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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해 Feb 07. 2023

온달과 평강 공주의 현실판

ADHD 남편과 10년째 동거 중

내 딸 아이가 ADHD인 것은 이미 두 돌 즈음 짐작하고 있었다. 오랜 학원 경력으로 몇 십 명의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그 앞이 바다건 낭떠러지건 의심도 전혀없이 기분이 좋으면 앞으로 돌진하려고 한다거나, 특정한 공간과 시간에 무서워서 보채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거나, 상황에 맞지않게 웃는 것 조차 아빠를 쏙 빼닮은 것을 보면.


바야흐로 ADHD 공포증의 시대랄까. 점점 치열해지는 교육계에서, 고립될 수록 사회성이 최고라는 사회에서  ADHD는 생기면 안되는 절대악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젋은 ADHD의 슬픔'이랄까. 학원에서도 ADHD 학생을 보면 부모님께 섣불리 말을 하지 못했다. 예전에 지인이 학원에서 학생들 부모와 상담할 때 무심코 이야기를 꺼냈다가 그 학생이 바로 학원을 나가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TV 매체에서도 ADHD 판정을 받는 아이들은 거의 학교든 집에서든 문제아로 취급되어 나오고 있다. 한 맘카페에서 남자친구가 ADHD인 것같은데 결혼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여성에게 줄줄이 달린 댓글에는 그 남자와 절대로 결혼하지 말아라..는 이야기가 주였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말아라..도 있었다. 현실적으로 ADHD인 딸과 ADHD인 남편과 살고 있는 나는 충분히 그 공포와 걱정을 공감한다.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된다. 


남편을 교회에서 만났고 결혼 전에도 서로의 일 때문에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편의 성향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결혼했다. 교회 집사님들은 어찌나 결혼을 재촉하던지 정신이 혼미했다. 결혼 전에 시조카가 ADHD에 학습장애가 있다는 것도 언뜻언뜻 감으로 알게 되었는데 나중에야 내 허벅지를 꼬집으며 의심하지 못했던 걸 후회했었다. 결혼하고 나서 내 딸아이와 365일 24시간을 붙어있었다. 결혼하고 직후부터 남편과 불화는 끊이지 않았지만 내 딸도 나는 너무 버거웠다. 어린 젖먹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와중에도 남편은 회사에서 있었던 스트레스와 분노를 나에게 모조리 풀어내었다. 


아빠없이 가장처럼 맏딸로 자란 나는, 지하철에서 겨우 손잡이 하나 잡고서 "저는 어린시절부터 고아로 자라..."라며 구걸하는 꼬질꼬질한 아이처럼 보여지기 싫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와 동생밖에 없던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숙제도 하지 않고, 놀이터에서 놀지도 않고 그저 책만 읽었다. 엄마가 던져준 책은 명작, 위인전, 서울대생들이 공부하는 법 따위의 책들이었다. 혼자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지켰을 때 그 결과를 보는 것은 단연 최고의 희열이었다. 그런 계획들은 주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데 이용되었는데 습관이 되어서인지 충동적이고 무계획적인 시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성적도 계획대로 공부하면 성공적이었고 여행을 가도 계획대로 움직이면 안정이 되었다. 이런 나와 매사 충동적인 남편과는 결혼 직후 신혼여행부터 내내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딸이 ADHD임을 판정받은 7세쯤이었다. 남편의 그동안 했던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고 병리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해는 되었지만 여전히 서로 맞지는 않았다. 남편도 ADHD검사를 했다. 인터넷에 다 돌아다니는 그런 검사였는데, 딸 아이 담당 정신과 선생님께도 말씀드리니 맞다고 말씀해주셨다. 딸 아이는 약을 먹고 있고 남편은 약을 거부했다. 여전히 나는 나와 다른 듯한 가족들과 동거 중이다. 


나의 각고의 노력과 남편의 어느 정도의 지켜내려는 선 때문에 더 이상 집에서 거센 폭풍같은 것은 없어졌지만, 내 마음 속은 거대한 해일이 땅을 삼키기 전의 그런 상태이다. 가끔 고전에 나오는 "온달과 평강공주", "박씨전"의 여주인공을 나 자신과 오버랩시키며  현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묻고싶다. 어떻게 남편을 그렇게 훌륭하게 키워?내셨는지. 


내 딸아이를 어떤 규칙에 대해 훈육하다보면 그것을 지키고 있지 않은 남편때문에 가끔 고민이 되었다. 남편에게 아무리 말해도 인생의 후발대에 서 있는데 귀에 들릴리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되는 잔소리, 아니 훈육. 나는 ADHD인 남편을 지금도 해야할 일 하지 말아야할 일을 가르치고 있고, 아니 훈육하고 있고 실없이 웃을 때는 정확히 눈을 보고 소통해야 한다 가르치고, 아니 알려주고 있다. 이런 나만의 지리한 수업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가 없다.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냐고? 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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