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성지능을 가진 딸아이와 엄마는 왜 밖을 나가지 않을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8년 전에 들어온 임대 아파트이다. 우리 집 거실에서는 아파트 정문이 바로 보이고, 뒤 작은 방에서는 놀이터가 보인다. 아파트 정문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는데,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여름에는 그 편의점 아이스크림 매대에서 살다시피 매달리다 쭈쭈바 하나씩 물고 다시 놀이터로 뛰어가곤 한다. 또, 태권도 학원이나 영어학원 버스가 아파트 정문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삼삼오오 우르르 버스에 올라타곤 한다. 딸래미가 유치원을 다닐 때는 놀이터에 가끔 가곤 했는데 고학년으로 들어서면서 이제 놀이터에는 못 간다. 그리고 아파트 정문에 들어서던 태권도 차량에 한동안 우리 딸도 탄 적이 있었지만, 지금도 그 역시 못 타고 있다.
소위 우리 딸은 몇몇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찍혔다. 크게 말썽부린 것은 없지만, 조금 모자라고 아이들과 어울릴 때 어린 아이처럼 고집을 부린다거나 하는 일이 많아 더 이상 내가 놀이터에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 딸이 놀이터에 가려면 내가 같이 가주어야 하는데, 고학년 여자아이가 엄마를 대동하고 놀이터에 오는 일은 없기 때문에 내가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 되어 버렸다. 태권도 학원에서도 여자아이들이 우리아이를 왕따시키는 일이 생긴 후로 보내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겨울이라 그렇지는 않지만 봄, 여름, 가을. 아이들이 밖에서 왁자지껄 놀이터에서 편의점으로, 또는 정문으로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 아이는 거실과 작은 방 창문으로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볼 때마다 짠하다. 가끔 나는 그럴 때마다 라푼젤의 가짜 엄마, 마녀가 된 듯하다.
우리 딸은 “엄마, 나도 나가서 놀고 싶어.”
“....”
“안되지?”
“안 되. 저번처럼 또 친구들한테 스티커도 다 주고, 돈도 주려고?!”
아이들은 죄가 없지만, 우리 아이가 조금 모자란 걸 눈치로 알기 때문에 간혹 우리 아이가 가진 전부를 달라하는 경우가 있었다. 딸은 자기와 놀아주니 이것저것 다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소문이 나면 안 될 듯해서 못나가게 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눈치 빠른 엄마들은 우리 아이와 노는 것을 불편해 한다.
검은 머리를 한 우리 집 라푼젤은 밖을 처연하게 바라볼 때마다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나쁜 마녀로 만들고 있다. 만화 라푼젤에서 진짜 마녀는 라푼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진짜 라푼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사실, 경계선 지능이며 ADHD인 우리 아이를 위해 처절한 세상 밖으로 일찍부터 내보내는 것은 우리 가족이 지옥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아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많이 있는 센터에서 사회성 치료, 언어 치료, 인지 치료를 하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나는 우리 아이를 놀이터에 던져놓지는 못하겠다. 센터를 가면 우리 딸과 비슷한 라푼젤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마녀들도.
곧 중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학습을 따라가지 못해서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마다 이해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라푼젤도 있다. 우리 아이와 짝 치료를 하는 언니인데 다른 또래들은 진로를 슬슬 고민할 시기인데, 언제까지 성 안에 가둬?둘지 아이 엄마가 고민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사회에 나가서 그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다해야 할 시기가 올 텐데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나도 최선을 다해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걸 해주고는 있는 걸까?
나는 딸과 같은 나이일 때 거의 매일같이 밖에 나가서 뛰어놀았다. 고무줄 놀이, 피구 놀이 하다못해 개미 구멍 찾기도 하면서 해가 지도록 놀다가 엄마가 퇴근할 즈음 집에 들어갔었다. 이제는 내가 딸 아이의 친구도 되어주고, 엄마도 되어주어야 하는 위치인데 돈도 벌어야 하니 이렇게 바쁜 마녀가 또 있으랴.
곧 봄이 다가온다. 벌써 놀이터에서 조금씩 아이들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 소리가 멀리서 들려올 때마다 나는 심장이 두려움에 두근거린다. 또 딸 아이가 “나도 나가서 놀고 싶어!”라고 징징거릴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