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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Dec 19. 2021

407 펜대 굴리는 자들의 폭주

물리학인 척 하지만 사실은 수학입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몰라도 저 어릴 때 과학자의 이미지는 알 수 없는 물질이 든 비커를 들며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음모를 꾸미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대부분 정상은 아닌 것 같죠. 어린 시절 과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런 이미지가 싫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다 보니 에디슨 같은 발명가의 꿈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실험 기구 근처도 가지 않는 과학자들이 많습니다. 이론 물리학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누군가가 뽑아낸 실험 결과 데이터를 보며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이런 이론 물리학자들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갈릴레이는 이론 물리학자라 할 수 있지만, 피사의 사탑에서 물체를 떨어트리는 상징적인 실험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도는 것 역시 과학자에 대한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과학자는 이론과 실험을 병행하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아인슈타인 이후 이론물리학자와 실험 물리학자가 구분되는 추세입니다.




이론 물리학자는 아인슈타인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되는데, 수많은 학자들이 실험한 결과들을 조합해서 책상에 앉아 고민하다가 이론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파울리의 베타 원리로 유명한 파울리는 전형적인 이론 물리학자였고 실험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험을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파괴왕 주호민 수준으로 그가 근처에 가면 실험이 망하고 기구가 부서져서 동료 과학자들은 심각하게 파울리 효과라는 것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파울리 효과는 원자 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실험 중에 폭발할까 봐 파울리가 제외될 정도로 동료 과학자들은 심각하게 믿기도 했지만, 실험을 전혀 못하는 이론 물리학자를 조롱하는 의미로도 통용되기도 합니다. 빅뱅 이론의 쉘든도 천재적인 이론 물리학자로 나오지만 자기 손으로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웃음을 주죠.




이론 물리학자들이 주장하는 계산 결과 중에 검증이 불가능하거나, 검증 후 틀린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으나, 생각보다 많은 황당한 주장이 한참 지나서 맞는 것으로 검증이 된다는 점에서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일반 상대성이론이 옳다면 중력파가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중력파를 설명하려면 일반 상대성이론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일단 건너뛰겠습니다. 결과만 보자면 첫 번째 중력파 검출은 2016년에 각각 태양의 36배, 29배 질량을 가진 블랙홀 두 개가 서로 돌다가 충돌하여서 태양의 62배 질량의 블랙홀이 되면서 태양 3개분 질량이 E=mc2 공식에 따라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전환되어 방출되는 파장을 미칠 듯이 정밀한 LIGO라는 장비로 관측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 두 개의 블랙홀은 태양으로부터 13억 광년 정도 떨어져 있으니, 하필 13억 년 전에 생긴 파장이 지구를 통과하는 시점에 마침 지구에서 장비가 발달하여 처음으로 측정된 것입니다.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관측이 벌어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정도로 많은 우연과 정밀한 장비가 있어야 관측이 가능한 만큼 아인슈타인 역시 중력파를 예측하기는 했지만 관측은 힘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서야 중력파는 관측되어 존재를 증명하였습니다.


하지만 2016년 첫 관측 이후 LIGO는 계속해서 중력파를 관측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게 적은 확률로 일어나는 현상이 실제로 우주에 매우 자주 있다는 증거이며, 이는 이론 물리학자들이 계산한 어마어마한 우주의 크기와 별의 개수도 간접적이지만 사실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디랙이라는 이론 물리학자가 책상에 앉아 한참 계산하다가 루트를 씌우니 E=+mc2, E=-mc2이 나와서 반물질이라는 황당한 개념을 만들었는데, 이 역시 사실로 판명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다 보면 현상에 따라 수식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수식만 맞으면 현상이 따라온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때문에 이론 물리학자들의 칠판에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수학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이들은 과학자보다 수학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입니다. 점점 추상화되고, 수식에 의존하게 됩니다. 방구석에 앉아 모든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도저히 현실적이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의 휘어짐을 도출해냈고, 11차원까지 확장을 시켜 수식을 만든 초끈이론, M 이론은 수식도 어렵지만 상상조차 불가능합니다. 요즘은 다중 우주, 시뮬레이션 우주 등등 SF에 단골 소재로 활용되는 이론들을 진지하게 들고 오기도 합니다. 펜대 굴리는 자들이 폭주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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