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6일(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몽 블랑에서.
40일 여행 중 21일 차로 후반기 첫 번째 날. 오늘은 아주 널널한 날이다. 원래는 인터라켄(융프라우 기차가 출발하는 곳)에서 3,4박 정도를 하고, 다른 유명지인 마터호른 근처에서 1,2박 정도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정계획이 늦어지면서, 마터호른 근처에는 숙소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인터라켄에서 마터호른 가는 경로를 검색해 보니 프랑스 몽블랑 근처를 지나가길래 그쪽(사실은 몽블랑이 잘 보이는 건너편)에 숙소를 잡았다. 결국 인터라켄에서 50분 떨어진 베른 근처 산속에 4박, 몽블랑이 보이는 프랑스 쪽에서 1박을 하게 됐다. 그냥 운전하면서 지나가다 마터호른이 보이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천천히 짐을 싸고, 새맘교회 설교 동영상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몽블랑으로 이동한다. 결국 마터호른 방향에서 점점 멀어지고, 멀리서라도 볼 수 없었다. 주유소에서 주유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빠지직” 바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헐, 주유소 부지와 도로 사이에 낮은 경계석이 있었는데, 운전석에서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차를 빼는데 계속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 마음도 부서지는 것 같다. 렌터카의 오른쪽 뒷문 아래의 플라스틱 가드가 깨지고 차량 아랫부분 바가 찌그러져 버렸다. 차 근처에 있던 젊은 백인 청년 두, 세 명이 ‘오호, 너 X 됐는데?’라는 표정으로 돌아본다.
빠지직하는 순간, 마음이 쿵 했다. 400유로만 더 내면 차량 손상이 있어도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Full Coverage 조건의 보험을 가입하긴 했다. 하지만, GLOBAL이라는 그 렌터카 회사는 차를 빌릴 때부터 자꾸 말을 바꾸는 게 왠지 신뢰할 수가 없었다. 거의 신차급의 차량이었는데, 이렇게 큰 파손을 그냥 넘어갈까 싶었다. 이후 차량을 반납할 때까지, 계속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다.
제네바를 경유해서 프랑스어로 ‘하얀 산’이라는 뜻의 ‘몽(산) 블랑(하얀)’의 숙소를 찾아 달렸다. 하얀 만년설 덮인 산만 보이면, “저기가 몽블랑인가?”하다가 스위스에서 숙소와 버금가는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서 겨울에 스키장으로 운영되는 동네에 도착했다. 건너편 멀리 몽블랑이 보인다. 그런데, 구글 내비가, 점점 경사 심해서 차가 올라갈 수 있을까 싶은 이상한 오프로드로 안내한다. 그 오프로드를 내려오는 4륜 구동차에 탄 무리들에게 물어서 겨우 숙소를 찾았다.
오는 길에 몽블랑 안내간판이 보이는데, 높이가 4,810m란다. ‘뭣이라? 높이가 4,810m라고?’ 어제 융프라우(요흐)의 요란한 광고문안이 "Top of Europe"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융프라우가 제일 높은 줄 알았지. 그런데, 융프라우는 3,454m 밖에 안되고, 몽블랑은 천 미터 이상 훌쩍 높다니. 사기꾼 융프라우. 그래서 검색해 보니, 실제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은 러시아의 엘브루스 산으로 5,642m라고 한다.
늦은 점심 식사 후, 잠시 짬을 내어 숙소 근처 산을 가볍게 산책했다. 평화롭고 햇살이 따뜻했다. 스위스에서처럼 프랑스 몽블랑 근처에도 텃밭이 보인다. 산악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고, 가벼운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은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사를 거쳐 로마까지 900km 이상을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