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겠어요?
"잠자리채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아니, 그건 잠자리채잖아.물고기는 낚시 도구로 잡아야지!"
이봐 친구. 그거 알고 있나?
'도구'라 불리는 모든 것의 본질은 물고기를 잡는 것도, 잠자리를 잡는 것도 아니야.
도구의 본질은 '그것을 손에 쥔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일세.
근데 말이야. 내가 낚시를 하다 보니 적적한 게 잔소리를 하고 싶은데, 혹시 들어주겠나?
사실 이 낚시는 내가 자네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위한 도구일세.
물고기를 잡거나 잡아먹는 게 아니라 말할 핑계가 되어주는 게 이 낚시의 본질이라네.
맥락도 없고 그냥 헛소리 같겠지만, 삶이라는 게 원래 그래
맥락은 깊은 곳에 숨어 있어서 보이지가 않거든.
막무가내여도 그냥 받아들이는 게 자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유리할 것일세.
받아들이려고 하는 게 내 말이든 자네가 사는 세상이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자네가 뭘 보든 뭘 먹든 뭘 하든 무엇으로 존재하든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은 흐리멍덩한 것의 집합이라네. 구름처럼 말이지.
네가 스스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단 모호한 느낌 외에는 아마도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아.
그러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면 그게 정답이라네.
우리는 그렇게 해나가는 과정을 '정의'라고 부른다네.
한 가지 예를 들어줄까?
나는 세상과 함께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삶' 그리고 '인생'이라는 단어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가지고 있다네.
인생, 삶이라는 것은 결국 '삶에서 죽음,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과정'이야.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덜 지루한 죽음', '덜 고통스러운 죽음'
'행복한 죽음', '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도구일세.
어쩌면 삶 또한 죽음을 위한 도구이고, 죽음 또한 삶을 위한 도구이겠지.
그런데 말야,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어서 언제 둘이 뒤바뀔지 모르네.
즉, 자네와 내가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야. 알간?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모든 사람은 매 순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앗...!
게를 잡았네?
자기가 기어서 올라왔어 ㅋ_ㅋ 게웃김.
봤냐? 봤어?? 사실 낚시에는 잠자리채도 낚싯대도 필요가 없구만!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어.
쓰읍.. 근데 생각을 좀 해보자. 어쨌든 낚시를 왔으니까 헛소린 그만하고 물고기를 좀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낚시라고 해서 꼭 물고기를 잡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물고기를 잡으면 조금 더 행복하려나?
아니지 아니지.
꼭 행복한 결말일 필요가 있을까?
일단 나는 지금 이 게를 먹어야겠어!
역시 매 순간은 선물이군, 게 같은 선물.
이런 게 삶이지~
어이 젊은이. 삶이란 본래 이런 거야.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고, 너의 눈에 발견되는 맥락도 없어.
그저 자네가 생각하는 정답과 자네가 생각하는 맥락이 있겠지.
명심하게나. 세상 모든 건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