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일주일간 부부 서귀포 여행 02 끝

12.13.토~16.화 제주의 재발견

by 딸삼빠

12월 13일 토요일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계란 4개와 식빵 8개로 조식을 준비했다. 내일은 계란밥에 카레를 먹고, 간식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갈까 싶다.


내일은 숙소를 떠나 짐을 지고 걸어야 하니, 상대적으로 평지가 많아 보이는 7코스를, 오늘은 7-1코스를 고근산까지만 걷기로 했다. 먼저 천지연 폭포를 구경하려고 했는데, 통과해서 올레길로 합류할 수 없고, 매표소로 다시 나와야 했다. 그래서 입구에서 사진만 몇 장 찍었다.

커피 한 잔을 사서, 우회해서 많은 나무 계단을 올라 7코스길로 갔다. 일반 도로길이 좀 있었지만, 경치가 참 좋았다. 날이 흐리니 사람이 더 없는 것 같다.

담장에 핀 별 같은 다육이도, 곳곳의 노란 감귤밭도, 멀리 보이는 바다와 섬도 아름다웠다.

솔왓동산식당이라는 곳에서 만원씩 하는 백반을 주문했다. 아내가 생선구이를 먹고 싶어 했는데, 마침 4마리나 나왔다. 반찬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제주 막걸리를 한 병 주문해서 마시고, 남은 병을 가방에 챙겼다. 제주 사람들이 많이 오는 식당이라더니, 곳곳에서 제주 사투리가 들린다.

이제 고근산으로 향한다. 다시 지루한 일반도로 옆을 한참 걸었다. 시바견으로 보이는 줄 풀린 동네 개 두 마리가 신이 나서 질주한다. 비가 슬슬 내리기 시작한다.

정상에서 올레길을 벗어나 고근산 등산로 주차장 방향으로 내려와서 버스를 탔다.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는다. 아직 남아있는 인스턴트식품들을 해치우기로 했다.

주방에서 North Carolina에서 왔다는 '아눌'이라는 아랍계 미국인 청년이 말을 건다. 전체 올레 코스의 반을 쉬엄쉬엄 돌고 있다고 한다. 원래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왔다는데, 제주도 날씨가 동남아시아 비슷한 줄 알았던 듯.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업이라는데, 한국이 마음에 들었는지 90일 무비자 이후에도 지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캐나다 살면서 미국에도 여행했었다 하니, 어떤 음식이 맛있었냔다. "미국에 음식이란 게 있어?" 사실 미국이나 유럽 여행 중에 대부분 주먹밥이나 샌드위치 등 직접 해 먹으면서 다녔던 이유도 있다. 사 먹은 건, 월마트 치킨, 인 앤 아웃 버거, 쉑쉑 버거, 디즈니월드에서 먹었던 칠면조 다리 정도? 미국에 있는 쉑쉑 버거파와 인 앤 아웃 버거파로 크게 갈리는데, 자기는 쉑쉑 버거파라고 한다. 뭐, 나도 쉑쉑이 더 맛있긴 했다만. '알려주고 싶은 한국말'에 대해 핸드폰 촬영으로 짧게 인터뷰를 해서 영화를 만들려 한다기에, '윤슬'에 대해서 알려줬다. 줄 게 마땅히 없어, 아내가 컵라면 한 개를 주었다.


12월 14일 일요일

간단하게 조식을 해 먹고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맡겨 두고 천지연 폭포로 향했다. 짐은 용관 차편에 부탁해 두고, 올레 7코스를 걸을 수 있는 만큼 걷는 게 목표였다.

어제처럼 입고 나섰는데, 한라산에 눈이 왔다더니 온도가 5도는 낮아졌다. 내려간 길을 되돌아가기 귀찮아 그냥 걸었는데, 덕분에 내내 떨어야 했다. 공영관광지 16곳의 입장료가 무료라기에, 제주 디지털 관광증이라는 '나우다'를 설치했다. 천지연 폭포는 2천 원이지만, 뭐 개꿀.

