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금~29.토 컴백홈&에필로그
11월 28일 금요일
일찍 일어나 우리의 최애 식당으로 향했다. 역시 양과 질이 좋다. 오늘 공항으로 출발한다고 아주머니들에게 인사하고, 또 그동안 단골 식당이었던 재나 팟타이 사장님께도 인사를 했다.
그랩을 타고 좀티엔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알고 보니 10시, 11시 등 정시에 출발하는 버스만 온라인 예매가 가능하고, 그 외에는 20분 단위로 현장 구매가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현장 구매는 1인당 25밧에 온라인 수수료가 붙지 않았다. 그냥 좀티엔 버스 터미널에 와 현장 구매하는 것이, 저렴히 기다리지 않고 갈 수 있었겠다. 매표소 직원은 몹시 불친절했다. 태국에 와서 처음 만나 보는 스타일이다.
약 1시간 40분을 이동해서 수완나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규모가 큰 공항이다. 미얀마로 향하는 총과 함께 맥도널드에서 빅맥 등을 먹었다. 공항이라 그런지 한국처럼 비싸다.
총이 수완나품 공항과 돈무앙 공항 사이에 무료 셔틀버스가 있다고 하더니 역시 있었다. 원래는 환승 여객을 위한 것이라는데, 그냥 우리 항공권과 여권을 보여줬더니 탑승할 수 있었다.
40여 분을 달려 돈무앙 공항에 도착했다. 그 사이 직항으로 두 차례 푸껫에 갔지만, 방콕은 25년 만이다. 셔틀버스가 시티투어 버스인 양, 방콕의 울창한 나무와 빌딩, 색다른 도시 풍광을 보여 준다.
돈므앙 공항에서 거의 30분을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밤 12시쯤 다시 공항으로 나갈 생각이다. 숙소 방의 컨디션은 차라리 저번보다 나았다. 다만 걸어오는 길에, 먹물 같은 똥개천을 보았다. 숙소 바로 앞은 영화에 나올 법한 홍콩 슬럼가 같은 건물이다.
근처 레지던스 내 분위기 좋은 일식집에서 1인 199밧 세트를 먹었다. 돈가스, 은어튀김, 튀긴 만두, 우동.
숙소에서 쉬고 샤워한 후, 23시 30분쯤 나섰다. 2시 30분 비행기. 낮에는 동네가 많이 위험해 보이더니, 밤에 오히려 평화로워 보인다. 한국인들이 밤낮없이 일한다는데, 느려 보이던 태국 사람들도 자정이 다 되도록 열심히 살고 있다. 반달이 한국에선 D자 방향이었는데, 태국에선 U자 방향이라고 용관이 신기해한다. 정말일까?
간략하게 재정적으로 결산을 해 본다. 숙박비는 약 116.7만 원 정도 들었다. 세븐 시즈 리조트 27박에 114만 원에, 돌아오는 날 새벽 비행기를 기다리며 돈므앙 공항 앞에서 2.7만 원에 1박 요금을 냈다.
항공료는 수하물을 별도로 부치지 않는, 저가항공사 에어아시아 약 25만 원. 나머지 식비, 그랩비용, 공항버스, 커피 등 잡비 등이 약 152만 원 정도 들었다.
4주간 여행 전체 경비는 3인 기준 약 344만 원, 1인 기준으로는 약 115만 원이 총비용이다. 숙박과 항공료를 제외한 모든 비용은 한 사람이 하루 1.8만 원 정도, 28일간 51만 원 정도 쓴 셈이다.
누군가 파타야 좀티엔에서 4주 정도 우리처럼 산다면, 가장 덩어리가 큰 항공료와 숙박비를 제외하고 한 50만 원이면 살 수 있겠다.
11월 29일 토요일
에어 아시아 키오스크에서 항공권을 프린팅 하는데, 용관은 되고 난 안된다. 데스크에 한참 줄을 서서 탑승권을 받으며 왜 난 안 됐냐니, 모른단다. 편안한 소파가 있는 카페가 있어 추천하는 녹차 케이크를 90밧에 시켜놓고 앉았다. 케이크가 질기다. 이런 맛없는 케이크는 참으로 오랜만.
비행기에서는 빈자리가 좀 보였다. 아예 담요를 준비해 와서 눕는 사람도 보였다. 좌석이 뒤로 젖혀지지 않는 자리였지만, 옆 자리가 비어서 그래도 짬짬이 누워 왔다.
비행기 도착 후 입국장, 셔틀 기차, 공항철도를 타러 가는 길. 모든 사람이 거의 달리는 수준으로 걷는다. 사실 그리 바쁜 일도 없는데, 우리도 그 제일 앞에 정신없이 가고 있다. 돌아오자, 다시 한국인 유전자가 깨어나는 듯. 용관은 김포공항역에서 제주행으로 갈아타고, 난 서울역에서 M5107을 타고 집으로 왔다.
