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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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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기영 Feb 02. 2017

인도 스케치 #1

인도의 푸네(PUNE)라고 하는 도시로 출장이 잡혔다. 사실 회사일로 출장을 가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이다. Confernece 참석자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도로 정했다는 후문이 들렸다. 류시화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인도 여행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일을 하러 가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 많은 나라 중에서 하필 인도로 출장이라니... 뭐 회사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푸네로 가려면 뉴델리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매우 작은 비행기였는데 출발 직전에 문제가 생겼다. 시동을 걸면 몇 분 뒤에 꺼지기를 반복했다. 엔진 문제로 잠시 점검을 하겠다는 기내방송이 나온 후 2명의 엔지니어가 탑승하더니 조종석으로 들어갔다. 5분 뒤에 엔지니어들은 비행기를 빠져나갔고 다시 시동이 걸렸다. 뭔가 매우 불안했다. 엔진 문제인데 5분 만에 수리가 끝났다니 믿기가 힘들었다. 가는 동안 기체도 덜덜거렸고 대기도 매우 불안정해서 정말 어금니 꽉 깨물고 기도하며 2시간을 버텼다. 다행히 무사 착륙.


세련된 뉴델리 공항과 다르게 푸네 공항은 우리나라 시골의 시외버스 정류장 같은 풍경이다. 허름한 건물에 그리 쾌적하지 않은 환경. 밖으로 나와 호텔 픽업 차량에 올라탔다. 시내로 향해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선다. 신호등도 없고 앞에 차가 밀려 있지도 않았다. 의아해서 밖을 내다보니  몇 마리가 어슬렁 대며 길을 차지하고 있었다. 몇 마리는 심지어 차도에 앉아 쉬고 있기도 했다. 운전기사는 침착하게 소들이 모두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냥 쳐다보고만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경적을 울리던가 소를 피해서 빨리 지나가던가 할 텐데 참 신기한 나라이다.

대략 이런 느낌 [from getty image]
인도에서는 소가 신성시된다. 위 사진처럼 길에 앉아 있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고 방해하지도 않는다. 소가 비켜줄 때까지 기다리던가 소의 휴식(?)에 방해되지 않게 돌아서 간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힌두교의 신이 타고 다니는 동물이라서 라는 설도 있고, 예로부터 농사에 사용되어졌으므로 소가 없으면 생활하기가 어려워서 귀하게 대접한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인도에서는 소 팔자가 상팔자이다.


허름한 공항과 길 위의 소들 덕분에 인도의 첫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숙소는 JW Marriott였는데 출장 때 묵어본 숙소 중에서 가장 훌륭한 곳 중에 하나였다. 특히 조식으로 먹는 뷔페가 아주 맛있었다. 이곳에서 숙식을 하면서 Conference도 진행했다.

촌스럽게 객실 사진을 찍었다


숙소와 일터가 모두 호텔이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에서 보냈지만 틈틈이 푸네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호텔을 나와서 산책을 하다 보니 Chatushrungi Mata Temple이 나왔다. 여신 Saptashrungi를 숭배하는 광신도였던 한 상인은 이 여신을 모시는 사원을 방문하기 위해 전국을 여행하곤 했는데,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자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루는 여신이 꿈에 나타나 "당신이 내게 올 수 없으면 내가 당신에게 가겠노라"라는 말을 전했고 상인은 여신의 말을 받들어 이 사원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100개 정도 되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꼭대기에 신전이 나온다. 신전으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만 입장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모여서 순서를 기다렸다가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린다. 이 행위를 정리해 주는 안내자가 따로 있다.

정성스럽게 만든 꽃을 제물로 바치는 이도 있고 음식 같은 것을 바치는 이도 있었다. 모두들 경건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의식을 치르고 있다.


사원을 나와 다시 길을 걷다 보니 아주 허름한 빌딩과 새로 지은 깔끔한 빌딩이 마주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새것과 옛것, 부와 빈이 공존하는 도시.


먼 거리의 이동은 오토릭샤를 이용했다. 오토릭샤는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교통수단인데 앞에 바퀴 하나 뒤에 바퀴가 두 개 있다. 앞에는 오토바이 모양의 운전대가 있고 뒤에 손님이 앉을 수 있는데 두 명이 타면 꽉 끼는 사이즈이다. 타기 전에 일단 가는 곳을 얘기하고 가격을 흥정해야 한다. 운전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흥정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싸우는 건 절대 아니다), 어쩔 때는 주위의 릭샤 운전수들이 와서 구경을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같은 패거리들이 몰려와서 손님을 위협하는 건가 싶었는데 이 사람들 말 그대로 그냥 재미로 구경하는 거였다. 인도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다.

