 꿈이 뭔가 꼭 있어야 할 것처럼 얘기하는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재밌게 살다 보면 언젠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꼭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신씨가 대답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방꾸남도 어렸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서 약간은 공감이 됐다.


■ 신씨: 저는 어른이 되는 게 꿈이에요. 근데 어른이 된다고 해서 딱히 뭘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술도 별로 안 마셔보고 싶고, 어른들이 하는 게 부럽지는 않아요. 근데 자기가 돈을 벌어서 버는 만큼 쓸 수 있잖아요. 그게 제가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예요. 왜냐면은 용돈을 조금만 받거든요. 저는 돈도 많이 벌고 싶어요.


신씨의 이야기를 들은 주변 아이들은 모두 공감을 표현하면서 용돈 좀 올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학원에 그만 보내고 게임 시간도 좀 늘려달라고 이야기했다. 다들 꽤 서러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꾸남은 아이들에게 버킷리스트가 무엇인지 물었다.


김씨는 버킷리스트로 ‘아스널 구장에서 외데가르드 선수 경기 직관하기’, ‘스페인 가서 축구 리그 직관하기’, ‘친구들이랑 유럽 여행 가기(축구도 볼 겸)’, ‘실력 있는 축구선수 돼서 월드컵 우승하고 아스널 입단하기’, ‘내 돈으로 축구장 만들기’ 다섯 가지를 이야기했다. 김씨는 버킷리스트가 모두 축구와 관련이 있었다. 축구선수가 되어 영향력을 갖는 게 유일한 꿈인 듯했다.


황씨의 버킷리스트는 평소 누구에게나 버킷리스트 물어보길 좋아하는 방꾸남도 자주 들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북극 탐험해보기’, ‘우주여행 도중에 화성이 들러서 축구 해보기’, ‘친구들이랑 유럽 여행하기’. ‘무인도에서 1주일 정도 조용히 혼자 살아보기’, ‘월세 100만 원 이상 받는 건물주 되기’라고 다섯 가지를 말했다. 황씨의 버킷리스트를 들어보니, ‘나 때는 달나라 가보는 게 꿈이었는데, 이젠 화성에 가서 축구를 하겠다고 그러는구나. 기술이 많이 좋아지고 있긴 한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월세 100만 원이라는 게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느껴졌고, 무인도와 북극 등에 가보고 싶어 하는 황씨를 보면서 ‘황씨가 평소에 혼자 사색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닐까’라고 조심히 추측했다. 인터뷰 답변을 하면서도 유독 여유 있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볼 때, 이미 꿈이나 버킷리스트에 대해 자주 생각해본 듯한 느낌도 받았다.


마지막으로 신씨였다. 버킷리스트를 생각해본 적 없는 듯한 신씨는 친구들의 말을 빠르게 카피해 자기만의 것으로 다시 만들어냈다. 눈치 빠른 아이였다. ‘친구들이랑 1주일 이상 여행 다녀오기’, ‘친구들이랑 유럽 여행 다녀오기’, ‘스카이 다이빙하기’, ‘자전거 경주장 세우기’, ‘아파트 한 채, 상가주택 한 채, 빌라 한 동 건물주 되기.’


어른들에게 버킷리스트를 물어보면, 다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인지 적어서인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오래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오히려 초등학생들은 거침없이 대답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왼쪽 코트에서 놀고 있던 형들이 오른쪽 코드로 넘어왔다. 신나게 공을 차고 나서 이제야 인터뷰에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김씨와 황씨가 일어나서 형들한테 “인터뷰하면 음료수 준대. 별로 안 어려워. 얼른 해봐 이거 형들도!”라고 이야기했다. 고맙게도 두 초등학생 덕분에 방꾸쟁이들은 3명의 청소년을 더 인터뷰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인터뷰는 방꾸녀가 맡았다.


■ 방꾸녀: 자기소개 부탁해요.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 요즘 고민되는 것 얘기해주면 돼요.


■ 김영표: 안녕하세요. 6학년 김영표입니다. 독일 구단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요즘 독일어랑 수학을 배우는데,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고민이 하나 있다면, 요즘 구단이랑 유럽에 있는 인종차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있어요.

■ 윤일구: 저는 6학년 윤일구예요. 음식은 다 좋아하고요, 취미는 유튜브 보는 거예요. 그리고 레고나 건담 조립하는 것도 좋아해요. 고민되는 건 없고..굳이 있다면 너무 행복해서 고민이에요. 행복을 주체하지 못할까 봐요.

