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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살 일기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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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Apr 13. 2024

단순한 기계일까?

처음 아기를 볼 때 정말 모든 행동이 물음표였다. 대체 왜 이때 우는 건지, 왜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건지, 방긋방긋 웃은 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왜 대성통곡을 하는지. 도저히 아이의 행동 패턴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울음소리에 대해 이해하고 여러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대응도 해보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하다 보니 조금씩 아기의 행동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점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내가 이해를 못 할 뿐 아기는 상당히 논리적으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처음에 아기가 울면 안절부절못하면서 급하게 이것저것을 해봤다면, 시간이 갈수록 우는 아기를 잘 관찰하여 원인을 파악하고 능숙하게 대처하게 된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 하나? 이것도 이제 꽤 옛날 말.... 어쨌든 이래서 애를 여럿 키울수록 수월해지나 보다. 아기의 패턴과 행동에 익숙해지자 몇몇 아직 이해 못 하는 행동을 제외하고는 대응을 대충 할 수 있게 되었고, 처음에는 이해불가였던 아의 알고리즘이 마치 기계와 비슷할 정도로 정확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아산통과 비슷한 증상을 겪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이가 내가 모르는 타이밍에 갑자기 울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보통 배고플 때의 가장 큰 목소리의 울음을 때가 아님에도 시전 하였다. 이상한 생각에 달래다가 안 돼서 분유를 조금 더 줘봤더니 잠잠해졌나 싶었지만, 다 먹고 나자 다시 울기 시작하였다. 보통 시간이 가면 울음을 그치기 마련인데 울음은 점점 더 커져서 전에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이런 걸 보고 귀신 들렸다 하며 구마의식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랜 기간 심하게 우는 아이를 보는데 와이프는 산후도우미분이 오셨을 때도 한 번 이랬다고 말하였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증상이 영아산통과 일치하였다. 일치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원인도 모르고 해결책도 없다는 내용만 나오는 게 문제였다.


아이가 목이 쉬고, 제 풀에 지쳐 잠 들고나자 영아산통에 대해 더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좀 전문가에게 실망을 했다. 인류의 시작부터 육아를 해왔고, 정말 많은 육아 관련 연구가 진행되었을 줄 알았는데 정확한 이유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한다. 마치 물리학자들이 스케이트가 얼음에 미끄러지는 이유를 아직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아산통이라 불리는 현상이 소수의 아기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관련 유튜브 댓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수천 댓글이 영아 산통의 무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영아 산통의 대응법은 사실 간단했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아이가 계속 울게 달래며 놔두다 그만두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병리적 현상이 아니고 시기가 지나가면 사라진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영아산통으로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그냥 놔두면 되는 것이다. 아주 쉽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내가 로봇이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당연한 현상임을 알고 마음의 위안을 가져보려 했지만, 계속 우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 시간 동안 아이를 안고 나 할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겠지만, 그 시간 동안 우리 부부는 아무것도 못하고 아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유튜브 댓글에는 매일 특정 시간만 되면 영아산통이 와서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다고 하는데, 정말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돼 않았다. 다행히도 내 아기는 그날 이후 발동하지 않았다.




사실 영아산통도 우리가 원인을 모를 뿐,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자꾸 원인을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원래 의식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는 의식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것일지, 아니면 기계적인 인풋, 아웃풋 반응을 하는 건지 매우 궁금하다. 의식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몇 살부터 기계적 반응을 넘어선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식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가 항상 궁금했고, 아기를 관찰하면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부르는 말에 반응도 없고, 웃는 것 역시 나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냉정하게 살펴보면 말이다. 단지 내 의식 기준에서 우연한 아기의 반응에 대해서 의식을 가지고 했다 생각하고 기뻐할 뿐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절의 기억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었는지 증명하기도 어렵다. 아이의 행동 알고리즘을 알면 알아갈수록 특히 100일 이전의 아기는 확실히 의식이 없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광경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이었다. 산후 도우미분의 도움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 부부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역시 아기를 씻기는 일이었다. 나는 다른 모든 집안일과 아기 돌보는 것을 하더라도 씻기는 것만큼은 못할 것 같았다. 그 가냘픈 몸을 실수로라도 놓치면…이라는 생각을 하면 안전제일주의자인 나로서는 정말 못할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해야 했다. 씻기는 법은 와이프가 배웠기 때문에 나는 보조를 했다. 땀범벅이 되면서 낑낑대며 옷을 벗기고 아기를 배운 대로 씻기는 와이프를 보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아기는 예상치 못한 놀라운 행동을 했다.


울면서 발버둥 칠 거라 예상한 아기는 전혀 울지도 않았고, 발버둥 치지도 않았다. 자신을 씻기는 사람의 불안한 손길을 느낀 것이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아기는 전혀 울지도 않고, 혹시나 자신의 움직임에 엄마가 실수를 할까 봐 다리와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버티고 있었다. 아직 머리를 제대로 못 가누는 나이임에도 목에 힘이 꽉 들어가 잠깐 머리에 손을 떼어도 유지를 할 정도였다. 생존본능이다.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하는데, 갓난아기도 그걸 느끼고 대응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동안 울고 보채고 한 것은 어찌 보면 이 사람들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며, 이렇게 해도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다 씻기고 완전히 안전해지자 급기야 아기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관찰하면서 안쓰럽기도 하면서도 왜인지 자랑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존 본능에 의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고 그에 맞춰서 모든 신경을 집중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물론 이 반응도 어찌 보면 DNA에 박혀 있는 생존 본능이 발동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문가가 들으면 별 일 아닌 당연한 반응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앞에서 느낀, 채 100일도 되지 않은 아이의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행동에 말로 표현 못할 감정을 느끼며, 아기는 그렇게 단순한 기계가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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