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충 살자

"행복의 근원을 ...세요."

힘 빼고 살아가기_행복

by 장병조
"나에게 행복의 근원을 알려준 것은 문방구의 뽑기 통과 탱탱볼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이름은 장미아파트(가명)다. 1991년에 임대주택의 용도로 건설된 5층짜리 아파트 단지다. 꽤 나이든 아파트이긴 하지만 나름 300여 세대나 거주하기 때문인지 단지 내에 상가와 학원이 위치한다. 어쨌거나 내가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장미 문방구'에 대해서 말하기 위함이다.


장미아파트 상가 안에는 장미 미용실, 장미 철물점, 장미 문방구가 있었다. 그런데 장미 문방구는 내가 어른이 되고 난 후부터는 문을 가끔씩만 열더니, 어느 날 완전히 문을 닫았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오락기와 뽑기 통, 나무로 된 팻말만을 남겨둔 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연세가 차신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저출생과 서울 인구 밀집으로 인해 내가 사는 동네는 아동-청소년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 그리고 다이소와 이마트 같은 기업들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문구점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날씨가 선선한 2021년 어느 봄날, 평소처럼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문을 닫은 문구점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뽑기 통이, 꺼져 있는 오락기가 그날따라 유독 눈에 밟혔다. 무시하고 지나가는 듯싶었지만, 내 발걸음은 어느샌가 문방구 앞으로 가 멈춰서 있었다. "흐음, 어디 보자.. 내가 동전이 있을까..?"


어쩐 일인지 주머니에 400원이나 들었다니, 내심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사고 남은 돈이었다.

"나 참..쓰레기봉투가 이런 행운을 만들어줄 줄이야. 이걸로 뽑기나 좀 해야겠다. 끈끈이에 탱탱볼이라, 이건 못 참지. 그냥 지나치면 억울해서 꿈에 나오지."


뽑기는 여전히 100원 또는 200원이었다. 대형 완구점에 갖춰진 500원짜리 동전이 2개~4개 들어가는 고급진 뽑기가 아니었다. 빨간 뚜껑을 덮은 플라스틱 뽑기 통에 장난감을 담은 투명색 캡슐 수십 개가 들어있는 추억의 뽑기 기계였다. 보기만 해도 돌리고 싶어지는 손잡이를 괜스레 만져보았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뽑기 통에 200원을 넣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조심스럽게 한 바퀴 돌렸다.


"드르르륵."


데구루루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쇠로 된 배출구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 탁"


동그란 모양에 투명색을 띤 캡슐과 만날 생각을 하니 어찌나 가슴이 설레던지, 이런 게 소확행인가 싶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가 원하던 장난감인 끈끈이가 아니라 웬 반지가 나왔다.


"뼈아픈 꽝의 맛을 지금도 느낄 수 있다니..!"


다행히 두 번째 뽑기에서는 가지고 싶었던 탱탱볼을 뽑았다.


신나는 마음에 탱탱볼을 몇 번 던져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 맞은 탱탱볼이 거리로 튀어나갔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쫓았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의 나처럼. 내리막길을 내려가려던 탱탱볼을 발로 겨우 막아선 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격한 움직임이 정신을 맑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신이 맑아지자 문방구 앞에서 느꼈던 몽환적인 기분은 어딘가로 사라졌고, 강한 현실 자각 타임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자타임에 빠진 나는 차마 오락기를 켜보지는 못했다. 뽑기에서 나온 캡슐을 어릴 때처럼 발로 밟아서 열고 깨부수는 행위도 하지 않았고, 뽑은 것들을 그냥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온 듯한 물건들을 한참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추억을 회상했다.


'어릴 때는 다른 친구들이 뽑기 뽑는 걸 보기만 해도 행복했는데. 남이 게임하는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았는데. 그게 뭐라고... 그런데 세상도 나도 변해서인지 문방구에 가도 그때만큼 행복하지는 않네."


돌이켜 보면, 어릴 때는 항상 뽑기와 오락을 많이 할수록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500원만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매일 아쉬워했다. 갑작스레 500원이 생기면 모든 돈을 탕진해버린 후, "500원이 아니라 1000원이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며 그 나름대로 아쉬워했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막상 뽑기 통과 오락기를 통째로 살 수 있는 어른이 되어 보니, 마음만 먹으면 저금통에 있는 동전을 모두 가지고 나가서 뽑기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니, 그것들을 모두 가진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 가질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권태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반되는 두 상황 사이에서 두 가지 결론을 도출해냈다.

행복의 근원은 뽑기와 오락이 아닌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시간과 공간, 분위기였다는 것

행복은 돈과 물건을 소유하는 데서 온 것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데서 왔다는 것


그때 그 시절의 장면 하나하나를 깊숙이 들여다 보면, 오락과 뽑기를 하는 것 자체가 행복했던 건 아니었다. 나와 함께 했던 친구들, 태권도 학원을 마치고 맞이하는 달콤한 밤공기, 300원만 들고 가면 군만두를 떡볶이 국물에 적셔 종이컵에 담아주시던 분식집 사장님이 함께였기 때문에 행복했었다.


행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돈과 물건이 아닌 사람과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정도 결론에는 누구나 도달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 글에서 내가 "행복의 근원을 찾으세요."라고 강조하는 것처럼 느꼈겠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행복의 근원을 잊지 마세요."였다.


나는 한참 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나의 시간, 공간, 추억, 감정을 공유할 친구들이 없다면, 가족들이 없다면 내가 소유한 모든 것에 대한 의미가 사라진다는 것을. 전국에 있는 문방구가 전부 내 것이 된다고 한들 기쁘지도, 설레지도,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자랑도 할 수 없고,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단지 잊어버렸을 뿐이었다. 그저 현실에, 현재에,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사느라.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자연. 돈이 없으면 도태되는 자본주의. 그 속에서 삶을 살아가느라 그랬다.


그런데 행복의 근원은 많은 이들에게 '인생의 목적'과도 같다. 그러니까, 이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을 잊는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삶의 방향성을 잃은 누군가는 "행복하다.", "행복했다."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원천을 바로 옆에 두고도 "행복하고 싶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자신이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는 잊은 채로, 왜 일을 해야 하는지는 잊을 채로, 돈과 사회가 시키는 대로 그저 충실히 살아간다. 그렇게 점점 나를 잊고 나를 잃고 삶을 잃어버린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긴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이 야속하다고 여기며 얹짢은 마음으로 여생을 살아간다.


"행복하고 싶어서 더 많은 것을 찾아내고 소유하는 삶이 아니라, 행복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공유하는 삶을 살아가길. 행복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행복을 위해서 잠시 일을 내려두는 삶 또한 살아가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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