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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ink aloud Oct 17. 2023

아이가 열이 난다

부모와 회사원 그 경계에 서 있는 우리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둘째 아이가 열이 난다.

비상이다. ‘열’은 아이들에게 비상이다. 아이들에게 있어 열은 모든 질병의 신호탄이다.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워킹맘인 나는 아이가 열이 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내일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을까?’이다. 

오늘 밤을 잘 이겨내 보자. 아이들은 보통 잠에 드는 밤에 열이 더 오른다. 

오늘 밤, 이 한 몸 불살라 밤을 새더라도 이 아이의 열은 내리고 잠들자.라는 생각뿐이다. 

잠들기 전까지 아이의 열을 체크한다. 고열은 아니지만 해열제를 먹이기에도 애매한 38.2도. 

아이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지만, 혹시 모를 밤중 고열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그리도 푹 쉬어야 내일 컨디션을 더 회복하겠지라는 희망으로 

자는 아이를 깨워 해열제를 먹인다. 1시간 알람을 맞춰놓고 새우잠에 든다. 해열제가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효과가 없다면 2시간 후에 다른 종류의 해열제로 교차복용을 할 수 있다. 다행히도 두 아이 모두 아직까지 교차복용한 경험은 없다. 

1시간 후, 정신없이 일어나 열을 재보니 37.5도. 안심하고 잠에 들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새벽 내내 주기적으로 잠이 깨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을까? 

아님 하루 휴가를 쓰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올까. 무한 고민을 하며 잠에 든 것도, 안 든 것도 아닌듯한 상태로 새벽을 맞이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37.5도 미열은 있지만 아무래도 집 근처 병원이 못 미덥다. 15개월 둘째는 특히나 집 근처 도보권의 병원에서 받아온 약이 잘 들지 않는다. 또다시 고민에 빠진다. 오전 반차를 쓰고 병원을 데리고 갔다 와서 회사로 출근할까. 

친정엄마가 늘 오는 시간에 집에 오셨다. 보통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 나면 엄마와 바통터치 후 회사로 향한다. 휴가를 쓸까 한다고 엄마에게 말하니, 엄마가 병원에 데리고 갔다 오겠다며 얼른 출근하라고 나의 등을 떠민다. 모두에게 죄스러운 순간이다. 차로 15분 거리이긴 하지만 늘 대기도 있고, 거리도 있는 더 큰 병원에 데리고 다녀와달라는 말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엄마가 선뜻 먼저 그 병원에 아빠와 함께 데리고 다녀오겠다고 하신다. 다행이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출근을 하는 길. 이미 내 손을 떠난 육아이지만 마음이 무겁다. 

회사에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아이가 아파도 내가 직접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고 친정 부모님에게 맡겨야 하는가. 이게 맞는 걸까. 이런 날에는 아이랑 병원도 가고, 하루종일 집에서 온전히 쉬면서 맛있는 것도 만들어 주고 싶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회사에 도착했다. 병원에 다녀온 둘째는 다행히 인후염 초기라고 한다. 다행히 다시 회사 일에 집중해 본다. 


회사에 100% 속할 수도 없고, 육아와 가정에 100% 속할 수 없는 워킹맘과 워킹데디. 

두 범주의 사이에서 모호하게 서 있는 우리. 

모든 곳에서 100% 잘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간다. 모두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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