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신성한가?
커버 이미지 출처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코리아
이 글을 쓰는 저는 현재 30대 후반이며, 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나온 세대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이며, 과거의 나의 삶과 현재의 삶도 나의 위치가 달라졌을 뿐 세상은 크게 달라진 거 같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당시에는 인터넷이 막 시작이 되었고, 스마트폰은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었습니다.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교에서 석탄 같은 걸 떼서 난로로 쓰던 기억이 있고, 고등학교 2학년 즈음에는 어렵게 반에 에어컨을 갖추게 되어 매우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적응을 했을 뿐이지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미래학자는 그 속도가 점점 가속될 것이며 조만간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특이점이라 표현하며 주장하기도 합니다.
구글에서 알파고를 처음 발표했을 때 정말 그 뛰어난 마케팅에 감탄을 했었습니다. AI가 발전되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그 발전을 느끼기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아무리 멋진 발표를 해도 보는 사람은 한정적이고, 그 성능 또한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글에서는 바둑 대결이라는 이벤트 하나로 세계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과거에는 AI가 인류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공상 과학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치부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AI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말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사람들도 딥러닝 같은 전문적인 용어를 표면적으로 나마 알 수 있게 되었고, 구글은 AI에 가장 앞선 회사라는 이미지를 얻으며 엄청난 투자 유치에 성공했을 것입니다. 생뚱맞게 바둑 대회를 한번 개최함으로써 역대급 이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발전으로 바둑 세계까지 접수한 AI가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인류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상당히 타당한 생각입니다. 분명 기계는 모든 기능에서 인간을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고 앞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식은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가정해 보고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즉, AI는 언제나 우리가 코딩한 대로 활동하고, 그 코딩이 엄청나게 발전하여 대부분의 인간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만, 인간처럼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지는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과거부터 생존을 위해 노동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노예와 주인이라는 개념으로 일을 하는 자와 노동의 대가를 향유하는 자를 분리하였고, 과거보다는 평등해졌지만,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개념으로 여전히 어느 정도 분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항상 노동을 장려해왔습니다. 노동자의 성과물이 많고 좋을수록 국가의 힘이 부강 해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런 불평등을 가리기 위해 노동을 신성시 여기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노동의 가치를 배우게 되고, 본인이 노동을 해야 하는 곳을 꿈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게 만들며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하도록 경쟁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일자리를 뺏는 AI가 은연중에 두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AI가 인간이 할 일, 즉 모든 인간의 노동의 대가를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모두가 주인, 혹은 자본가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AI를 노예, 혹은 노동자로 쓴다고 생각한다면, 똑똑하고 성능 좋은 AI를 활용하여 모두 충분한 돈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는 모든 사람이 쓸 재화가 충분히 생산됨에도 일부 사람들이 독점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모두가 평등한 상황이 된다 해도 남 위에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AI가 모든 일을 다 한다 해도 더 남보다 뛰어나고 싶고, 남을 조종하고 싶은 욕망에 의해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인간이 더 이상 노동에서 가치를 찾지 않고,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면 어떤 사회가 올까요?
상상해보면 인간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게 분출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인간에 대한 인정은 많은 부분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소유했는지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인정을 받는 사회였습니다.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이 되어야 비로소 감이 오기 때문에, 인기도도 경제적 가치를 항상 환산하고, 영향력까지도 기발한 방법을 동원하여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냅니다. 돈이 큰 의미가 없는 사회가 된다면, 즉 이러한 환산의 지표가 없다면 또 다른 지표를 만들어 개인의 인기와 영향력을 평가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지만.
노동이 필요 없어진 사회라면 이성에게 인기를 얻는 것이 모든 것의 가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는 자식을 많이 가지는 것이 능력의 상징이 될지도 모르죠. 어쩌면 저처럼 무언가를 더 생각하려 하고, 그것을 써서 남들에게 알리려 하는 사람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인생의 근원적인 허무 함에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의 중심인 경제,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해지지 않게 된다면, 지금까지 역사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가치가 중요시되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회의 제도와 상식도 현재와는 달라질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상에는 많은 가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AI의 의식이 탄생하여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가정이 들어가 있으며, 이런 기술을 일부 사람이 독점하여 오히려 인간을 더 통제하지 않는다는 가정도 있습니다. 많은 공상 과학 소설에서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그렸기 때문에 많이 익숙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상상한 미래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소 이상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돈에 찌들어 있지 않고, 본인에 집중하는 사회가 온다면 어떤 미래가 될지 조금은 기대를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