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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기영 Apr 16. 2017

'아저씨'는 되고 싶지 않아.

신년 계획 중간점검: 다이어트와 책 읽기

배 나오고 무식한 '아저씨'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나이가 마흔 하고도 중반이 되고 보니 아무리 용을 써도 아저씨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몇 년 전부터 스리슬쩍 부풀어 오른 배와 점점 줄어드는 머리숱. 늙어가는 게 어디 몸뿐인가? 평소에 책 읽기를 게을리하니 아는 건 별로 없고, 틈만 나면 핸드폰이나 만지작 거린다. 이러다가는 머리에 든 건 없이 나이만 먹은 꼰대가 될 것 같았다. 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안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신년 계획이란 걸 세워봤다. 원래 그런 거 잘 안 하는데 - 해봐야 지키지도 않고, 별 의미가 없어 보여서 - 올해에는 한번 해 보기로 했다. 딱 두 개의 목표를 세웠다. 다이어트와 책 읽기.



다이어트 (목표: 허리띠 한 치수 줄이기)

*Photo by Jennifer Burk | unsplash.com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서 남들처럼 막 단식하고 죽기직전까지 운동하고 그러고 싶진 않았다. 단지 허리띠 구멍을 안쪽으로 한 칸 옮겨서 찰 수 있게만 하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목표는 세워 놓고 아무것도 하지를 않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니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당연히 허리 치수가 줄어들 리가 없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데도 배가 나오고 체중은 증가했다. 평상시에 과식을 하고 탄수화물을 과다 섭취했기 때문이었다. 저녁밥을 양껏 먹고 나서 추가로 케이크나 빵 등을 후식으로 먹곤 하였다. 퇴근해서 집에 가다가 배고프면 무심코 도넛이나 빵을 사 먹었다. 운동을 했으니 초코바 정도는 먹어도 되겠지 하는 보상심리와 늦은 시간에 습관적으로 마시는 맥주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렇게 신년이 시작한 뒤에도 한참을 그냥 지내던 중, 아내가 식이요법을 통해 효과를 보는 것에 자극을 받아 나도 시작했다. 아내가 초기에 했던 식이요법은 밥 대신 고구마랑 요구르트 등을 먹는 강한(?) 것이었으므로 나는 지킬 수 있는 것으로 순화해서 2월 말에 시작했다. 우선 아래와 같은 규칙을 세웠다.


1. 탄수화물 (주로 흰쌀밥, 빵 등) 섭취 줄이기
2. 단것 (케이크, 그 외 단 군것질) 줄이기
3. 튀긴 음식 (특히 치킨!!) 줄이기
4. 과식 금지
5. 9시 이후 야식 금지


일단 밥은 평소에 먹던 양의 2/3 정도만 먹고 집에서는 잡곡밥만 먹었다. 밥 자체의 양은 줄였지만 대신 채소나 고기위주의 반찬을 양껏 먹었다. 빵은 호밀과 견과류로 만든 식빵 위주로 먹고 케이크나 기타 단 간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튀긴 음식도 줄이려고 노력했는데 특히 거의 매주 먹다시피 하던 치킨은 다이어트 시작 이후로 한 번도 먹지 않았다. 회사 회식등의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녁 약속을 따로 잡지 않았다. 술과 기름진 안주의 섭취를 제한하기 위해서였다. 배가 아플 정도로 미련하게 먹는 것도 주의했고 9시 이후에는 물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회사에서 오후에 정 배고플 때엔 견과류를 조금씩 먹었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냉장고 한켠에 늘 비치해 두었던 맥주도 집에 더이상 들여놓지 않았다. 사실 굶어 가며 혹독하게 하는 다이어트가 아니어서 이런 것들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식이요법의 효과는 놀라웠다. 시작하자마자 일주일에 거의 1킬로씩 빠졌다. 사실 몸무게보다는 몸의 형태 변화나 체지방률 같은 것으로 체크를 해야 하는데, 여러모로 여의치가 않으니 그냥 몸무게로 성과를 측정했다. 2월 24일에 74.4kg이었던 몸무게가 4월1일에 69.8kg으로 줄었다.


허리띠 한 칸이 줄어든 건 3주 정도 지나서였다. 바지들도 다 헐렁해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3주만에 목표를 달성하는 쾌거를 거두었지만 욕심이 생겼다. 배를 납작하게 만들고 숨겨져 있던 복근을 끄집어 내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건강하게 먹는 것을 평생 습관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은 계속 식이요법을 유지하기로 했다.


몇 주간의 식이요법을 하고 난 후에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살 특히 뱃살을 빼려면 운동이 아니라 식이요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거나 다 배 터지게 먹으면서 운동만 열심히 한다고 살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 물만 먹어도 살찐다는 말도 순 거짓말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정말 물만 먹었는지. 아니면 내가 뭘 물처럼 먹었는지. 군살을 제거하려면 식이요법이 정답이다. 운동과 병행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것이다.




책 읽기 (목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기)

*Photo by Ben White | unsplash.com


한 달에 책 몇 권 읽기 이런 식으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책을 읽는 자체의 행위보다는 몇 권을 읽었는지에 집착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지식과 지혜를 얻고 또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인데 권수에 집착하다 보면 진짜 중요한 부분을 놓칠수있으니까.


책은 주로 출퇴근 시간에 읽었다. 버스나 만원 지하철에서는 읽기가 힘들때가 있지만 그런대로 하루에 30분 정도의 독서시간이 확보가 되었다. 소설, 인문교양, 에세이, 만화 등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 3월까지 읽은 책의 리스트를 보니 거의 일주일에 한 권꼴로 읽은 듯하다.


생각해봤어? -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센트럴파크 - 기욤 뮈소
그럴 때 있으시죠? - 김제동
친애하는 나의 적 - 허지웅
채식주의자 - 한강
소년이 온다 - 한강
종의 기원 - 정유정
높고 푸른 사다리 - 공지영
키다리 아저씨 - 진 웹스터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 - 사카이 준코
커피 한잔 할까요? (6권) - 허영만


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정유정의 소설 '종의 기원'은 좀 충격적이었다. 사이코패스의 기행을 다룬 소설인데 거의 엽기 호러물이다. 어떻게 악행이 시작되고 점점 더 커져 가는 지를 무섭고 끔찍하게 잘 묘사를 했다. 무서워서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 그냥 덮었다는 여성 독자가 두 명이나 내 주위에 있을 정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푹 빠져서 읽었다. 스릴러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도 몰입해서 읽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그 진압과정에 대해 다룬 내용인데 구성이 매우 독특하다. 6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서로 다른 시선이지만 모두 얽히고 설켜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힘들고 눈물이 나왔다. 마치 과거로 돌아가서 내가 그 학살의 현장에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냥 단순히 재미만 있다고 하기에는 울림이 큰 소설이다.


아이가 만저 읽고 난 후 건네준 '키다리 아저씨'는 명랑소녀 주디애벗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로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하였고, 허영만씨의 만화 '커피 한잔 할까요?'는 한참 커피에 관심이 많은 나로 하여금 6권을 단숨에 읽게 만들었다. 책 한권을 다 읽고 그 다음 책은 무엇을 읽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책 없이 지하철을 타게 되면 마음이 허전해 진다. 이 정도면 책을 손에서 놓지 말자고 다짐했던 신년 계획은 대체로 성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이어트는 단순한 몸만들기를 넘어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습관을 갖는 것으로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다. 보기 좋은 몸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책 읽기 또한 출퇴근 시간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으니, 앞으로 살면서도 계속해서 그 즐거움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상으로 거창(?)한 2017년 신년계획의 중간점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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