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작가의 「혼모노」 '우호적 감정'을 읽고

좋은 기업 문화란 뭘까

by 클루

최근 채식주의자 다음으로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다. 성해나 작가님의 단편 소설 모음집인 「혼모노」이다. 이 책 전반에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은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무엇이 진정한 가치인지에 대해서 독자 스스로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중에서도 '우호적 감정'이라는 단편 소설은 내가 한 때 고민했던 부분을 수면 위로 이끌어냈다. 제목으로는 내용을 도저히 유추할 수 없는데, 이 단편 소설에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추구하지만 실상 모순이 존재하는 어느 스타트업의 스토리가 담겨있다.



연령대, 배경, 가치관이 다름에도 하나의 프로젝트를 가까워지는 세 명의 인물이 있다. 불평불만이 많다는 소문과 다르게 수용적인 면모도 있는 80년대 생의 수잔, 순두부와 제육만 먹는다는 소문과 다르게 피자나 샌드위치도 먼저 제안하는 대기업 부장급의 70년대 생의 진, 그리고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은 90년대 생의 알렉스 이렇게 셋이다. 이들은 협업을 하며 표면적으로는 서로의 속마음까지 얘기하는 사이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느 날 인사팀의 실수로 개인별 상여금이 만천하에 공개되며 이 셋의 사이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수잔은 과장급에 이 작은 스타트업에 기여한 바가 많음에도 대기업에서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부장급 진에 비해 상여금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회사 대표 맥스는 겉으로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꾀하지만 사실상 연공서열로 상여를 주며 자신의 방은 따로 만드는, 흔히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의뢰한 소서리 이장 권 씨가 이를 무산하겠다는 연락을 한다. 이때 세 사람은 권 이장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만남을 청했고, 그 자리에서 진은 갑자기 권 이장과 단둘이 소위 말하는 "담배 타임 (담타)"를 제안했다. 협상 능력이 좋은 것으로 소문난 진의 비밀병기는 사실 명확히 알 수 없었고, 권 이장은 그 담타에서 돌아와 프로젝트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알렸다. 이에 수잔은 은밀히 진행된 논의와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자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자 진이 수잔의 본명을 말하며 상여금 때문에 쌓인 거냐는 말을 내뱉어 갈등의 절정에 치닫는다.



회사 대표 맥스 입장에서는 결과가 중요했고, 서로 해결 방법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대신 폐쇄적이고 다소 예스러운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했음에도 진에게 성과를 돌린다. 수잔은 결국 퇴사를 통보했고,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90년대 생 알렉스는 회식 때 “뜨거운 딤섬을 뱉지도 삼키지도 못한다”는 표현을 통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을 드러낸다.



90년대 생인 나로서는 수잔의 입장에 공감이 간다. 모두 공유하는 자리가 아닌 곳에서 결론을 냈고, 진이 얼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낸 것인지 알 길은 없다. 더불어 담타에서 진행된 논의가 어떤 리스크를 불러일으킬지 함께 논의할 기회조차 없었다. 진의 독단적인 결정 이후 일이 잘못 흘러갈 경우 프로젝트 담당 인원 세 명 모두 책임을 피할 수도 없을 텐데 말이다.



현시점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스토리라서 너무 공감이 되었다. 특히 1900년 대 후반에서 2000년 대 초반 사이에 빠르게 우리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문화도 조직적 + 수직적 방향에서 선진국의 개인적 + 수평적 방향을 수용하며 진화했다. 그러다 보니 보통 사회생활을 하는 삼십여 년 사이에도 서로 너무나도 다른 기치관을 가진 개인들이 한 데 모여 일을 해야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실제 회사에서 대화를 나눠보면 불과 10년 차이에도 서로 공감하는 가치관의 차이가 달라 유대감을 쌓기 어려울 때도 많다.



둘 중 어떤 조직 문화가 더 나은지에 대한 물음에는 답하기 매우 곤란하다. 개인적 + 수평적 문화를 추구한다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조직에서 직책과 질서가 사라지고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게 될 수도 있다. 오히려 각자도생의 무한 경쟁 체제가 되어 업무 강도가 과중해지고, 조직이 한 방향을 추구하지 않아서 비효율을 유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그렇다고 기존의 수직적 + 조직적 문화를 유지한다면 높은 직급이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리냐는 점에 의문이 든다. 무조건적인 수용과 토 달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과연 회사 발전에 그리고 개인에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이 한 편 또 존재한다.



매일 출근하면 그 중간 어딘가에서 외줄을 타고 있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토를 달고 싶은 욕구를 가끔은 참고, 한 번씩은 저녁 술자리 대신 점심 회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읽고서도 무엇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소설에서 알렉스가 수잔의 퇴사 소식을 듣고 커피 마시자고 했을 때 수잔이 “애쓰지 마요. 애쓰면 더 멀어져”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과도한 타협의 시도 또는 어딘가 한쪽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도 애초에 섞일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오히려 평형상태를 방해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확실한 방향성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이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가 어쩌면 회사 생활을 할 때 가장 슬기로운 태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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