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우당탕탕, 또시작? 또, 시작!
지금부터,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방꾸쟁이들이 어째서 인터뷰 여행을 떠나게 됐는지, 귀하디 귀한 4명의 멘티는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할 것이다.
우선, 앞서 언급했듯이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프로젝트는 최초에 ‘3개 지역에 머무르며 100명의 청소년에게 진로 멘토링 제공하기’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방꾸쟁이들은 3개 지역을 선정하고, 100명의 멘티를 모집해야만 했다. 이때. 지역(시·군 단위) 선정 기준은 ‘인구 10만 이하’로 했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 가서 학교 통폐합, 교육 소외 등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선, 두 사람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통계청에 접속했다. 그리고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를 중점으로 인구 통계 자료를 확인했다. 인구 10만 이하 지역을 엑셀에 목록화한 뒤, 이름이나 위치, 지역 특색이 마음에 드는 곳을 몇 군데 정했다. 화순, 해남, 무안, 고흥 등이었다. 무안군은 인구가 약 9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나머지 지역은 약 6만 명 정도로 비슷했다.
다음으로, 각 지역 내 청소년시설과 교육기관, 군청 내 청소년 업무 담당자 등의 연락처를 조사했다. 동시에, 그들에게 보내기 위한 방꾸쟁이들 소개 자료도 만들었다. 이때까지는 당연하게도 프로젝트가 막힘없이 나아갔다. 방꾸쟁이들이 사무실에서 자기들끼리만 수행했던 일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조금 뒤, 두 사람은 장애물을 하나둘씩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정해진 시간 안에 넘어설 수 없어서 피해 가야만 하는 장애물들을 말이다.
아무래도 지역을 관리하는 가장 큰 기관이 ‘시·군청’이기 때문에 해당 군청에 연락해 ‘지역 내에서 멘토링을 제공할 수 있는지’ 묻는 게 가장 빠르게 멘티를 모집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각 지역 군청의 청소년 업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멘토링 가능 여부를 물었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은 지자체 차원에서 제공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이 없고, 이미 연간 계획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무언가를 새롭게 추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일부 군청에서는 지역 내 청소년시설에 전화를 연결해주었다. 덕분에 자연스레 시설과 소통하게 되었다. 이때, 청소년시설이라고 하면 ‘청소년문화의 집’, ‘청소년수련관’,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등을 의미한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그들과 소통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이 2가지 있다. 첫째, 지방의 청소년시설은 경기도나 서울의 청소년시설에 비해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있어 보였다. 전화를 받은 사람 대부분이 방꾸쟁이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해주었다. 예를 들면, 거절은 했지만, 따뜻한 응원과 함께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해주는 등이었다. 방꾸쟁이들이 경기도 내 시설에 연락했을 때는, ‘메일 보내셨어요? 소개 자료랑 사업계획 먼저 보내셔야 해요.’, ‘저희는 시간 없어요.’ 같은 차가운 답변이 많았고, 메일을 보내도 일주일 넘게 읽지 않는 경우, 거절 의사를 답장하지 않는 것으로 밝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너무 바쁜 나머지 새로운 일에는 관심 가질 틈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점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서울·경기도의 청소년시설은 언제나 아이들이 많아 왁자지껄하다. 그렇기에 아이들을 돌볼 청소년 지도사가 언제나 배치되어 있으며, 전문가가 시설에 종사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인구 6만~7만 지방의 경우, 청소년시설에 전문 자격을 가진 청소년 지도사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 일시적인 부재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로 인해 ‘이미 승인된 활동 외에는 추가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게 어렵다’라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본론으로 돌아와, 10여 곳에 연락해본 결과를 얘기하자면, 모두 거절당했다. 그래서 방꾸쟁이들은 청소년시설이 아닌 학교에 접촉하기로 했다. 이때, 학교의 여름방학과 방꾸쟁이들이 멘토링을 제공할 시기가 겹친다는 점, 그로 인해 거절당할 것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각 지역 학교를 조사했다.
처음 연락한 학교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였다. 방꾸녀의 친구가 해당 학교의 교사로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이 술술 풀리는 듯싶었다. 멘토링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 부장 선생님의 승인까지 받았고, 교감 선생님께서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100명까진 아니더라도 해당 학교에서 14명까지는 모집해줄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안 그래도 3개월 100명 멘토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던 방꾸쟁이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이야기였다.
첫술에 배부를 것이라는 착각 덕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멘티를 모집에 힘을 조금 빼고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때, 학교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그럼 그렇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것 같았는데, 올 것이 왔다. 학교 측에서 의견을 바꾸어 멘토링 참여가 어렵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이다. 그 이유는 ‘멘티 모집이 안 돼서’라는 것이었다. 고등학생이다 보니 아이들이 모두 학교 수업 시간 외에는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그로 인해 수업 외 시간에 학교에서 무언가를 수행하는 게 힘든 상황이었다. 또, 해당 학교는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방학 기간에는 학교에 아이들이 거의 없어 멘토링이 실시가 어렵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멘티를 모집하긴 했지만, ‘0명’이 모집되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차선책으로 일정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해주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방꾸쟁이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따뜻한 학교였다. 하지만 방꾸쟁이들과 학교의 일정이 맞지 않아 멘토링은 무산되었다. 이때 방꾸녀는 생각했다. ‘배를 띄우기는 참 쉬웠는데, 앞으로 나아가는 게 쉽지가 않네. 우리가 경로를 잘못 잡은 걸까?’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봤다. 방꾸쟁이들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를 떠올려보면, ‘사서 고생하기 위함’이었다. 편하게 놀자고 여행을 떠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 밀도 있는 경험을 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했음을 마음에 되새겼다. 방꾸쟁이들은 그런 이유로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조차 최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과 같이 거절만을 연속해서 경험하는 상황도 나쁘지 않다고 느껴졌다.
물론 긍정적인 생각만 들었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연속된 거절 속에서 지쳐있었다. 그동안 노력해왔던 것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러다가는 목표했던 기간 내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압박감은 당연했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나아가지 않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노를 저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럼에도 일단은 계속하기로 했다. 아직은 노를 저을 힘이 있으니까. 언젠가는 우리 배가 나아갈 수 있도록 물살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앞에 있는 장애물은 사라지고 우리 배가 빠르게 나아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 다음 이야기(2024.12.29.일 업로드 예정)
□ Chapter1. 우당탕탕, 또시작? 또, 시작!
"발등에 불똥? 꺼지겠지 뭐!"
→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방꾸쟁이들이 새롭게 장착한 마인드는?! '그러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