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가나 시에서 출산을 지원하는 제도가 많다. 여러 가지 명목으로 자잘한 지원이 많고, 계속 생기는 추세인데 확실히 없는 것에 비해 많은 도움이 된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여 국가에서 지원을 늘리고 있는 시기니 마침 출산을 한 우리 가정에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이미 예전에 출산을 했던 사람들에게 요즘 생긴 지원을 이야기하면 “라때는 그런 거 없었는데 좋겠다.”라고 하는 정도다. 적은 돈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 지원 때문에 애를 낳겠다고 결정할만한 정도는 아니다. 출산 대책의 효과가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얼마나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출산 대책이라는 게 생각해 보면 쉽지 않다. 옛날에 허경영 공약처럼 각 1억 원씩 준다 하면 출산이 늘어날까? 어느 정도 늘어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총비용은 1억이 아득히 넘어갈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지원금을 줄 경우 1억을 받고 자식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부모가 오히려 급증하지 않을까 싶다. 슬프고 끔찍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부모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 소위 자식장사라는 얼토당토않은 단어가 신조어로 등극할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가질까 말까 고민하는 애매한 소득 계층의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겠지만, 이런 역작용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지금처럼 백만 원, 이백만 원 규모의 지원금의 경우 기출산자가 부러워하고 넘어가는 정도겠지만, 그 규모가 억 단위가 되면 형평성 이야기도 나올 만도 하다. 돈은 가장 강력한 유인이기 때문에 분명 효과는 있겠지만, 그게 대책의 전부가 되긴 힘들어 보인다.
막상 아이를 키워보니 돈도 돈이지만 시간의 소모가 크다. 아이는 시간을 들여야 키울 수 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시터를 써서 시간 소모를 줄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을 부모가 투자하지 않을 수는 없다. 부모의 시간이 결핍된 아이는 썩 좋은 성장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시간과 돈은 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큰 축을 담당하고 있고, 어떤 대책도 이 두 가지를 해결해주지 못하기에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능이라고 불리는 출산조차도 기피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어찌 가능했냐는 질문이 반드시 나올 것이다. 예전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더 힘들었고, 우리나라는 커다란 전쟁도 겪은 국가이기도 하다. 전쟁, 가난이 들이닥치면, 즉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사건이 생기면 출산율은 올라간다고 한다. 그게 동물의 본능인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생명의 위협이 심하지 않은 시대이지 않나. 훨씬 잘 살게 되었다 하더라도 자본주의라는 굴레는 그 안에서 더 심한 채찍질을 스스로 하게 만든다. 더 잘 살지만, 더 열심히 일해야 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스펙은 점점 높아지지만 보상은 그 스펙을 따라오지 못한다. 높은 스펙이 많아지니 경쟁이 더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더 잘 사는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유독 우리나라 출산율 저하가 더 심한 이유도 알 것 같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잘 사는 나라, 훨씬 더 못 사는 나라 제치고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것은 우리나라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쟁 후 압도적인 가난함에서 선진국이 된 나라가 없지 않나 싶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한 배경에는 치열한 경쟁과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력이 있지 않겠나. 돈을 밝히는 것을 천하게 여긴 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물질만능주의를 추구하게 되었고, 대를 잇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국가에서 가장 빠르게 출산율 꼴찌 국가가 되었다. 치열한 경쟁은 남과의 심한 비교를 낳았고, 때문에 자식을 낳아 뒤처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여유가 있어도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돈이 꽤 많아도 아이를 최고의 환경에서 키울 수 없다는 좌절감을 굳이 가진다. 그나마 사람들을 옭아매는 전통적 가치는 이미 버린 지 오래기에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출산율이 저하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출산 정책에 쓰인 돈이 어마어마하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규모가 출산 가구당 1억씩 주고도 남는다는 말도 들었다. 대부분의 반응이 그 돈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정말 누가 띠어먹었는지 모르겠지만, 효과가 적은 곳에 잘못 투자가 된 것이라고 믿겠다. 정부에서 할 수 있는 큰 지원 방법은 역시 돈이기 때문에, 출산율이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미미한 것은 그 방식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우선 투자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만큼 가장 출산 유도가 잘 되는 집단에게 투자가 우선 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투자 대상은 난임 부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출산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만큼 좋은 저출산 대책이 있을까 싶다. 