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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해 Feb 14. 2023

ADHD 와 살아내기(3)

누구에게나 병은 있다




나는 극강의 J (계획적)이다.     





           

   MBTI가 한동안 유행하기도 전 2015년 즈음인가 부부 관계 개선에 대해 쓴 에세이를 선물받은 적이 있다. 엄마의 지인 분이 나를 위해 직접 사인까지 해서 주셨었는데 지금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없다. 버렸나보다. 진짜 억지로, 억지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에는 작가가 MBTI를 소개하면서 본인과 남편이 너무 다른 정반대의 MBTI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며 서론을 열었다. 결론은 뻔했다. ‘..그러니 서로 이해하자.’ , ‘..그러니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자.’로 항상 그렇듯 평화롭게 글이 매듭지어졌다. 당시에 내가 느낀 바로는 MBTI가 서로를 이해하게 된 시발점이 아니라 30년 이상의 세월을 살아온 자신과 남편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극강의 J이다.           




     

  아마도 내가 이런 성향을 띠게 된 것은 혈액형 B형이라서 일수도 있고, 엄마와 동생이 극강의 J라서 나도 어쩔 수 없이 J가 되었을 수도 있다. 가족 모두가 J (계획형)이라면 나 혼자 P일 수는 없었다. 그러고보니 시댁 식구들 모두 남편과 같은 P형이다. 예를 들어, 언젠가는 다음 달에 제주도 여행을 가야하니 비행기 표와 숙소를 지금 당장, 각자 예매하라고 전화가 온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당장 예약을 했을까?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면 나는 불안해진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이 생긴다. 하지만 나와 반대로 무계획인 남편은 내가 짜놓은 체스판에 당당히 들어와 판이 이기든 지든 편안한 마음으로 이끌려 다닌다.          


      




  우리는 가족 여행을 가면 항상 내가 계획을 짜는데, 지도를 보며 최소한의 동선으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도록 하고 때때로 산지 맛집이라는 곳을 골라 식당을 소개하기도 한다. 식당도 한 곳뿐만이 아니라 가족들의 입맛을 위해 2곳 이상을 소개해준다. (우리 가족은 총 3인인데 말이다.) 숙소는 최대한 깔끔하고 1박에 15만원이 넘지 않는 선에서 예약을 한다. 그러면 남편은 무계획이 상팔자라는 마인드로 나를 따라온다.     


           




남편은 극강의 P (무계획)이다.   


                 




  처음 신혼여행을 떠난 날, 제주도에 도착해보니 남편은 식장에서 나온 그대로 번쩍번쩍 광이 나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신발은 어디 있어?”

“신발 신고 있잖아.”

“구두신고 다닐거야?”

“아! 나 신발 이거밖에 없는데..”

“옷은 제대로 챙겨왔어?”

“아마 있을 걸?”






  그도 그럴 것이 달랑 서류가방 하나 들고 신혼 여행을 온 거였기에 걱정이 돼서 물었었다. 신혼 여행에 들떠있어서 남편의 행색을 돌아보지 않은 나 자신을 탓했다. 물론 지금은 아예 내가 가방을 다 싸주고 있다. 어쨌든 제주도에 왔으니 여행 계획이라는 것을 짜지 않고 남편더러 계획을 짜보라고 했다. 남편은 신나서 성산일출봉을 가자고 했다. 나는 제주도에만 오면 성산일출봉을 갔었기 때문에 또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막 새 운동화를 샀기 때문인지 등산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성산일출봉을 올라가 본 적이 없다고 하길래 나는 이미 두 번이나 올라갔다 왔고 너무 피곤하니 혼자라도 올라가라고 했다. 한 시간 즈음 지나서 남편이 돌아왔다. “너무 힘들어, 못 가. 못 가.” 하며 울상이 되어 돌아왔다. 남편은 등산이란 걸 해 본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정상을 찍은 산은 없다.      


    

 





남편은 극강의 P이다.      



    





  그 다음 코스는 마라도였다. 배를 타기 위해 성산일출봉에서 정반대편으로 차를 돌려 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에 도착해보니 왠일인지 을씨년스러웠는데 바람이 많이 분다고 배가 출항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많은 시간을 도로에서 날려버렸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았는데 배가 출항하지 않다보니 식당도 문을 연 곳이 없었다. 겨우겨우 횟집 한 군데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우리는 하루를 그렇게 날려버리고 피곤함에 쩔어 호텔로 돌아왔다. 미리 선착장에 전화를 하지도 않고 간 것, 성산일출봉과 마라도의 거리를 생각하지 않고 도로에 시간을 낭비한 것을 남편에게 따져 물었었다. 남편은 자신이 무얼 잘못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결국 이 사람의 성향인 것이지 잘잘못을 따져 물어볼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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