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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ving Tree Aug 04. 2017

천국은 바로 지금.

비록.....

요 며칠 샤워를 하면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진다. 드디어 그때가 왔다. 2012년 이맘때 즈음, 잦은 젖몸살로 끊어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울고 무섭게 빠지는 머리카락들을 주우며 새벽 수유에 빠져나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그저 견딘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 못하는 그 첫 경험을 그야말로 견뎌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좋아하고 리스크 테이킹을 즐기는 나지만 첫 아이를 키워내며 지났던 첫해는 그야말로 두려움과 불안과 피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하는 이유는 지나고 나니 나도 그만큼 자라 있었기에,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랑임을 느끼기에....


둘째라서 수월하기보다는 도움을 많이 받아 여유가 있다. 첫째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도움을 인지하기 힘들 만큼 힘들었다. 지금은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누구에게 받고 있는지 인지하고 감사할 수 있는 여유 정도는 생긴 것 같다. 둘째가 태어난 지 삼주 후에 부모님이 미국에 오셨다. 어릴 적 그저 호랑이 같이 무서웠던 아버지는 이제 둘째 아이를 배위에 올려놓고 재우면서 첫째의 장난까지 받아주는 인자한 할아버지가 되었고 엄마는 오시자마자 부엌을 점령하고 아침저녁으로 식탁을 풍성하게 채우면서도 엄마와 아내와 외할머니와 장모님의 역할을 무한대로 소화하고 계신다. 남편 또한 이사를 가서 더 멀어진 직장에도 군소리 않고 집에 와서 온갖 뒤치다꺼리 다 하며 우리 부모님을 배려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우리 장남 이 대표는 내 우려와 다르게 섬머 캠프에 완벽 적응, 집에 와서는 동생에게도 의젓한 형아가 되어주고 있다. 얼마 전 질투라는 감정에 대해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아기를 안고 있을 때 질투를 느낀다고 고백하는 이대표를 보면서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언젠가 느끼게 될 감정이기도 하지만, 이런 감정을 지나가며 그 나름대로 해답을 찾고 있는 모습을 그저 응원해 주었다. 우리 가족의 새 멤버 둘째는 태어난 지 두 달도 안되어 모두를 홀리는 마법을 부렸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그의 존재 없이는 상상이 되지 않는 내 인생이다. 마법이고 사랑이다. 이대표보다 성질이 다소 더 복잡한 부분이 있어 앙칼진 울음으로 그의 존재의 무거움을 예고하고 있긴 하다.


그 와중에 이사를 하였다. 아침저녁으로 풀냄새를 맡고 벌레 우는 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창문을 열면 우거진 나무와 풀에서 나는 자연의 냄새가 폐까지 정화시켜주는 듯하다. 집은 비좁고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일도 집안 곳곳에 비밀스럽게 자리한 창고나 스토리지의 난쟁이 문을 열고 닫는 일도 제멋대로 풀이 자란 뒷마당에 뛰노는 토끼 가족을 발견하는 일도 새롭고 즐겁다. 이곳에서 이대표가 시작할 낡은 초등학교엔 오랜 경력을 갖고 계신 할머니 선생님이 계시고 놀이터는 요즘 학교들처럼 새끈 하고 푹신한 바닥이 아닌 흙바닥이다. 이곳이 학군이 좋은 동네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모든 것이 내가 살아온 환경에 비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비록 앞머리를 통째로 날리고 가슴은 쪼그라들고 주름은 늘어가고 눈에 실핏줄이 다 터지고 세시 간 이상 잠을 잘 수 없는 나날들일지라도...


가족의 사랑을 격하게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는 천국이다.

새로 이사 온 집이 비좁고 불편하다 할지라도... 아침저녁으로 풀벌레 소리를 듣고 나무와 풀을 보고 자연의 향기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접는 이 순간이 천국이다.

당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치료사로서의 윤지원은 잠정적으로 홀드일지라도, 나를 엄마로 불러주는 두 쌍의 눈망울들을 바라볼 때, 그때가 천국이다.

내 주위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이웃과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주고 서로를 걱정해주고 응원해줄 때.... 이미 천국은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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