별게 있겠나 싶었는데 별게 있었다. 천지연 폭포와 그 뒤에 절벽과 자연은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한참을 앉아서 폭포멍을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제 올라갔던 계단 길을 올라 7코스에 합류했다. 날씨는 오락가락했지만, 올레길은 참 좋았다. 아내가 힘들다 하여 삼매봉은 건너뛰고 바다옆 올레길을 걸었다. 선녀탕, 외돌개를 지나, 서귀포여고로 올라온 길에 식당을 들렀다.

'오늘 칼국수'라는 곳에서 한치지짐과 김치만두, 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다. 김치만두는 포장해 들고, 서귀포 이마트로 걸어가다가 춥고 힘들어 버스를 탔다.

오늘칼국수

코데인이라는 카페에서 용관 내외를 기다렸다. 추운데 기름진 점심을 먹어서 그런가, 체했나 보다. 치즈케이크는 먹지도 못하고 누군가의 뱃속으로.

코데인 커피 로스터스, 카페라떼와 치즈케익

차에서 쉬다가 사계리로 이동했다. 친구 부부가 찐 코다리와 수육, 샐러드 등을 성대하게 차려줬다. 체할까 봐 천천히 꼭꼭 씹어 먹고, 오랜만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2월 15일 월요일


새벽부터 닭울음이 요란하다. 이 닭들은 책에도 실렸고, 영화에도 등장한 닭들이다. 가끔 생각만 했었지만, 우리 집에 닭은 못 키우겠다.

샐러드와 과일 중심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 집 내외는 계속 먹을 것을 내주어, 위장이 쉴 시간이 없다.

사계리의 책방 겸 카페, 어떤 바람.

산방이와 함께 사계해변으로 산책을 나간다. 언제 보아도 좋은 해변이다. 오늘은 날씨도 좋다.

'보말과 풍경'이란 식당에서 정식을 먹었다. 1만 원에 맛있고 푸짐하다.

오후에는 곶자왈을 걸었다. 겨울에 어두운 숲길이라, 칙칙하긴 했다.

친구와 이별을 고하고, 제주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속을 비우기 위해 저녁은 건너뛰었. 아내는 살짝 몸살 기운이 느껴진다며 타이레놀을 먹고 일찍 누웠다. 내일 아침 비행기라 나도 일찍 자리에 들었다.


12월 16일 화요일


아침 7시 25분 비행기라, 공항 근처 제주동해호텔이라는 곳에서 묵었다. 꿈을 꾸었다. 돌아가신 지 15년 정도 된 것 같은 회계학과 이성호 교수님이 나왔다. 나는 예비군연대본부에 발령을 받았는데, 이 교수님이 부서장으로 온 상황이었다. 놀라고 반가웠다. '교수님, 전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라고 차마 말하지는 못했다. 후배들인 학생들에 대한 진정성은 있었지만 자기 캐릭터와 고집이 확실한 분이었던지라, 꿈속에서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꿈일까? 은퇴한 전 직장과 군대로 되돌아가는 악몽인 건가?

카카오택시를 쉽게 잡아타고 5,800원으로 공항에 도착했다. 샌드위치를 하나 사고 제주항공에 올랐다. 구름바다 위를 지난다. 구름멍을 한다.

옆 사람이 자꾸 친다. 비행기는 참 불편한, 인간과 가장 먼 교통수단이 아닌가 싶다.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옆 사람이 싫어지는 여름의 감옥'의 단기 실사체험 아닌가.

조금 넓은 비상구 옆자리 6석이 텅 비어있다. 웃돈 붙여 못 파느니, 비워둔다. 야박하다.


출근 시간을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공항철도에 사람이 많다. 서울역 버스 환승 정류장에서 한남대교 하단 경부고속도로 탈 때까지 엄청 막혔다. 11시쯤 집에 도착했다. 제주는 가을 같았는데, 육지는 황량한 겨울이었다.

대부분 일 때문에 갔었던 제주. 늘 관광지만 다녀서, 빤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 제주의 진면목을 발견한 것 같다. 심지어 비수기라는 12월에도 좋았다. 자주 가서 올레길도 걷고, 오름도 올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