릭샤 운전수와 흥정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인도에서는 고개를 세로로 끄덕 거리면 NO이고 가로로 저으면 YES이다. 우리와는 긍정과 부정이 반대인 셈이다. 처음에 이걸 몰라서 흥정할 때 엄청 고생했다. 이 사실을 알고 보니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긍정을 하는 인도 사람들의 몸짓이 왠지 모르게 귀여워 보였다.


Aga Khan Palace는 마하트마 간디와 그의 아내가 1942년부터 1944년까지 2년간 잡혀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입구로 들어서면 아주 잘 가꾸어 놓은 정원과 마주친다. 정원까지는 요금을 받지 않고 간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건물 쪽으로 진입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건축물은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이탈리안 아치로 건물 외부뿐 아니라 내부도 장식을 했다.

각각의 방에는 인도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생애를 보여주는 사진과 초상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저 복도 끝에 경비원들이 있는 초소가 있고 돈을 내야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정원을 거닐다 마주친 마하트마 간디의 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화장한 유골의 일부가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이었다. 어쩐지 인도의 아버지 묘 치고는 좀 소박하더라니. 이 기념비가 있는 곳 바로 앞은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진짜 묘도 아니고 재의 일부가 묻힌 기념비도 이렇게 신성시하며 존경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에 대한 인도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이다.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 시인 타고르가 지어준 이름이다. 간디는 영국 식민지 기간 중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인도인들의 정신적 지주이다. 최근에는 간디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성자로서 추앙받지만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고, 제국주의 체제를 옹호했으며 민중운동은 소수 엘리트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시간 내서 공부 좀 해 보아야겠다.


아까 흥정했던 오토릭샤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 중인데 옆에 다가선 릭샤 운전수와 수다를 떨고 있다. 둘이 친구인가 보다. 껄껄 거리며 신나게 떠든다. 운전수가 자꾸 옆을 보고 운전을 해서 조금 불안해졌지만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영어가 잘 안 통하는 데다가 시끄러워서 괜히 말 걸면 아예 뒤를 돌아보며 운전할 것만 같았다.


푸네의 최대 중고장터인 Juna Bazar Pune에 왔다. 이 곳엔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무슨 오래된 리모컨, 스피커, 모니터 등의 가전기기로부터 농기구, 도자기 등 식기류, 운동화, 옷, 심지어 소형 오토바이까지 있다.

웬 약장수 같은 아저씨가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고,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구경하고 있다.

입구 계단에 오르니 시장 건너편으로는 판잣집처럼 보이는 주택들이 보인다. 저런 집들이 이곳 푸네시내의 일반적인 주택의 모습이다.


Shaniwar Wada는 1732년에 지어진 요새이다. 저 개구멍 같이 열린 문으로 들어가려 했더니 입장료를 내라고 한다. 안에 뭐 볼 게 있겠나 싶어서 그냥 다시 나와 버렸다.

요새 주위를 걷고 있는데 사람들이 뭔가를 구경하는 것이 보인다.

옆을 보니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다. 여러 팀이 참가해서 경연을 하는 것 같았다. 북을 연주하는 팀이 나왔는데 꼭 우리의 사물놀이 공연을 보는 듯하다. 흥겹다.

옆에는 공연을 준비 중인 청소년들이 보였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걸었다. 공연 준비하고 있냐고 했더니 자기들은 이미 공연을 마쳤단다.

얘기하고 있는데 앞에 있던 꼬마 남자애의 손에 뭔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손바닥 좀 보여달라 해서 봤더니 공연을 위해서 헤나 같은 걸 그려 놓은 것이었다. 옆에 있던 아이들이 자기들 손에도 그림이 있다며 모여들어서 보여준다.

이것저것 질문을 하니 그 큰 눈망울들을 반짝이며 대답을 한다. 대답을 하면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수줍게 웃는 아이들. 너무 예뻐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어디를 가도 아이들은 순수하다. 예쁘다. 인도 아이들의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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