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커가면서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 가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 재능이 없는 부분이 많지만 특히 암기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재능이 부족한 편입니다. 영어 단어를 아무리 열심히 외워도 시험을 보면 점수가 형편없었고, 한국 지리는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습니다. 심지어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 이름이 헷갈려서 몰입이 힘든 정도였습니다. 특히 러시아 소설. 그리스/로마 신화에 빠져들고 싶었지만 그 복잡한 이름과 관계도를 외울 수가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오죽하면 친한 친구 이름도 가끔 까먹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 건망증이 생긴 게 아니라 걱정할만한 수준이지만 저에겐 너무 당연한 일상이라 걱정해본 적이 없습니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암기는 못하는 반면 이해력이 빠르다는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암기 과목을 이해를 바탕으로 외우려고 노력했는데, 예를 들면 영어 단어도 어근 학습법이니, 해마 학습법이니 정말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봤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성적이 좋지 않은 과목은 암기가 많은 과목이었습니다. 특히 용어를 까먹거나 꼭 한 글자씩 틀리게 아는 경우가 있어 부끄러운 경우도 생기는데, 그러다 보니 글을 쓸 때도 다 아는 내용을 한 번씩 찾아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꼭 틀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지만 사자성어만큼은 자신이 있습니다.
요즘은 학습 만화 시장이 상당히 커졌고, 만화계에서 실력 있는 유명한 작가들이 학습 만화를 많이 그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어린 시절에는 먼 나라 이웃나라 정도의 만화가 학습만화라 분류할 수 있는 정도였고, 교육을 위해 만화를 그릴 정도로 품을 들이는 일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따개비 한문 숙어는 제 어린 시절 최고의 학습만화였습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 해도 읽는데 많은 집중력이 필요한 보통의 책 보다 만화로 그려진 책은 훨씬 재미있었고, 지금처럼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이 재미있는 매체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수도 없이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암기 능력이 전혀 없는 제가 자연스럽게 많은 수의 사자성어를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어디서 아주 무식해 보이지는 않게 된 것 같네요.
만화는 전형적인 옛날 스타일의 명랑만화이고, 그림체 역시 마치 옛날 신문 만화를 보는 듯합니다. 두 페이지에 한 사자성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고, 나름 모든 에피소드에 기승전결이 있고, 주로 마지막에 항상 웃음 포인트가 있습니다. 인기 있는 다른 만화에 비해 아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전혀 공부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의 내용입니다. 시험기간이 되면 평소에 보지 않던 다큐멘터리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늘 공부의 압박을 받던 시절에 만화는 단비와 같았고, 그래서 정말 많이 봤었습니다. 그리고 암기에는 반복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으며 공부와 놀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놀기 위해 수많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제가 좋아했던 스타를 할 때도 유닛에 대한 정보, 유닛 간의 상성, 맴 정보 등 수많은 암기를 해야 하며, 요즘 한참 인기 있다는 어몽 어스 역시 게임 방법을 학습하고 계속해서 머리를 써야 한다는 측면에서 공부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단지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해서 암기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잘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에 차이는 강제성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면 공부도 더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공부가 그렇다고 재미있어지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제 성적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습 만화가 유익한지에 대한 논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어떤 결론을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유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학습 만화가 아닌 일반 만화에서도 많은 지식과 생각을 얻었습니다. 요즘에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인터넷을 찾을 수 있고, 심지어 텍스트로 된 사이트보다는 유튜브로 먼저 검색을 한다고 할 정도로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어쩌면 재미없는 학습만화라도 제발 보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런 현실을 한탄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 어린 시절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책 특유의 느낌에 애착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시대의 변화를 한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유튜브로 지식을 찾아보며 흥미롭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있고, 이 시대 나름의 느낌을 즐기고 있습니다. 뇌과학을 발전을 보면 언젠가 지식을 다운로드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라때는 유튜브 보면서 배우고 생각도 많이 했는데 요즘애들은.."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