난임병원비를 획기적으로 지원해 주고, 휴가 등 제도를 완비하면 비용대비 가장 큰 출산율 증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출산을 원하는 중간 소득층이다. 고소득층의 경우 돈의 유인으로 출산을 결정하는 효과가 적으며, 아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가지면 생활이 조금 힘들어지지만 못 살겠다 정도는 아닌 소득계층은 투표의 부동층처럼 마음이 왔다 갔다 할 것이다. 이 계층에 지원이 많이 이루어지면 효과가 클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가난한 계층이나 고소득자에 지원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타깃에 맞춰 차등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이며, 이미 아이를 낳은 사람의 복지도 당연히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돈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에서 돈으로만 지원을 할 경우 끝도 없는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웬만한 지원으로는 아이를 키우는데서 오는 손해가 훨씬 클 테니 말이다. 때문에 돈보다는 시간 투입을 줄여주는 쪽에 최대한 많은 돈을 투입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 시간은 당연히 출산부부가 가장 힘들게 느끼는 시간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신생아부터 아기를 키우면, 거의 24시간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애한테 붙들려 있어야 한다. 매일 반복해야 하는 일은 정말 힘들다. 설사 그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많더라도, 반복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가 크다. 게다가 내가 원할 때 쉴 수가 없다는 것은 실제 일의 양보다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가져오게 된다. 특히 육아는 내가 아파도 중단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시점에 좋은 시터를 지원해 주는 것 같은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육 시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싼 것도 문제고, 필요한 시간에 맡길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회사에서도 매우 죄송한 표정으로 “오늘 어린이집에 하원시킬 사람이 없어서 일찍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직원이 많다. 좀 더 체계적인 어린이집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를 시터나 어린이집에 맡겨놔도 부모는 불안하고, 때로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가끔 나오는 어린이집 문제 같은 게 나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사실 아이를 보는 일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이상한 선생님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대부분의 선생님은 열과 성을 다해 어린이를 봐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모이기에 생기는 불안은 어쩔 수 없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처우를 더 좋게 지원해 주고, 대신 더 자격을 까다롭게 하는 등, 신뢰도 높은 보육 체계를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든 것이다. 누가 내 생각을 정책으로 반영하겠다고 하면, “아, 좀 더 생각해 볼게요.”라고 할 것이다. 지금은 그야말로 생각나는 것을 적어 본 것이고, 많은 부모들이 각기 다른 요구 사항이 있을 것이다. 그런 다양한 요구를 잘 수렴해서 최적의 장소에 국가에서 돈을 쓴다면 훨씬 보육환경이 좋아졌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부모들이 보육환경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순간, 그 이야기는 더 퍼져나가서 육아의 고통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그건 출산율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말이고, 결혼적령기 친구들은 출산을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생각이 다를 것이다. 단순 손익만 계산해 보면 분명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빼앗기기 때문에 손해가 많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는 분명 설명할 수 없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큰 이익이 있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고, 설명할 수 없기에 이 마음을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런데 사실 아주 대단한 일을 매일매일 이루는 사람이라면 다를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이가 없어 내 삶을 더 즐기고 성취할 수 있게 되었다 쳐도, 지금과 비교해서 훨씬 즐거울 것 같지도, 크게 대단한 걸 이룰 것 같지는 않다.
한 때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몇 가지니, 버킷 리스트니 하는 것들이 유행했다. 사실 거기 있는 대부분의 일들이 돈 버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일들이다. 주로 돈을 쓰거나 고생을 하는 것들을 사람들은 인생에 중요한 성취로 꼽고 되새긴다. 인생에 그런 것들을 이루고 죽으면 더 좋은 인생이라 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리스트를 만든다면 출산과 양육은 꼭 넣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아마도 넣으면 1번이 될 것 같다. 내 대를 잇고 그런 의무 같은 생각을 빼고 말이다. 아이의 트림소리에 기뻐하고, 뒤집기를 응원하며, 한번 지어준 웃음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안았을 때 팔은 좀 아프지만 그 따뜻한 생명의 느낌을 이길만한 버킷 리스트가 인생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