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출간-04] 소시민 k로 살기

이웃 : 용돈 아껴 나누기

by 딸삼빠

결혼하면서,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수입을 하나로 합해서 운영했다. 내가 먼저 취업한 상태였고, 아내는 결혼 후 몇 달 지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임용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었던 이유도 있다. 지출할 때에는, 서로의 동의가 있어야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새로 TV를 사고 싶다면 아내가 동의해야 한다. 그래서, 화면이 큰 새 TV를 사고 싶어도 아내가 동의하기 전까지 기존 TV가 고장 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가사노동을 하던 전업주부 남편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직장인인 아내가 자기를 위해 쓰라며 용돈을 주었고, 남편은 그 용돈을 자신을 위해 소소하게 쓰면서 우울증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업주부들은 자유롭게 자기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없다. ‘개인 아무개’는 사라지고, 그냥 ‘살림 사는 전업주부 누구 엄마’만 남기 쉽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매달 약간의 용돈을 책정하기로 했다, 최소한의 돈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도록.


난 술, 담배를 하지 않고, 한동안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돈 드는 취미도 없는 재미없는 샌님이라, 매달 용돈은 거의 그대로 쌓였다. 가끔 그렇게 모은 용돈을 좋은 일에 사용했다. 남을 위한 일이지만, 사실 그냥 나를 위한 일이다. 좋아서 한다. 누구는 ‘탕진잼’이라고 하더라만.


해군기지 조성을 위해서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파괴해 버린 제주 강정마을 공동체를 돕기도 하고, 외국에 선교사로 나간 친한 동생을 위한 후원금을 보내기도 한다. 평신도를 위한 새로운 신학교육기관을 후원하기도 했다.


대전의 한 낙후된 지역에서 도서관과 공부방 등 지역공동체를 준비하는 분을 후원한 일이 있었다. 상황을 봤을 때, 그분에게는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할 거라 예상해서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모았던 용돈과 그분이 필요한 금액이 정확히 일치했다. 마치 조지 뮐러의 후원자가 된 듯한, 좀 신기한 느낌? 조지 뮐러와 같은 위대한 신앙인이 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 위대한 조지 뮐러가 존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나누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이 있었다.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라는 엘리야의 시대에, 쉰들러처럼 수십 명을 감춰서 살린 ‘오바댜’라는 이도 있다. 대단한 위인은 되기 어려워도, 1/N의 한 사람은 될 수 있다.


2014년에는 오마이컴퍼니라는 곳을 통해, 성매매로 팔려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필리핀의 공정무역 건망고를 수입하는 사회적 기업인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에 투자했다. 6개월 후에는 투자금을 돌려받았는데, 맛난 건망고 세트와 유기농 홍차와 커피, 초콜릿, 캐슈너트, 양초 등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좋은 일도 하면서도 은행이자율보다도 훨씬 이익인 꿩 먹고 알 먹는 일이었다. 지금 다시 검색하니, 여전히 사이트가 존재한다. 아, 세월호 기억팔찌 제작도 후원했었네.


십수 년 만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수정하다 보니, 그동안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야기들이 상당하다. 그 이후에는 사실, 부부의 매월 용돈 책정 제도는 조용히 소멸했다. 2002년부터 기록했던 용돈 사용 엑셀 기록도 2012년 말에는 중지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내용을 읽어보니, ‘아, 정말?’하는 기억도 못한 다양한 나눔을 했었다. 물론 2012년 이후에도, 어떤 필요가 보이면, 부정기적으로 얼마간의 후원을 하긴 했다.


아내는 자신을 위해 별도의 돈을 거의 쓰지 못했다. 캄보디아에 선교 나간 지역교회 후배 부부를 위해 약간의 월정기부를 하거나, 친정어머니를 위해 기간을 정해 용돈을 드리는 정도의 돈을 쓰긴 했지만.


이 제도를 다시 살리려면, 아예 별도의 통장을 만들고 아내와 나에게 각각 자동이체를 걸어야 할 것 같다. 나를 위해서 쓰던 남을 위해 쓰던, 가족이나 부부가 아닌 개인으로서 약간의 자유로운 돈은 필요하니까. 은퇴를 앞두고 아내와 다시 얘기해 봐야겠다.


지금은 당연시 여겨지는 우리 삶의 많은 조건들이, 앞서 간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과였듯,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한 오늘의 작은 노력도 필요하고 의미가 있다. 소시민 k, 다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