며칠 남은 11월처럼, 아직 가을이 다 떠나진 않았다. 집 정원과 담벼락 밖에 낙엽이 쌓여있다. 우편함은 꽉 차, 우편물이 튀어나와 있다. 그동안 못 먹던 반찬으로만 이뤄진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저가 비행기라 수화물 제한으로 조졸하게 과자 몇 개 사 왔다. 빨래를 돌려 널었다.
저녁에는 미뤄둔 막내 생일 축하를 하고, 부모님 댁에 귤과 과자, 어포를 가져다 드리고, 돌아오며 소각용 쓰레기봉투를 사 왔다.
다시, 일상의 시작이다.
에필로그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목요일 밤에, 총과 용관과 함께 이번 여행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거의 모든 것이 좋았다는 둘의 말과 달리, 난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용관이 물었다. "처음에 기대했던 바가 무엇이었냐"라고.
난 내가 수영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스노클링은 좋아하지만 끈적거리는 바닷물과 뜨거운 햇빛이 싫고, 수영장의 수영은 볼 게 없어 재미없다. 그저 운동을 위한 운동 같은 느낌? 밥을 안 해도 돼서 좋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밥을 해야 했고, 어디서 무엇을 사 먹어야 할지 고민은 그대로였다. 사 먹는 음식은 쉽게 질렸다. 짧은 숏폼에 중독되었는지, 책 읽기는 쉽지 않았다. '동트는 새벽' 시절에는 동아리방에서 몇 시간씩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는데, 우쿨렐레는 그저 그랬다. 예전에 즐기거나 재밌던 것들은 재밌지 않았고, 해 보지 않았던 것들은 도전할 의욕이나 엄두가 나지 않는다.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느낌이다.
3월 25일 총과 용관을 단톡방으로 부른 후에, 이번 여행을 계획했다. 그때는 아내가 2026년 1월부터는 같이 해외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은퇴 후 홀로 있는 4개월 중 한 달을 택했었다.
그때 이 여행은, 친구들과 일회적 이벤트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 아내의 은퇴 계획이 불확실해졌다. 함께 은퇴를 하고 해외여행을 함께 다닐 수도 있고, 아내의 은퇴와 관계없이 나 홀로 2주에서 최대 세 달 정도의 해외여행을 다니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한 달은 여러 가지로 은퇴 후 삶에 대한 일종의 테스트 기간이 된 듯하다.
한 달간의 테스트를 마친 나는 어떤 것을 알게 되었나? 사실은 잘 모르겠다. 뚜렷하게 알게 되거나 정립된 것은 없다.
예전의 여행은, 휴가와 돈과 아이들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유명한 곳을 찍고 다니는 식의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젠 짧고 바쁜 여행은 마음이 피곤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충분한 시간을 가진 이번 여행은 어땠던가? 낯선 풍경과 문화, 언어, 사람이 주는 새로움이 있다. 반면 매일의 시간은 그저 일상이다. 세끼 밥을 먹고, 산책 혹은 운동하고, 책, SNS, 유튜브 등을 보거나 글을 쓰고, 잠자는.
결국 '새로움 속에서,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 처음엔 새롭지만(+) 낯설고 불편(-)하다. 시간이 지나면, 낯선 불편함(-)은 작아지고(-), 새로움(+)도 사라진다.(-) 그러면,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크기 차이는 있겠지만 서로 상쇄하여 0이 되고, '지루한 일상'만 남는 것 아닌가.
은퇴 후 삶은 '지루한 일상'을 그저 살아내는 것인가? 아니면 지루하지 않도록 일상에 뭔가를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인가?
총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일대일 멘티멘토 활동을 제안했다. 나는 즉시 거절했다. 초중고등학교 남학생이 왜 50대 중반에 꼰대 아저씨와 2주에 한 번씩 만나서 대화하기를 즐기겠는가? 일단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회 중고등부를 가르칠 때 혈기왕성한 남자아이들을 컨트롤하기 쉽지 않았던 경험도 있다. 총은 다시 제안했다. 도전해 보면 좋겠다 한다.
인생 절반 이상을 살면서, 난 자신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20대 이후 선교 단체에서 10년간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던 생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의미를 찾는 삶의 태도, 그동안 쌓인 경험, 분석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경향, 완벽주의, 잡상식. 이런 것들이, 어떠한 빠르게 단정 짓고 포기하는 태도를 결정한다. 거기에, 지난 7, 8년 동안 인간관계와 직장생활에서 지쳐, 도전하고 하고 싶은 의욕이 모두 소멸한 이유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 '(낭만적으로 보이는) 한 달 살기'로는 은퇴의 삶을 채우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건강보험료 납부중지 요건인 3개월 이상 해외 살이도, 보험료가 너무 높지 않으면 못 할 일 같다.
그동안의 지식, 경험과 판단을 잠시 내려놓자. 조금 이해 안 되고 번거롭고 귀찮아도, 내 앞에 주어지는 새롭고 작은 도전을 기꺼이, 천천히 응해야겠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여행은 일상에 '변화'를 주는 것일 뿐. 나는 일상을 살아야 하고, 이제 다시 일상을 구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