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란 무엇인가
아기가 생기고 나서 하루하루 감동의 순간들이 많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심장 소리”를 들을 때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어떤 부모에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너무나도 확실한 생명의 증거에 울컥했다.
사실 생명과 의식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아기를 언제부터 생명으로 봐야 할지, 언제부터 의식이 생기는지 관심이 많았다. 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부터 증명하기 어렵지만, 이건 너무 깊은 철학적 문제로 들어가 버리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몇 주에 한 번씩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생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언제부터의 생명인가의 기준은 나와있다. 아이러니하게 낙태 때문에 그런 구분이 생긴 것이다. 낙태죄가 최근까지 존재했기 때문에, 생명으로 인정되는 시점이 중요해졌다. 헌재의 권고로는 22주 전까지는 낙태를 허용한다고 했고, 그 근거로는 22주 내외의 태아가 출생했을 때 생존율이 21주와 비교하여 급상승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22주. 손가락, 발가락이 다 생기고 청각이 발달하여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기이다. 좀 너무하다. 그래서 종교계를 좀 찾아봤더니 대부분의 종교에서 낙태 자체를 금지하고 있었다.
직접 심장 소리를 듣자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자동차로 치면 엔진 아닌가. 자동차는 다른 부분보다 엔진의 수명이 훨씬 길다. 다른 부분이 고장 나더라도 엔진이 고장 나면 안 되니 말이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아이의 심장이, 그것도 엄청 빠르게, 게다가 엄청 크게, 물론 이건 의사 선생님이 소리를 크게 들려준 것일 테지만, 들리는 것을 보면 이를 지운다는 것은 큰 죄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많은 사정이 있을 것이다. 시대의 흐름도 낙태죄가 없어지는 쪽인 듯하다. 애매한 부분도 있다. 강간 등 여러 상황에서의 낙태는 또 죄가 아닌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헌법상 죄가 되지 않는 추세가 된다 손 치더라도, 나에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죄책감이 심할 것 같다.
생명에 대한 입장은 다양하지만 참 의견 수렴이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세상을 떠난 우리 집 강아지 ‘뚜비’를 형제처럼 생각하고,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지만 개고기 금지는 반대한다. 어차피 육식을 하는 사람이 개라고 못 먹게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나 돼지, 양을 보고 교감을 하면 개 못지않게 교감이 가능한데도 그 친구들은 죄책감 없이 먹는 인간이다. 심지어 동물을 사육하고 도축하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나 싶을 정도지만, 그런 음식을 잘 먹는 내가 특정 동물만 특혜를 주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니, 심지어 개만이 인간과의 교감을 할 수 있다 쳐도 말이다. 인간과의 교감이 삶과 죽음을 정해줄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내가 개고기를 안 먹더라도 개고기 금지는 반대한다.
낙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살인자로 치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러 가지가 얽혀있고 전부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일단 나는 언제부터 생명이라고 인정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정했다. 그 기준은 심장이 뛰기 시작한 태아이다. 죽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뛰어야 하는 엄청난 임무를 맡은 그 심장 말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복잡한 머릿속이 한방에 정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