■ 박지수: 안녕하세요. 박지수예요. 오늘도 축구하러 나왔는데, 저는 취미가 축구고요. 축구 안 하면 축구게임 하면서 지내요. 고민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영표는 키가 174cm인 방꾸남보다 체격이 더 좋아 보였고, 이미 축구선수로 월급을 받으며 활동한다고 했다. 또, 중국과 독일, 한국 3개 국가를 오가며 지내다 보니 인종차별을 일찍이 체감한 듯했다. 인종차별 문제를 극복하고 어떻게 구단 내외에서 리더십을 갖출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는 듯한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일구는 너무 행복해서 문제라는 특이한 고민을 내놓았고, 지수는 여느 청소년과 비슷해 보였다. 얼핏 보면 달라 보이는 세 사람이었지만, 꿈은 하나로 통했다. 축구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같은 학교 축구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하나의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이다 보니 세 사람의 버킷리스트는 다소 비슷했다. 유명한 축구선수의 경기를 직관하고, 원하는 소속팀에 입단하고, 세계여행을 떠나보는 것이었다. 조금 특이한 버킷리스트도 하나가 있었는데, 일구는 “제가 반만 채워진 물병을 던져서 세우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뚜껑이 바닥으로 가도록 거꾸로 세워보고 싶어요. 그건 진짜 꼭 해보고 싶어요.”라며 ‘물병 거꾸로 세우기’를 버킷리스트에 추가했다.


방꾸녀는 6학년 아이들에게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으로 “어른이 된 나는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라고 물었다. 인터뷰 질문지에는 없던 질문이었다. 방꾸녀의 말에 따르면, 6학년 아이들이 꿈과 버킷리스트를 모두 비슷하게 말했는데, 각자 생각하는 어른이 된 모습을 물어보면 그 안에 조금은 다른 꿈과 버킷리스트가 녹아 들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질문을 추가했다고 한다.


■ 방꾸녀: 어른이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 것 같아요?


■ 김영표: 딱히 상상해본 적이 없긴 한데, 스무 살이 되면 유학이나 해외 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축구하고 싶어요. 국가대표 겸 한국 구단 선수로요. 그리고 70살~80살쯤 되면 키가 좀 작아질 것 같네요. 근데 어른 될 때까지 185cm까지는 크고 싶어요.

■ 윤일구: 아 저는 일단 로또 당첨돼서 부모님 도와드리고, 친구들 100만 원씩 나눠줄 거예요. 그리고 소주도 마셔보고 싶고, 헌팅포차 가보고 싶어요. 스무 살 되면요. 그리고 상상이 잘 안 되는데, 아마 어른 되면 주름이 좀 생기지 않을까요?

■ 박지수: 저는 스무 살 되면 소주를 마셔보고 싶고요, 강원FC에서 축구선수 하다가 은퇴한 선수로 그냥 평범하게 살 것 같아요. 아 근데 월급은 10억 정도 받을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는 아직 어른이 되는 것이 너무 멀게 느껴지나보다. 통통 튀면서도 어른으로서 느끼기에는 실현 가능성이 다소 낮은 이야기를 꺼내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30살 삼촌과 이모의 시각일 뿐, 아마도 그들에게는 실현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는 ‘실현 가능성’이라고 정의한 자기만의 틀 안에 꿈과 희망을 한정 짓는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의 꿈은 확실히 자유롭다고 느꼈다. 어떤 틀이나 형식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느낀 점이 있다. 동일한 집단 내에서 비슷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끼리는 알게 모르게 비슷한 꿈과 버킷리스트를 공유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프로젝트 이전에도 방꾸남은 성인들에게 꾸준히 버킷리스트와 꿈을 물어왔다. 우리 사회의 청년들과 중·장년층, 특히 ‘직장인’이라는 집단에 속해 ‘9to6 출퇴근’이라는 비슷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을 인터뷰해보면 마치 답안지라도 있는지 모두 비슷한 꿈과 버킷리스트를 이야기했다. 버킷리스트로는 해외여행, 한 달 살기, 제주도 다녀오기, 내 집 마련, 자동차 구입 등을 공통으로 이야기했고, 꿈을 물으면 ‘잘 모르겠음’, ‘행복하기’, ‘건강하기’, ‘직장 그만두기’ 등을 말했다. 2023년도에 100여 명을 대상으로 버킷리스트를 3가지씩 조사했을 때는, 약 62%의 응답자가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해외여행’을 꼽았고, 22%의 응답자가 ‘체중 감량’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혼자 꿈꾸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있는 꿈은 모두 조금씩 다르겠지만, 바라보는 방향과 꿈의 카테고리는 얼추 비슷한 듯하다. 방꾸쟁이들이 꼽은 21세기 초 어른들의 꿈 키워드는 행복, 평화, 건강이다. 많은 이들이 같은 꿈을 꾸는 만큼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바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평화롭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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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어릴 적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타는 꿈을 꿨던 두 사람이 바퀴가 땅에 닿지 않는 하늘 자전거를 타고 있다.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같은 꿈을 꿨던 누군가 덕분에 춘천의 한 공원에서 꿈을 이뤘다.


■ 다음 이야기(2025.06.22.일 업로드 예정)

□ Chapter3.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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