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출간-03] 소시민 k로 살기

이웃 :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by 딸삼빠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20대였던 1990년대 내내, 내가 소속했던 선교단체에서는, 성탄절이면 서울 시내 번화가로 나가 모금활동을 했었다. 모금액은 해마다 국내외 어려운 곳에 단체 기부했다. 좋은 뜻으로 모금을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의식을 극복하고 사람들을 대면하는 전도훈련의 성격이 더 강했다.


국외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을 돕는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못마땅한 표정으로 늘 빠지지 않고 따라오는 말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외국까지 돕냐'는 식의 반응이었다. 그리고는 보통은 천 원짜리 한 장 내지 않는다. 이해는 된다. 지난 100여 년간 한국사회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아왔던가. 자신과 가족을 제외한 남을 위해 뭔가를 나누고 기부한다는 것이 철없고 배부른 짓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인색한 비아냥을 듣던 그 1990년대에서 어느덧 30년이나 지났다. 우리는 적어도 경제적으로 이제는 부인하기 힘든 선진국이다. 우리는 원래 흥과 여유가 넘치는, 베풀고 나눌 줄 아는 민족이었다던데, 고통의 20세기에 잃어버렸던 우리의 본성이 이제는 깨어나야 하지 않겠나.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로날드 사이더, IVP)'를 읽고 난 후, 1990년대 중반부터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기부를 해 왔다. 기독교인들은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이 책은 선진국의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국가의 인류보다 훨씬 잘 살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십일조보다 훨씬 많은 기부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얘기한다. 또한,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제법 많은 기부를 하지만, 그 기부는 대부분 교회 내부를 향해 있고, 교회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2016년 가을부터 1년간 캐나다에 연수를 가면서, 북미지역은 듣던 대로 기부가 너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랜 기독교 문화가 긍정적으로 문화와 삶에 자리 잡은 좋은 사례일 것 같다.


'벌레들의 책모임'에서 김혜자 선생님께서 쓰신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읽었다. 아프리카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의 얼굴 속에서 내 딸들의 얼굴을 보았다. 피부색은 달랐지만, 마치 우리 딸들 같았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막는다지만, 세 딸의 엄마, 아빠로서 적어도 세 명의 아이들은 살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는 국제기아대책기구에 세 딸의 이름으로 2004년부터 한 명으로 시작해 세 명의 아이를 후원했다.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후원하는 아이들을 방문할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후원국은 가까운 필리핀으로 정했다.


2006년, 가성비 좋은 채식 뷔페에서 둘째 아이의 돌잔치를 준비했다. 여러 가지 비용을 아껴, 20권의 책을 샀다. 앞서 말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책을 돌잡이 선물로 추첨하여 나눠드렸다. 몇 분이라도 그 책에서 자기 아이들의 얼굴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사회에서 작은 교회의 비전임 목회자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목돈이 없어서 비싼 월세를 내고 살고 있는, 아내가 잘 아는 한 비전임 목회자 가정에 전세금을 빌려주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행은 가난한 전도사 부부를 믿지 않아 돈을 빌려주지 않지만, 우리는 당신들을 믿으니 대신 빌려 주겠다.”고 했다. 이자는 부부가 스스로 냈다. 그래도 월세보다는 훨씬 저렴해서 도움이 된다 했다. 나는 이름만 빌려주고 착한 일을 하니 꽤 수지맞는 일이었다. 그 부부는 아끼고 저축해서, 스스로 전세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은 정작 나는 까맣게 잊어버린 일들이 누군가에게 기억되어 책에 실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엄마는 소풍 중’과 ‘어머니와의 20년 소풍’의 저자인 친구 황교진의 책에, 정작 나는 완전히 잊고 있던 얘기가 나온다. 방울토마토, 구두상품권 등.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 않는데 월드 비전을 통해 긴급구호로 상당한 고액을 기부한 적도 있었고, 원룸 '더불어 숲'을 운영하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지원이 필요한 개인들에게 후원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갚아야 할 빚이 많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정기 후원들을 줄였다. 그리고, SNS상에서 어쩌다 필요가 보이면 약간의 기부를 할 뿐이다.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다. 재정적 여력이 있으니 은퇴를 할 수 있는 건데, 은퇴생활을 유지하려 하니 마음의 여유는 오히려 쪼그라든 모순에 빠졌다. 늘 "여력이 생기면"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개인과 단체에 힘을 보태야겠다는 마음의 빚을 가지고 살았다. 하지만, 여유가 생기길 기다릴 것이 아니고 당장 있는 무엇이라도 나눴어야 했다. 어느새, 나와 가족이라는 세계로 쪼그라들어 버렸다. 인색해져 버렸다.


아내와 인색해진 마음을 어떻게 넓힐 것인지 이야기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