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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부터 입원까지

20대 직장인의 자궁내막증 수술 후기

by 클루

내게 겨울은 항상 청산의 계절이었다. 보통 한 해 시작과 함께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다가 겨울쯤엔 지친 몸과 마음이 결국 터지게 된다. 이런 오랜 습관을 해결하고자 매년 조금씩 내려놓기를 시도하지만, 지금까지 쌓인게 많았던지 이번 겨울에는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회사 건강검진에서 'CA125가 높아 난소 질환 의심'이라는 소견이 나왔었다. 몸에 별다른 증상이 '별 일 아니겠지'하고 넘겼는데, 작년 10월쯤부터 배란혈이 나왔다. 가다실을 맞아서 안심하고 있었지만, 국가 검진 대상인 자궁경부암 검사라도 받아볼 겸 일찍 퇴근하고 산부인과에 들렀다. 사실 산부인과는 고3 때 항문 초음파 검사를 해본 이후로 치과 다음으로 가기 싫은 곳이었어서 20대에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초음파를 보자마자 놀라시며 꽤 큰 혹이 있다고 하셨다. 이때는 자궁내막증이라는 병명은 알지 못했고, 사이즈가 6cm 이상인 물혹이 난소에 있어서 대학병원에 가서 개복 수술을 받아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너무 크게 충격을 받아서 산부인과를 나오는 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 다음 주에 대학병원 외래를 잡았다. 정말 운 좋게 빈 자리가 있어서 연차를 내고 아침부터 서울에 갔다. 초음파 결과를 보신 교수님께서 '자궁내막증입니다. 아시죠? 수술날짜 잡으세요. 복강경으로 합니다.'라고 하셨다. 마음의 준비도 안 되었는데, 몇 마디 말씀하신 내용은 또 꽤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개복이 아니어서, 그리고 조금 더 명확한 추정 진단을 받을 수 있어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수술을 해야된다는 생각에 착잡했다.


수술 날짜를 바로 한 달 뒤인 12월로 잡아주셨고, 복강경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개복하게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혹의 크기에 따라 로봇수술이 가능한 경우도 있는데 거의 천 만원 가까이 든다는 후기를 보고 더 알아보지도 않고 로봇수술은 포기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수술 날짜가 한 번 정도 미뤄져서 1월 초가 되었다. 그 사이에 나는 병가 서류를 준비하고, 당분간 자리를 비우기 위해 업무 인수인계도 했다.


병가를 내는 과정도 쉽진 않았다. 회사에서는 병가가 오남용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인지 절차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그렇지만 일잘러 행정 담당자님께서 다행히 잘 정리해주셨고, 약 2주 조금 넘게 수술을 위해 잠시 쉬어가게 되었다. 수술 3일 전에는 마지막 외래와 초음파 검사를 했고, 특이사항은 없어서 수술이 확정되었다.


나는 부지런한 직장인이 아니었는지, 마지막까지 수술을 회피하고 싶었던건지, 입원을 위한 짐은 전날 급하게 싸기 시작했다. 복강경 수술 경험자들이 남겨놓은 블로그를 참고하며 이것저것 챙겼다. 입원 다음날이 수술이었는데, 생리 예정일과 겹쳐서 생리대랑 속옷도 잔뜩 챙겼다. 수술을 받고 퇴원할 때 입을 원피스도 챙겼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며 나중에 후회했다. 수술 예정이신 분이 이 글을 본다면 꼭 원피스를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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