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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살 일기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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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Jan 13. 2024

100일 즈음에 해보는 탄생의 재구성

2023년 10월 10일

사실 나는 원래 작고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 길에서 강아지를 보면 따라가서 쓰다듬고 싶고, 작은 아이를 보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기는 몇 번 접해본 결과 상당히 대하기 까다로웠고, 사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주변에 애 낳은 친구들이 자랑하듯 아이 사진을 보여주면 귀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그거였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지금 내 앞에서 뻐끔거리다 뿌앵 우는 내 아이를 보니 아주 귀여워 죽을 것 같다. 상투적이지만 정말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예쁜 모양이다.




뿌앵 울면서 태어난 그날이 생각난다. 2023년 10월 10일. 나는 마치 드라마에서처럼 병원 복도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도 믿을 만하고, 검진도 잘 받았기에 사실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막상 아내가 들어가고 한참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병원 복도, 간헐적으로 뚜뚜 소리가 나고,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이 정말 상상하던 산부인과 병원 복도였다. 하지만 상상하던 것과 많이 다르긴 했다. 보통 드라마를 보면 일하다 산통 소식을 듣고 회사에서 허겁지겁 달려오면 먼저 오신 장모님이 “아이고, 김서방 왔는가.”라고 하며 급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초조하게 기다리지 않는가? 아이가 빨리 나오지 않아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 물론 나는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 “뭐요? 아이가 곧 나온다고요?”라며 급하게 담뱃불을 끄며 달려가는 모습이 그려졌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인해 남편 외에는 출입 금지가 되어 양가 부모님들은 상당히 실망을 하셨을 것 같다. 그렇게 혼자 병원 복도에서 반쯤만 드라마와 비슷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했던 이유도 아무래도 드라마에 있는 것 같다. 드라마에 나오는 출산은 항상 위급하다. 산통 때문에 택시를 탔는데 하필 그날따라 기사님이 천하태평이다. 눈치 없는 기사님은 교통 신호를 완벽하게 지켜가며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을 하는데 참다못한 산모가 소리를 지른다. 그제야 상황을 알게 된 택시 기사는 도로의 무법자가 되어 사정없이 액셀을 밟는다. 링거를 꼽고 침대에 누운 채 의사, 간호사 네댓 명이 급하게 침대를 수술실로 옮기고, 남편은 침대를 쫓아가며 아내에게 말을 건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 남편은 주저앉는다. 이런 장면을 늘 보다 보니 생각보다 평온한 출산일이 왠지 낯설다.




“뿌에에앵~”

아이의 울음소리다. 내 아이가 맞나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간호사 한 명이 나와서 아이가 나왔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꽤나 짧은 시간만에 모든 일이 끝났지만, 기억에는 강하게 박혀있다. 수술실로 불려 들어간 나는 탯줄을 자르라는 지시를 받았다. 내 눈에는 탯줄과, 탯줄 주위로 말도 안 되게 작은 손을 휘두르는 아이가 보였다. 탯줄을 자르려는데 손가락이 왔다 갔다 해서 행여나 실수할까 두려워하며 탯줄을 잘랐다. 느낌은 무어라 설명하기 힘들었지만, 그다음 순간은 정말 설명하기 힘들다. 아이를 안으라 했다. 내 눈앞에는 꽤나 상상하던 갓난아기 같지만, 상상하던 갓난아기와 다른 정말 작은 아기가 울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물속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피부색은 불은 듯한 어두운 색이 있었고, 어떻게 안아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존재였다. 아이를 안으면서 놀라움, 신기함, 안쓰러움, 기쁨, 감동…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이 떠올랐다. 아니, 스쳐 지나갔다. 아이를 안고 간호사님의 지시로 후다닥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아이는 정말 작은 유리 덮개가 있는 침대에 실려 나갔다.




아이의 모습은 병원을 다니면서 초음파로 주기적으로 봐왔다. 놀랍게도 아이의 크기는 물론 추정 몸무게도 알 수 있다. 물론 출산 시 몸무게가 만삭 때 예상 몸무게보다 작은 걸 보면 아주 정확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끝끝내 얼굴을 가려 입체 초음파에 실패했으니, 출산 당일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큰 감정이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배 속에 아기를 초음파를 이용해서 입체로 구현하는 것은 놀라운 기술이다. 하지만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는 것만큼 감동적이지는 않다. 첫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 마지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빠른 심장박동. 화면에 사실 어떤 게 아이인지 모를 정도로 애매하게 나오고 있었지만, 이미 소리만으로도 아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인간의 능력은 선 몇 개를 그어놓은 졸라맨을 보고도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나. 맹렬히 뛰는 심장소리만으로 아직 어떤 모습인지 도무지 알아보기 힘든 사진을 보고도 내 아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내 앞에서 뿌앵 우는 아이를 보는 순간, 그리고 태어난 지 100일이 다 되어가는 이 순간은 마치 한 순간 같기도, 아주 긴 시간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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