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최근 들어 회사의 출산휴가제도가 좋아져서 남자도 무려 워킹데이 기준 15일 출산 휴가를 갈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 이 말을 들으면 “언제 그렇게 길아졌어?”라는 반응이다. 혹시 "니가 출산했냐?"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꼰대 대마왕이 될지도 모르니 조심하시길 바란다.
요즘 회사는 꼰대가 되는 것을 무서워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나의 출산휴가를 부러워하거나,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있지만 막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과거 우리 회사 남자 출산휴가는 5일에 불과하였고, 그것마저 휴일이 끼어있으면 포함해서 써야 했다. 때문에 예전 한 대리님은 아들이 월요일에 태어나 효자라고 흐뭇해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출산 후 90일 내에만 쓸 수 있게 되어서 활용 폭이 넓어졌다. 때문에 나는 출산 후 조리원 2주, 산후 도우미 2주 기간이 지나고서야 3주의 출산 휴가를 쓸 수 있었고 본격적인 육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육아를 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끼고, 그게 이 시리즈를 쓰게 된 계기지만, 출산휴가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것을 이번 편의 주제로 삼으려 한다. 사실 휴가를 쓰는 나조차도 내가 출산도 안 했는데 3주나 휴가를 써도 되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해보니 마음이 확 바뀌었다.
일단 혼자 육아를 하기에는 실질적으로도 어려움이 많다. 아기가 가장 어려서 힘든 시기면서, 부모도 가장 미숙한 시기이기 때문에 초창기 육아는 분명 한 사람이 다 소화하기가 매우 버겁다. 일을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별게 아닌 듯 보인다. 젖병 소독하고, 물 데우고, 설거지하고, 분유 주고, 재우고…. 그냥 하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루틴 자체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데다가, 하나라도 꼬이면 그야말로 엉망이 된다. 미숙한 한 사람이 초기 육아를 소화하다 보면 분명 빠트리는 것이 나올 수밖에 없고, 누구보다도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의 부모는 마음이 아프다. 두 사람이 소화를 하니 정신이 없긴 하지만 밥도 챙겨 먹을 수 있고, 집안 일도 돌아가고, 약간 여유도 생겨서 이렇게 글도 쓸 수 있게 된다. 객관적으로 와이프는 출산 휴가를 길게 받았으니 당연히 혼자 육아를 소화하고, 남편은 직장을 나가니 퇴근 후 어느 정도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에 ‘독박 육아’라는 표현을 쓰며 남편을 비난하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애초에 제도 자체가 잘못되어 있어서 벌어질 수밖에 없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인 분이 애가 없는 동안 부부관계가 좋은 경우는 많이 봤지만, 애 생기고 나서도 좋은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그분은 애가 셋이니 어떨지….. 는 다른 이야기고, 그만큼 육아를 하면서 사이좋던 부부도 싸우게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회사를 안 가고 3주 동안 육아를 경험해 보니 싸우고 욕먹은 우리 아버지들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아버지들이 육아를 열심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단 회사에서 휴가가 거의 없다시피 한다. 내가 애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평일 퇴근 후나 주말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게 되면 시간이 부족하다. 조리원을 갓 나온 초기에는 부부가 모두 서투르고 가장 힘든 육아 시기인데, 이 고생을 대부분 여자 쪽이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남편이 모처럼 시간이 나서 애를 좀 보려고 하면, 자신보다 미숙한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이 불안하다. 때문에 남편은 잔소리를 듣고 아이를 와이프에게 넘기게 된다. 피곤하게 직장일을 하면서 어떻게든 육아에 보태보려 했건만 욕만 먹고 나니 더더욱 육아와 멀어지게 되고, 그 사이에 와이프의 육아 실력은 올라가서 넘을 수 없는 격차가 벌어지고 만다. 집안일 하나도 안 한다고 욕을 먹고, 그런 와이프에게 힘든 직장 생활을 토로하며 싸움이 시작된다.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두 사람 모두 억울한 상황이다. 하지만 15일의 휴가를 얻고 나니 이 부분을 상당히 해결할 수 있었다. 서로 서투른 시기에 같이 고민하고 울고, 웃으며 육아를 해보니 이제 남편으로서도 어느 정도 아이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집안 일도 많이 하게 되었다. 다시 출근을 하더라도 시간이 날 때는 무리 없이 애를 잘 볼 수 있고, 서로 효율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와의 교감을 할 시간이 생긴 것이 좋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 우리 부부만 가지고 있는 아이의 표정, 행동, 손짓, 발짓의 기억을 공유하고 간직할 수 있다. 우리 엄마도 나에게는 기억에 없는 나의 신생아 시절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겠지만, 아빠에게는 그 기억이 거의 없을 것이다. 슬픈 일이다.
어쨌든 출산도 하지 않은 아빠에게 준 긴 휴가는 충분한 가치를 했다고 본다. 그리고 사실 쉬었다고 보기는 힘들기도 하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괴로움이 없었을 뿐, 2~3시간마다 깨서 비몽사몽간에 손을 비비며 분유를 탔으니 말이다. 혹시 주변에 출산 휴가를 길게 갔다 온 남자 직원이 있다면 꿀 빨았냐는 말보다는 아빠로서 성장한 남자에게 추하의 한마디라도 던져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