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 엄마들을 만난 건 온니가 세 돌을 채 지나기 전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사 올 즈음 아파트 주위에 어린이 집과 유치원이 막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온니 또래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 동네 카페에 품앗이 양육을 할 엄마들을 모집했다. 온니는 언어 발달이 늦어서 언어치료와 놀이치료를 하는 중이었는데, 나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다. 문화센터에 가도 온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선생님들조차 힘들어 하셨다. 온니의 처지를 오픈하고 엄마들을 만나보았다. 정 안되면 학원강사였던 커리어를 오픈하고 내가 오감놀이 수업을 진행하겠노라고 어필하려고 했었다. 마침 교육 열정이 남다른 엄마들 몇을 만나게 되었고 그 때 만난 엄마들과 지금도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엄마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오감놀이 수업을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책을 읽어주거나 했다. 수업이 끝나면 놀이터에 다같이 나가서 뛰어놀았다. 온니에게 딱 필요한 놀이였다. 여름에는 놀이터에서 모르는 아이들과 합세해서 물총놀이도 하고 물폭탄도 던지고 한바탕 신나게 놀곤 했다.
그 중 우리 온니와 비슷한 발달장애를 가진 엄마도 한 명 알게 되었는데, 그 엄마는 별칭 피리 부는 엄마였다. 놀이터에 떴다하면 집에 있던 아이들도 나와서 놀 정도였다. 피리 부는 엄마는 과거 명문대를 나와 큐레이터까지 했던 재원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놀이터에 자주 출현하는 피리 부는 엄마일 뿐이었다. 그 엄마가 유독 놀이터에 자주 나가는 이유는 발달 장애를 가진 아들 때문이었다. 특유의 커다란 웃음과 제스쳐에 우리 품앗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피리 부는 아줌마를 좋아했고 많이 따랐다.
“너는 지금 엄마가 좋아, 아님 피리 부는 아줌마가 좋아?” 하면 “음...”하고 고민을 하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녀의 아들은 자폐성 장애가 있어서 친구들이 없었기에 피리 부는 엄마는 매일 아들을 데리고 나가 놀이터에 놀고 있던 일면식도 없는 아이들과 한바탕 신나게 뛰어놀았다. 물론 아들은 잠시만 놀이터에서 놀다 바로 놀이터 바닥에 널부러진 나뭇잎들에 더 흥미가 있었지만 열심히 엄마는 다른 아이들과 숙제처럼 같이 놀아주었다.
“대단해.. 힘들지 않아? 아이들이랑 노는 거?”
나도 딸 아이의 고만고만한 성장에 맥이 풀리고 같이 놀아주는 것조차 힘들 때 대단하다며 그 엄마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러려니 해요. 그래도 나도 스트레스 풀리고 좋아, 뭐.”피리 부는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도 가끔 놀이터에 온니랑 나갈 때는 간식이랑 비누 방울 장난감을 많이 들고 나갔던 것 같다. 그래야 놀이터의 아이들이 몰려드니 말이다. 그러면 온니에게 젤리를 잔뜩 주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라고 시키곤 했다. 체력적으로 놀이터에 한 시간 머무는 것도 힘들었는데, 피리 부는 엄마는 그 작은 체구에서 어찌나 에너지가 뿜뿜이던지....
시간은 발달 장애 엄마들과 정상적인 발달을 하는 엄마들에게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까지 말하는 수준이 유치원생 수준이다. 온니와 산책을 하다 앞서 가는 다른 집 또래 아들래미가 세계 경제와 우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고 어찌나 부러웠던지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 더디게 시간이 흘러서 행동하는 것, 학습하는 것, 말하는 것 모든 것이 아직 어린 수준이다. 물론 경계성 지능과 다른 발달 장애는 또 차이가 있다. 결의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것은 똑같다. 엄마들은 마음 졸이고 애가 타지만 또 그 불안에 아이가 힘들어질까봐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놀기 싫다는 애를, 뭐든 배우는 게 싫다는 애를 붙잡고 놀이터로, 학습센터로 데리고 나가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