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 장애인들의 입이 되는 엄마들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딸 아이의 방학 숙제에 독서록 숙제가 있어서 우연히 마틴 루터 킹 위인전을 읽게 되었다. 독서록을 쓸 때 아직 두서없이 쓰는 경우가 많아서 가급적 아이가 읽는 책은 나도 읽은 후에 같이 독서록을 쓰고 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흑인 인권 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은 스스로도 흑인이었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혹독한 차별의 언어 폭력을 고스란히 받았기에 저 말이 흑인들의 공감을 충분히 받았을 것이다. 딸 아이의 독서록을 같이 쓰면서 인권 운동이 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인권 운동이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문득, 발달 장애인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발달 장애인 특히 신체적인 문제가 아닌 자폐나 지적 장애인들은 입을 크게 벌릴 수가 없다. 그들의 특별함이 사회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 딸 아이만 하더라도 전철을 타면 심히 불안해 한다. 버스는 괜찮은데 전철의 경우 전철이 달리는 동안 기계 마찰음이 너무 거슬리는지 많이 불안해하고 눈과 귀를 막고 우는 경우도 있었다. 발달 장애인들은 청각이라던가 고유하게 예민한 감각이 있어서 소리가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전철에서 딸이랑 같이 실랑이를 하면서 가고 있는데, 주위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눈이 너무 많았다.
‘어우, 얘가 불편한 거 같은데..’
‘애가 싫어하는데 나가야 하지 않나?’
‘시끄럽네..’
물론 측은한 마음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알겠지만, 모든 장애인 부모들은 그냥 모른 척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나라는 유독 그렇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도 부담스럽고 힘들었다.
발달 장애인들이 받는 차별과 또 그들을 불편하게 보는 시선에 대해 그들의 권리에 대해 주장하자면 남들과 쉽지는 않다. 뉴스에서 보는 지체 장애인들과 시각, 청각 장애인들 조차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하는데 자폐, 지적 장애인들은 오죽할까? 이들은 음악을 하고 싶어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일반인들처럼 대학을 갈 수 없으며 개들을 산책하는 일조차, 자유롭게 여행조차 할 수가 없다. 대학의 장애인 특례입학은 모두 신체적 지체 장애인들에게만 해당된다. 최근에 딸 아이가 바이올린을 하고 있어서 발달 장애인 아동 오케스트라를 알아보았다. 경기가 어려워져서 장애인들의 예술 활동에 많은 기업들이 후원을 끊었다고 하셨다. 진로를 알아보려 해도 일반인들과 경쟁해서 대학을 들어가고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이미 출발 지점이 한참 다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확히는 발달 장애인들의 부모에게는 꿈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떳떳하게 사는 일. 누군가의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립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발달 장애인들의 부모는 크게 소리치고 있다. 아이들을 대신해서, 아이들의 인간다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말이다. 로봇 공학자 데니스 홍의 한 에피소드가 있다. 그가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차를 개발할 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무인 자동차를 개발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들은 그냥 가만히 있는 무인 자동차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그들도 일반 사람들처럼 차에 사랑하는 사람을 태우고 얘기하며 직접 운전하길 원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어” 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자. 어서 일어나. ” 라고 얘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경계성 지능, ADHD, 발달 장애인 모두 조금씩 결이 다르지만 그저 숨쉬고, 걷고, 사랑하는, 신이 만든 같은 인간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