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 언론의 구조적 문제
저도 글을 써보다 보니 기자에게는 정말 많은 능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우선 빠르게 상황을 캐치하여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에 상황 파악 능력과 요약 능력, 거기다가 문장력도 있어야 합니다. 문장 주술관계를 맞추는 것만 해도 생각보다 힘든데 이를 신속하게 매일 행해야 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그리고 기자라면 인터뷰를 많이 할 것이기 때문에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도 뛰어나야 합니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해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항상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다양한 분야에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늘 취재를 위해 발로 뛰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도 좋아야 할 것이며, 기사거리가 주말에 쉬는 것이 아니기에 마음 편하게 주말에 쉬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능력뿐 아니라 강한 정신력도 필수입니다. 수습기자들의 교육의 일환으로 "사쓰마와리"라고 부르는 생소한 일을 시킨다고도 합니다. 각 경찰서를 돌며 샅샅이 취재를 하는 것을 뜻하는데,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경찰서 취재를 하다 보면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못할 정도로 바쁜 생활을 경험하게 되며, '경찰서 문은 손으로 여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담대하게 경찰을 대할 것을 가르친다고 하네요.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방식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과감하게 취재를 해야 하는 기자의 특성상, 왜 저런 교육 방식이 생겨났는지 이해는 되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 시험은 언론 고시라고 부를 정도로 어려우며, 실제로 과거에는 거의 서울대학교 출신으로 도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출신이라고 저 모든 역량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많은 공부를 하고 능력을 갖춰야만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 듯합니다. 과거 독재 정권에서 이런 기자들은 눈엣가시였으나 함부로 하기가 어려웠었고, 때문에 기자들은 펜으로 민주화에 공헌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도권과 떨어진 별도의 기관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던 기자들이 언제부턴가 명백하게 기레기로 전락을 해버립니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현재 모든 것의 중심인 돈의 유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언론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며, 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광고를 해줘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언론사는 기업과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다시 강조하지만 유착을 하는 언론과 기업을 비난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조적으로 돈에 의한 유인이 생기면 유착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구성원 중에는 고고하게 끝까지 유착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유착관계를 이용해 끝없이 불법을 저지르고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집단이 유인의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언론과 기업의 유착이 생기게 되면 경찰서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서 다짜고짜 반말을 하며 소리치던 기자들은 그 기세를 기업에 보여주지 못하게 됩니다. 유착 관계를 이용해서 돈을 뽑아먹는 거래를 하려는 기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며, 기자들의 파급력을 아는 기업 입장에서는 거래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조건 이득이기에 이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기업은 또한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정치권과도 유착 관계가 생성되어 있기에, 결국 기자와 정치권도 유착 관계가 생기게 됩니다. 정치권에서 자신에게 좋지 않은 기사를 쓰는 언론사를 지목하며 기업을 압박하면 기업이 광고를 끊는 방식, 혹은 훨씬 더 세련된 방식으로 기자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유착 관계가 생긴 기자는 기레기로 몰락해 버리게 됩니다. 심각할 정도로 편향적이고 비논리적인 기사를 양산하고 있으며, 공신력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신문에 난 내용", "뉴스에 나온 내용"이라고 하면 그래도 믿는 분위기였는데 지금 그런 분위기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물론 기레기로 몰락하는 데는 시대 변화의 영향도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작은 언론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기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와 댓글 등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쓰레기 언론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메이저 언론사는 권위를 유지하며 차별화를 만드는 길보다는 그들과 비슷해지는 길을 선택해 버렸습니다. 이러한 기자의 몰락은 단지 기자들의 문제로만 그치면 다행이겠지만 사회에 심각한 파장을 일으킵니다.
기레기 :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 대한민국에서 허위 사실과 과장된 부출린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과 그 사회적 현상을 지칭한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